창업 성공 사례20살 노점상 여대생, 44개 가맹점 사장이 되기까지27살 닭꼬치 처녀의 성공기1. 서론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20대 젊은이들의 창업열풍이 사회 전반적으로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열풍이 젊은 사람들에게 자극제가 되고 경제의 흐름을 활성화 시키는 좋은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반 샐러리맨을 선호하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창업이라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켜 사람들의 경제 활동 참여를 높이기도 한다.그러나, 반대로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안정적인 자신의 삶을 버리고 모험을 시도 하다가 사업 실패로 그동안 공들여 놓은 탑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빚더미에 나 앉아 버 리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사전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저 사회의 흐름만을 쫓아 가다가 결국은 창업 실패자의 꼬리를 달기도 하고, 젊은 시기의 열정을 좌절로 바꿔 놓기도 한다.여러 명의 창업 성공 사례를 조사하던 중에 ‘장정윤’이란 여성을 알게 되었다. 젊은 나 이에 44개의 분점을 소유 하고 있는 그녀의 성공 사례와 그녀의 성공 요인을 알아보고자 한다.2. 본론1) 창업을 하게 된 동기가정고로 인해 그녀는 고등학교를 실업계로 진학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학구열 때문 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러나 오르는 등록금 때문에 부모님은 항상 걱정 하셨고, 그래서 빨리 졸업하기를 원했다.수능시험이 끝나고,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로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 보 다 돈을 많이 벌 수 없었다.우연히 우유 배달 일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70만원을 빌려 집 근처의 우유배달 구 역을 인수 받아서 시작했다. 우유배달의 특성을 먼저 파악했고, (우리나라의 특성 상 우 유 배달 아줌마가 바뀌면 우유를 끊어 버린다.) 그래서 공약한 것이 그 특성을 살린 ‘딸 기 우유 공략’이였다. 자신의 현재 사정과 우유를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우유로 교체 해 주는 등의 서비스를 종이에다 적어서 동네에다 붙였다. 그 후, 사정을 안 고객들은 우유 를 불편할 것이다.(그 당시의 상황)1) 길에서 먹는 불편함.2) 닭꼬치를 먹을 때 뼈를 발라야 하는 번거로움.3) ‘노점=싼 값’이라고 하는 편견.4)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편견.당시 상황을 이렇게 파악하고 이런 불편함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새로운 노점상을 계 획 했다.(1) 노점상으로 시작해서 자리를 잡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리싸움도 치열했고, 생리 적인 현상을 처리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했다. 한 달 정도 리어카를 끌고 이곳저곳을 돌 아 다녔다.노점이라는 단점은 단속반의 등장 이었다. 그래서 후에는 단속반이 단속을 하는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인근 주민의 신고로 단속을 받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조사를 받은 후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1) 저녁 10시경에 자신의 매장 앞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이 있었다.2) 매장에서 꼬치를 굽는다고 연기가 났다.3) 누군가가 자신의 장사가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파 경찰서에 신고를 한 것으로 파악.4) 가스를 사용하므로 폭발의 위험.(2) 노점상의 단점 중 하나는 비가 오는 등의 날씨에 의한 영향이 크다. 비가 오면 장사를 하지 않는다.게다가 주인이 게으르면 언제든지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 한) 항상 문을 열기로 다짐했다. 진정한 프 로는 타인과의 약속이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고객은 기다림에 약하다. 똑같은 돈을 주고 먹을 수 있는 곳은 이곳 뿐 만이 아니다.(3) 학교에 복학을 하도고 장사를 계속 했다.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학교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손님이 뜸한 밤 12시 경에 노점에서 영어 회화 테이프를 틀어 놓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것을 계기로 손님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그 후로 동아 대학교의 명물로 떠올랐다. 손님들은 자신의 유학 경험담 등을 이야기 해주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손님들과의 공감대 형성은 중요하다. 손님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공감대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손님 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콜라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1,000원 짜리 닭꼬치를 먹 고나서 콜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손님들은 많이 몰려왔고 매출은 그 전 보 다 더 상승했다. 