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의 이해와 평가목차Ⅰ.서론Ⅱ.이상의 생애와 그 시대적 상황1.이상의 생애2.시대적 배경Ⅲ.작품을 통해서본 이상1.모더니즘의 개념2.이상의 작품에서 문학세계1)통사체계의 파괴2)문학 세계의 분류3)시간의식4) 자의식과 내적 독백5) 공간성과 시간성의 문제Ⅵ.결론Ⅰ.서론이상, 그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다. 문학적 평가뿐만 아니라 짧았던 생애와 이채로운 경력이 그를 더욱 신비한 인물로 만들었다. 그는 희대의 천재로 불리기도 하고, 전위적인 실험주의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를 철저히 19세기를 거부한 반전통주의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그저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정신질환자였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도 이상의 문학을 하나의 개념으로 명확히 규정지은 이는 없다.그가 1934년 오감도(烏瞰圖)라는 시를 발표한 후, 동시대 비평가인 최재서 등에 의해 주목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일부 비평가들은 난해하고 우울한 그의 문학적 자세를 보아 왔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 그의 시는 1930년대 한국시의 새로운 양상으로 수용될 뿐만 아니라, 지나친 실험성 혹은 반전통성 때문에 매도되기 일쑤였다. 그의 문학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문들이 쓰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가 이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신화적인 존재로 살아있고 그의 문학이 문학사 속에 흔들림 없는 정전으로 남아있는 것은 비록 그의 문학이 만족스럽지 못한 미완성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의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이상은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공학도였고 직장도 좋았지만, 지병인 폐병, 조루증과 성기능의 퇴화 그리고 중인 계층 출신으로서 민족의 밑바닥으로부터 말을 굴착하지 못하고 바로 근대의식의 중심지에서 그 의식에 호도되고 만 사실)은 그를 절망하게 하였다.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남은 생을 향락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도, 아니 그러한 상황 속에서부터 탈출하기 위한 최후의 무기로험해야 했을 정신적 갈등은 여러 가지로 짐작되고도 남는다. 대를 이을 장손이라고 시아버님이 총애하는 해경에 밀려 개밥의 도토리 신세 격이 된 문경을 볼 때마다 큰어머님이 속을 끓였을 것이고 그 때문에 남편과 시아버지 앞에서는 해경을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눈을 피해서는 박해를 했으리란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기다가 생부모와 떨어진 해경에겐 불만이 많았을 것이고 이 불만의 토로는 두 살짜리의 경우 언어 대신 울음으로 대신했을 것이다. 이를 달래고 어르던 큰어머니는 아무리 속이 좋아도 필경 손찌검으로 울음을 달랬을 것이고 그때마다 큰어머니는 무서운 존재로 어린 해경에겐 비쳤을 것이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같은 또래인 문경에게도 그는 박해를 받았을 게 분명하다. 자신의 배경을 믿고 해경에게 함부로 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울면 '이 바보, 울보야'하고 비아냥거렸을 것이고 그게 싫어 더 큰 소리로 울면 큰어머니의 손찌검이 예외 없이 가해졌을 게 분명하다.이런 연유로 해서 체험한 것이 여성공포증이다.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큰어머니는 나를 때리고 문경에게는 번번이 패배함으로써 일종의 여성콤플렉스에 걸리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분리불안과 여성공포증이란 복합적 체험은 형식적으로는 여성에게 복종하는 형식을 취하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리란 의식과 무의식의 지속적 싸움인 정신역동(精神逆動)으로 작용함으로써 훗날 여성모독이라는 의외의 앙갚음으로 노출되게 된다. 이 부분은 이상 문학의 모티브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용인 및 동인으로 작용했고 그 때문에 그의 문학의 본질 및 원형질로 작용했다는 사실에 관심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이렇게 여러 가지 정신적 충격을 체험하면서 자란 해경은 매우 고독한 성장기를 지녔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의 양부가 된 큰아버지 김연필은 李箱이 성장하면 관리를 시키리라 마음먹고 동네 껄렁패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도록 그를 방에 가둔 채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문고리를 잠가버렸다고 한다. 그 바람에 어린 해경은 벽에 걸린 거울 0년대를 지배했던 이와 같은 허무의식은 이상이 문학 활동을 전개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Ⅲ.작품을 통해서본 이상1.모더니즘의 개념이상을 논하기 전에 모더니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모더니즘에 대해 알아보자면, 모더니즘(modernism)은 현대주의 또는 근대주의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로서 일반적으로는 기성도덕과 전통적 권위를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도시의 시민 생활과 기계문명을 구가하는 사상 예술적 사조를 의미한다. 문예사조로서 모더니즘은 대개 두개의 뜻을 가지는데 넓은 의미로는 상징주의 이후에 나타난 전위 예술 즉 인상주의 미래파 야수파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주지주의 이미지즘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로는 주지주의적인 특성을 띠는 영국과 미국의 이미지즘과 모더니즘을 가리킨다.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구 사회는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사람들은 안정감을 잃는다.