이 것도 ‘내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육류를 먹으면 콜라나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한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9) 겨울에는 콜라보다 따뜻한 것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 “꽃게를 넣은 국물”을 무료로 제공했고, 어머니의 추천으로 ‘번데기’를 팔았다. 번데기는 젊은 학생들이 잘 접하지 못 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맛보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쑤시개만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무 한정 맛을 볼 수 있게 했다. 손님들의 기호와 계절에 맞게 서비스의 내용을 바꾼 효과 가 있었다.(10) 가게가 작아서 조금만 정리를 안 하거나 의상을 어둡게 입으면 더럽고 칙칙해 보인다 는 것을 인식하고, 가게는 소규모이지만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하게 되었다.(11) 매일 아침마다 ‘장정윤, 너는 대단하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하고 자기 암시를 하고 자신을 바꾼다. 존경하는, 닮고 싶은 사람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그것을 보면 그렇 게 변한다는 자기 암시법을 이용하고, ‘나는 멋진 리더다, 멋진 리더다.’라고 주문을 건다.(12) 장사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 돈은 손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 따라서 손님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을 한다면 장사는 어렵지 않다. 사장이든, 매니저든 모두 다 종업원이다. 사장이라고 내세 울 필요가 없다.(13) 주변에 경쟁 상대가 생기는 것도 사업의 긴장감 조성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옆에 중국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꼬치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곳은 인테리어, 매 장 크기 면에서 매우 우수했다. 그러나 청결과 맛, 그리고 그동안의 오래 된 노하우 를 더 정결하게 함으로써 뺏겼던 손님들을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었다.(14) 손님들의 특성을 파악해말고 자신만의 장사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 바로 성공 요인이다.(17)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그래서 소스 등의 여러 가지 것들 을 사람들에게 싼 가격에 팔고 노하우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은 부족하게 되었다. 결국 하청 업체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일이 점점 많아지자 그 곳에서 제공하는 물품들이 예전과 다르게 제대로 처리 되지 않고 오는 것이었다. 그래 서 더 이상 물품을 따로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거래처를 좁히게 되자 “체인 점”사업을 하게 되면 일의 양을 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크게, 체계적인 운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18) 2호점이 생겼다. 학교 앞에 학생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의 미움 을사고, 주변가게들로부터 고발을 당해서 경찰서 조사까지 받았다.(19) 2호점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나니 체인점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브랜드 이름 사용료 200만원을 받았다.(20) 23세 때 대학에서 첫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대답을 하고 나서 많이 망설였지만 그래 도 도전해 보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생각이 깊으면 기회를 놓친다.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네’라는 긍정의 대답을 하고 난 뒤에 생각하는 극약 처분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21) 동업의 실패. 투자자가 나서고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체인점 사업을 했다. 그러나 동업자들과 마음도 맞지 않았을 뿐 더러 이윤 배분에 있어서도 손해를 보는 듯 했다. 결국 투자자가 탈퇴를 선언하면서 동업은 실패로 끝났다.(22) 동업 실패의 여파는 컸다. 공장 시설비만 낭비하고, 일본산 꼬치 꽂는 기계는 4,000만 원 짜리 고철이 되었고, 부산대 근처의 점포 또한 헐값에 처분하게 되었다. 2호점도 건 물주와의 문제로 소송까지 갔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손해 본 돈은 그 동안 벌어 두었던 돈으로 모두 채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윤이 얼마나 남겠느냐고 하지만, 싸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 그것도 남는 장사인 것이다.3) 맛있다. 사람의 혀는 맛있는 것만 기억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맛이 있으면 그 가게의 맛이 그 사람의 맛의 기준이 되어 버린다.(26) 옛날에는 음식의 양으로 승부했지만, 현대는 양도 중요하지만 음식을 먹는 곳의 분위 기, 인테리어 들을 많이 본다. 음식을 먹는 장소의 분위기에 따라 음식의 맛도 달라 진다.(27) 계획 없는 가격인하는 잘못하면 고생만 하고 남는 것이 없다. 주변에 유사업종이 많아지면서 가게의 매상을 올리기 위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은 가격을 낮추 는 것이었다. 그러나 1000원에 팔아 300원의 이익을 남기는 장사를 하다보니 가격인하 는 무리였다. 그래서 결국 생각한 것은 오히려 200원을 더 올려 받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 달에 300만원의 이익은 더 보게 될 것이고 이 돈으로 가게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이 었다.(28) 위기는 곧 기회다. IMF로 인해서 경영이 어려워 졌으나 이미 30개가 넘는 매장을 운 영하고 있어서 그만 두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3억원을 마련하여 서울로 향했다.(29) 조류독감 발생으로 매장의 평균 손님 수는 50명에 불과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 해서 손님들에게 재미있는 문제를 내기도 하고, 4행시 짓기 등의 행사를 해서 손님들 이 최대한 가게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1+1행사, 음료 무료 행사, 시식 등의 이벤트 를 벌였다.(30) 사람들은 누구나 능숙하게 주문하고 싶지 초보 티내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메뉴판 의 이름을 변경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부르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스파이시 꼬지는 맵싹 꼬지로, 핫 꼬지는 화끈 꼬지로, 컨추 리 꼬지는 쫀득으로, 누드 꼬지는 담백으로 바꾸었다.(31) 장사의 첫걸음은 돈을 투자하는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아 상권을 조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돈을 투자하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장사 의 첫걸음 이
“오체불만족” 을 읽고…¨나는 이제까지 나의 모습에서 장점을 찾아 본 적이 있었는가? 사람들이 가끔 “너는 어디가 제일 자신 있어?”라고 물어보면, “없어요.”라고 말을 하곤했다.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 이였다. 키도 작고, 통통하고…….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낳았는지, 어느 연예인처럼 좀 예쁘게 낳아줬었다면 하는 생각에 원망 섞인 소리를 자주 하고는 했다. 어렸을 적 부터 쭉……. 그럴때 마다 엄마는 “정상으로 낳아준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하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그거야 당연한 거 잖아요.”라고 퉁퉁 거렸었다. 그게 부모로써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쯤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을 접하고 나서는 부모님께 이렇게 낳아줘서 원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가끔 장난삼아 농담처럼이나 할 뿐.이번 수업 과제 중에 이 책이 선정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기뻤다. 예전에 막연히 한 사람이 쓴 글이라고만 생각했던 책을 성인이 되어 거의 7년 만에 다시 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역시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나은 법인가 보다. 다시 읽고 있노라니 예전 생각도 나고, 그 때의 감정이 다시 새록새록 생겨 나면서,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왜 그동안 불평, 불만만 하고 살았을까? 어떻게 따지고 보면 나는 오토다케보다 더 행복한, 복 받은 사람인데 말이다.그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들 보다 더 정상인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그저 두 다리 대신 기계에 의지 한 것 빼고는 다른 곳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안경을 착용한 사람들도 장애인이라고……. 그가 한 말의 의미는 정말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장애인이라고 하지 않음으로 고로 나도 장애인이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 내 눈은 고등학교에 입학 할 무렵에 급속도로 나빠져서 입학과 동시에 안경을 착용해야만 했다. 안경을 벗으면 바로 앞의 사람 얼굴도 잘 못 알아볼 정도로 낮은 도수에 난시까지 있는 그런 눈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나는 정상인으로 분류되어 다른 시력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똑같은 조건하에서 살고 있다. 그저 안경, 렌즈의 힘을 빌어서 살아 가는 것일 뿐이다.그런데, 오토다케의 말대로라면, 나는 정말 장애인이다. 그가 휠체어에 의지해 걷는 것처럼, 나는 렌즈, 안경에 의지해서 보고 있다. 똑같이 사고할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는데, 누구는 정상, 누구는 장애인 취급을 하며, 장애인이라는 자에게는 동정어린 시선과 봉사라는 것이 주어지게 된다.나는 장애인이고 싶지 않다. 그럼 당연히 그도 장애인임을 원하지 않겠지. 그래서 그는 장애인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같지 않은 삶을 살았다. 장애인이 아니기에…….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고 말이다. 모두의 편견과 시선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었다. 내가 나의 외모 등을 불만으로 불평하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외모를 사랑하고, 아꼈고, 좋아했다.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지금까지의 나와 비교해 보면 정말 창피하다.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장애인을 보면 그들에게 보여주었던 나의 시선과 편견에 대해 반성한다. 예전에는 장애인이 너무 무서웠다. 뭐가 무서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서웠다.