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됨으로써 구내와 국외적으로 큰 변란을 겪는다. 1차 세계 대전이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은 서구가 직면한 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낸 징후들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2차 산업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화 라디오 항공기와 같은 새로운 기계와 그것의 출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한 사회 현상들로 말미암아 어떤 식으로든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모더니즘의 의미를 무엇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상적 배경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륙의 아방가르드주의)나 영미의 주지주의나 다 같이 일종의 지성주의 신비적 허무주의 불연속적 세계관 개인주의 사조 등에 의해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대륙의 초현실주의의 경우 프로이트)에 의해 개척된 정신 분석 이론에 의하여 인간의 내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초월적 실재를 추구하던 상징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에 비해 영미의 모더니즘은 T. E 흄의 불연속적 세계관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불연속적 세계관이란 종래의 유기적인 세계관불안한 의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고립된 자의식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합리적인 소통 가능성에 대한 절망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성에 기초한 절대적인 진리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쿄행으로 , 창작 방법으로는 수필체의 소설이 나타난다.셋째, 수필체 소설들로 (중앙, 1936. 6),(조광, 1936. 9), (조광,1937. 2), (조광,1937, 5)등이 이에 해당된다.이 작품들은 이전의 형식화된 기호 체계에서 벗어나 현실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관념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한 인물간의 갈등과 대립보다는 강한 자의식을 가진 인물이 객관적인 현실을 관찰하며, 자의식을 확증할 수 있는 몇몇 현실적 징후들을 찾아 헤매는 내면세계가 두드러져 있다.이렇듯이 그의 문학작품은 일상의 기호 체계를 과감하게 부정한 자리에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문학에 대해 한편에서는 일상적인 문법 구조의 파괴를 들어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심리소설의 개척자,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하고 미적 자유성을 확립한 모더니즘의 구현자로 높이 평가되고 ,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부정한 극단적인 관념론자로 규정되기도 했다.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는 그의 문학작품이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강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인간을 구체적, 역사적 인간으로 설정하고 그 속에서 인간 주체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지닌 점에서 비롯된다.그의 작품 는 최재서)로부터 ‘리얼리즘)의 심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최재서는 객관적 태도로 객관을 보았던 박태원의 을 ‘리얼리즘의 확대’로 객관적 태도로 주관을 보았던 날개를 ‘리얼리즘의 심화’로 파악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연관 의식의 부족’을 후자에 대해서는 ‘생활 자체의 리듬으로부터 격리된 모럴 부재’를 날카롭게 비판했다.이러한 경향은 시에을 때 참 허망하였다.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B)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중 략)………나는 또 희락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 거렸다.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희락의 거리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밑줄 필자)C)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가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지문 A), B), C)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의식 상태가 구체화 되어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지문 A)에서 주인공의 의식 상태는 허망한 것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그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는 지구’와 ‘지구위에 사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세계에 대한 자아에서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자아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었는데 이상에 와서 이러한 종래의 창작방법은 그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아의 발견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지문 A)의 주인공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구 곧 세계 속에서 뒤틀리고 현기증이 알 것 같은 자아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일으키고 있는 현기증은 그럼으로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속의 현기증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자아의 세계와 뒤틀림에서 싹튼 자아에 대한 자각은 지문 B)로 연결되고 있다. 주인공은 이제 자아에 대한 눈뜸을 통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아울러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