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피했고, 깜짝 놀래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우연히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바로 대구에 있는 모 장애인 복지센터였는데, 그곳에는 중증 장애인들이 20명 가까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장애인을 한꺼번에 만난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너무 무섭고 떨렸다. 정신지체, 신체 부자유자들이 있는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에 막막했다. 고교시절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던 나였지만, 그래도 처음이라 그런지 센터 입구를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도 무거운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일부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의자, 침대 등에 누워 있었고, 나머지 신체부자유 장애인들은 그들의 수발을 하고 있었다. 밥도 먹여주고, 설거지도 하고, 방도 닦았다. 내가 방을 닦고 있으니, 쉬라면서 자신이 걸레를 들고 나섰다. 오히려 내가 익숙해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자기가 나서서 가르쳐 주고 그랬다. 나보다 훨씬 나았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던 사람들도 나보다 더 나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거리낌 없이 장난도 치는 친구가 되었고 나의 그 동안의 편견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 날 이후로 장애인을 만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인임에도 사회에 나와 그 시선을 극복하며 생활하는 그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1년 전 쯤, 우연한 기회에 닐(Neill)의 책을 읽은 적이있다.바로 유명한 숙제 없는 학교 서머힐 학교를 소개하는 책이였다. 그 당시 닐의 글을 접했을 때 교육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현직에 계시는 분들,또는 자식을 키우는 분들이나 자식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꼭 권하고 싶었다.그때 이 “문제의 가정”이란 책과 기타 “문제의 부모”,“문제의 아동”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었다.그런데 아쉽게 읽지 못하고 넘어갔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렇게 책을 직접 읽을 수 있어서 우선 기쁘다.닐의 책은 재밌다.우선 자신의 경험을 쓴 것도 그렇고,여러 예시를 들어서 흥미를 유발 시키는 장점이 있다.글을 보다보면 나의 어린시절이나,내가 보았던 상황들과 유사한 내용들이 많아서 공감하기도 쉽다.단점이 있다면,작자는 사회의 문제를 극단적으로 비판한다.예를 들어,무능한 의사라는 표현이든가,인간 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기존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다.어쨌든,책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다시 얘기해 보겠다.교육학 수업을 여러차례듣고 관련 서적을 몇 권 읽고,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 속에 무의식 중에 남아있는 생각,그것은 바로 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기까지는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예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학생들의 탈선,현재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 학생,성인들의 성범죄 등 모두가 역조사를 해 보면 가정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다.아무리 겉으로는 화목해 보일지라도 부모의 교육이 바르지 못했다거나 어려서 받은 상처,잘못된 가정교육은 결국 아이들을 망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이 범죄를 일으키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근 몇 년 동안 교육학을 접해온 내가 가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속담 중에 하나다.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얼굴을 보고 걷고 말할 수 있기 전에는 거의 부모와 함께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활한다.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데,특히 갓난아기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부모의 손길이 닿는 것이 전부이다.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아기가 잠을 잘 때 아기를 이불로 꽁꽁덮는 이유와 결과는 놀라웠다.우리는 일반적으로 그저 아이가 잠잘 때 편히 잘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 정도로 생각했었는데,그런 사소한 오해가 아이에게 성에 대한 신경증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가정은 결혼을 하면서 부터 형성되는 기본 1차 집단이라고 한다.이곳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기초사회화를 학습하게 되는데,이 가정의 부부의 결혼생활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화목한 가정의 자녀들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하고 밝은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고,그러지 못한 가정의 자녀들은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이런 현상은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인 것 같다.어느 가정이나 규율은 있다.그렇지만 그 규율이 강제적인 것인지 자율적인 것인지에 따라서 의미와 성격이 달라지는 것 같다.부모님이 하지마라 해라 하는 그 규율이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 통제가 되는 규율.물론 확실히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최대한의 자율적인 규율은 가정에서도 존재할 필요성은 있을 것 같다.강제적인 규제는 적대감을 일으킬 뿐이다.반면 자율적인 규율은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 주며,또한 행복한 가정 안에는 자율적인 규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예전에 어느 집에 전화가 왔다.그런데 어머니는 자녀에게 전화를 받게 하고는 “엄마 없다고 그래.”라고 자녀에게 시켰다.아이는 엄마가 시키니까 그대로 하긴 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를 몰랐다.그렇게 가끔 엄마의 주문이 계속되었다.너무나도 사소한 일이라서 나도 그냥 흘려 듣고 넘겼다.그런데 그런 사소한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부모의 말 한마디,행동 하나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자녀들은 그런 것을 분명 보고 배울 것이다.그래서 아이는 사소한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부모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자매들의 행동,말 한마디한마디도 분명히 서로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나는 SBS에서 방영하고 있는 “SOS”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이다. 시간이 되면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다. 그 프로그램에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제보를 통해 취재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그램의 일부 주제는 “가정문제”이다. 특히나 이상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들에 대한 내용도 빈번하게 취재가 되는데, 예를 들어 상습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아이, 학교를 나가지 않는 아이, 폭력적인 아이, 폭식하는 아이 등 이유도 증상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가정문제”였다. 부모님들의 장상인과 거리가 멀어서 아이들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거나,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고, 가정이란 곳에서 버림받게 했다. 모두 바르지 못한 가정환경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우리 집은 부모님이 대체로 엄격하신 편이다. 아는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시는 부모님 아래서 성장해 왔다. 집에 형제자매가 많은 편이라서 그런지,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서로 부딪히면서 살도록 하셨다. 싸움도 하고, 도움도 주고, 경쟁도 하게끔 말이다. 장난으로 부모님이 우리를 ‘방목교육’을 하셨다고 하기도 한다. 너무 감싸 돌지도 않으셨고, 너무 강제적으로 얽매여 살게도 하지 않으셨다. 학교에서 캠프가 있거나 단체 훈련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참여하게 하여 사교성이나 사회성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셨다. 일부 엄격한 규제도 존재했다. 가끔은 너무 빡빡하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습관이 되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았다. 참고로 나는 집안에서의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비공식적인 집단에서의 작은 규제들을 우습게 보거나 간과하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규제라도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돌아와서, 나의 부모님은 내 인생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교육하셨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아직 연합고사라는 것이 실시되고 있었던 곳 이여서 우리들 은 모두 중학교 2학년에 접어들면서 긴장감 속에서 학교 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간고사 성적표를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부모님께 혼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초등학교 때 부터 부모님은 항상 성적표를 확인하시고 훈계, 칭찬을 해 주셨기에 이번에도 그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수고했다”라는 말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성적이 별로 안 좋아서 혼 날 것이 두려웠었는데, 다행이 그냥 넘어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후에도 모의고사 성적, 수행평가 성적들을 가져다 드려도, 부모님은 별 말씀이 없이 그냥 넘어갔다.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망을 안겨 드린 건가?’, ‘나를 포기하셨나?’, ‘혹시 친부모가 아니야?’ 까지……. 섭섭하기도 했지만,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이유가 어찌됐든,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문제는 하나이다. 성적을 좀 더 올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부터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은 점점 상향되어 마지막 연합고사 때는 평소보다 훨씬 좋은 성적으로 유명 고등학교에 당당히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은 부모님이 보기에 나는 자극을 주면 스스로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성격임을 알기에 관심없이 내버려 두는 척 했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판단은 옳았고, 나는 부모님의 바람과 나의 바람을 모두 이뤘던 것이다.
칸트는 교육사상가라기 보다는 철학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칸트가 철학자로서의 업적이 뛰어나다 보니, 교육학자로서의 그의 모습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교육학 강의)라는 저술 이외에는 교육에 관한 그의 글이 따로 없다는 점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교육학 강의)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당시 교육의 특징과 문제점을 언급하며 올바른 교육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그는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한편으로 수용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과 논쟁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사상을 펼치게 된다.1. 생애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 4월 22일 동프러시아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말안장을 제조하는 수공업자였고, 어머니는 역시 수공업자의 딸로 태어났다. 9명의 형제 중 칸트는 넷째였다. 칸트의 어머니는 깊은 이해심과 고상한 성품을 지닌 경건한 종교인으로서 칸트의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칸트의 초기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녀는 티푸스 때문에 불행하게도 칸트가 13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8세가 되었을 때 칸트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장은 경건주의파 목사였고, 후에 쾨니히스베륵 대학 신학 교수가 되었으며, 슐쯔 목사와 친분이 있었던 칸트 어머니는 고매한 인격과 경건성을 갖춘 슐쯔 목사에게 칸트의 교육을 맡기게 된다. 슐쯔 목사는 어린 시절의 칸트에게 어머니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16세 때 칸트는 쾨니히스베륵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철학과 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크눗쩬 교수와의 두터운 친분 관계를 바탕으로 칸트는 학문의 세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1746년부터 9년 동안 가정교사 생활을 하게 된다. 1755년에 칸트는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가을에는 교수 자격을 수여 받아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철학, 논리학, 형이상학, 도덕철학, 윤리학, 수학, 신학 등 여러 분야를 15년 동안 가르치다 1770년 47세에 쾨니히스베륵 대학의 정교수로 부름을 받게 된다.그는 1776년에 쾨니히스베륵 대학의 철학과 과장, 1786년에는 총장이 되었고, 1788년에 다시 총장으로 재임되었다. 1796년에 칸트는 노쇠로 인하여 논리학 강의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저술 활동은 계속되었다. 일생을 독신으로 보낸 그는 1804년 2월 12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칸트는 일평생 자기 고향인 쾨니히스베륵에서만 살았고, 고향을 중심으로 40마일 밖을 나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도서를 통해 정신적으로 생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였다.그는 특별히 엄격히 규칙적인 삶을 영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침 5시에 기상하면 곧바로 강의 준비를 하고 7~9시(수, 토요일은 8~10시)에 강의를 진행하였다. 강의 후에는 오후 1시까지 쉬지 않고 연구하였는데, 바로 이 시간이 그의 철학적 연구 활동이 가장 심도있고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점심시간은 그에게 있어서 휴식시간이었다. 여러 손님들과 식사를 하며 4~5시까지 교제를 나눴다. 그 후 책을 읽거나 명상의 시간을 갖은 후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7시에는 산책을 했다. 그의 산보 시간이 늘 일정해 이웃 주민들이 그의 산보를 보고 시간을 맞출 정도였다. 산책 후에는 다시 책을 읽다가 정확히 10시에 취침했다.2. 교육사상1) (교육학 강의)내용 분석- 칸트가 교육에 관한 글을 단 한 편만 남기고 있기 대문에 그의 교육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학 강의)내용을 해석하는데 충실할 수밖에 없다.- (교육학 강의)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이 아니다.2) (교육학 강의)의 분류① 서론. 오늘날의 머리말, 또는 들어가는 말의 성격을 띠지 않고, 교육일반에 대한 개괄적 서술과 논 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의 본질과 과제, 영역 등이 정리됨이 없이 나열식으로 서술② 논설. 자연교육에 대하여... 양육과 훈육, 정신도야 등 교육의 제 영역이 서술. 실천적 교육에 대하여... 특별히 도덕교육이 집중적으로 서술3) 교육사상▷ “인간은 교육을 요하는 유일한 피조물이다”① [교육에 관하여]에서 인간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강조② 교육 : 도덕의 완성, 인간성의 완성③ 교육사상 : 도덕적 이상주의, 세계주의▷ 교육의 임무 (교육의 최종임무 - 인간의 도덕화!!!)① 훈련 : 아동의 동물성을 없애고 조잡한 경향성을 억제하는 것② 교화 : 읽기, TM기 등 여러 재능을 진보시키고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것③ 문화화 : 사회에 대하여 예의 바르고 고상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④ 도덕화 : 도덕적 정조를 도야하여 선으로 이끄는 것▷ 교육의 방법① 양육 : 루소처럼 소극적 방법이 아니라 인위적 요소를 가해서 자연적 발육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② 교수 : 이성을 도야(이성을 단련시키는 것)하고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강조하고, 지식은 그 전 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발에 힘쓴다.(계발적 방법)③ 훈육 ⅰ) 인간의 감각적 욕망을 억제하고 동물적 성향을 배제하며 실천이성의 무상명법에 따르 는, 즉 의무를 위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아동의 품성을 길러 주는 것ⅱ) “야만성의 제어”라고 특징지음.ⅲ) 훈육은 아동을 이성적인 것으로 인정된 규정들에 복종시키고 그에게 법칙의 강제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ⅳ) 교육자는 어린이가 이성적 규칙을 따르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 이 훈육의 과제인 것이다.▷ 교육과 계몽① 루소의 영향을 많이 받음.- 계몽주의자 루소의 열렬한 추종자였다.② 그러나, 칸트는 단지 루소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자의적인 자유 이념보다는, 인간 의 자율성에 기초하면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근거로 하는 형태의 자유로운 의지로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ⅰ) 자유는 단지 쇠사슬에 묶인 억압과 소외, 타율로부터의 탈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ⅱ) 자유는 도덕적인 선한 행위를 할 수 있고, 또 하는 자유라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 음.(칸트의 “인간학적”인 근거로 설명이 가능)ⅲ)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는 선한 것이요, 때문에 도덕적이다.ⅳ) 자유의 의무 성격 : 그가 그것을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이라고 부름으로써 더욱 강조.☞ 정언명령1) 절대적인 것으로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2)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는 의지가 언제나 보편적인 일반의지에 상응하여야 함을 강조3) 모든 개인은 자신의 의지가 보편적인 법칙에 맞도록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4)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님. 오히려 인간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는 모 든 윤리의 기본 바탕이 된다.5) 도덕적 인격자란 도덕적인 법칙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자유를 지닌 이성적 존재이다- 도덕법칙이란 여기서 정언명령 즉, 순수한 선한 의지 또는 자유의 명령을 의미- 정언명령은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인 의무(명령)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요청이다.- 이성적 명령이란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해 행동하는 것을 말함.*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이성적인 의무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이성을 배반하는 것이 되고, 미 성숙성에 머무르게 되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됨. 즉. 자기 잘못이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못된다는 것임.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칸트는 계몽이란 개념을 사용☞ 미성숙성 - 의무를 모르는 사람, 정언명령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 가치있는 삶에 관심이 없는, 노력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사람☞ 미성숙성에서 탈출하는 방법 - 개혁을 통해서 가능. 즉, 계몽되어야 함.☞ 계몽 - 개인의 준칙이 일반 법칙으로 될 수 있도록 이끄는 인간의 성숙성☞ 계몽된 인간 - 도덕적인 이성인으로서의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 ( 칸트에게 있어서 계몽은, 교육을 이끄는 원칙)▷ 인간 이해1) 이원론적 인간 이해- 이분법적으로 파악① 인간은 두 세계에 존재하는 시민ⅰ)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세계 (동물과 같이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인)ⅱ)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자신의 이성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 행동 - 단지 이성인이 될 수 있는 소질을 갖고 태어났을 뿐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자연인”이다. : 이성의 조절 능력에 따라 인간의 동물적 충동과 욕구가 억제 될 때 도덕적으로 선한 참 인간이 될 수 있다!2) 교육적 동물- 교육을 받아야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과 비교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