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아 교육의 역사1. 특수학교(급) 교육의 발전1) 정신지체학교 교육의 발전1970년대에 접어들어 정신지체학교의 설립이 본격화 됨으로써 15개 학교가 새로 설립되었고, 1980년대에는 24개 학교가 증설되어 정신지체학교 교육이 양적으로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신지체 특수학교 교육은 사립학교가 제일 먼저 시작되어 70년대에 사학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80년대에 와서 공립학교가 크게 확대되었고, 90년대에 비로소 국립학교가 설립되었다.1) 사립학교우리나라에 정신지체 학교교육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1966년 이영식 목사에 의해 설립된 대구보명학교이다. 1960년대에 불과 2개 학교(대구보명, 서울명수)였던 것이 1970년대(7079)에 들어와서 12개 학교가 새로 설립되었고, 1980년대(80-89)에는 14개 학교가 새로 증설되어 사립 교육기관의 급격한 확대 양상을 보였다.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확대되었다.1960년대 대구보명, 서울명수1970년대 혜인, 서울인강, 안동영명, 보령정심, 수원자혜, 인천예림, 다니엘, 홀트, 성베드로, 부천혜림, 서울충현, 거제예광1980년대 은평복지, 대구선명, 성심, 교남, 새얼, 성광, 함평영화, 목포인성, 인덕, 전주자림, 동방, 제주영송, 호남영명, 태연1990년대 이후 제천영암, 밝은학교, 창인학교 1991.4.25, 제천청암학교 1990.3.5, 서산성봉학교 1998.9.2, 수도사랑의 학교 1998.1.26, 한국육영학교 1992.9.23, 부산혜원학교 1995.3.1 구.혜성구화학교, 희망학교 2000.11.1, 부산천사의학교 2001.1.182) 공립학교정신지체 공립 특수학교가 최초로 설립된 것은 1968년 대구남양학교이다. 1970년대에는 3개학교(부산혜성, 광주선명, 청주혜원)가 설립되었고, 1980년대에 비로소 춘천동원학교를 비롯하여 9개 학교가 증설되어 공교육기관으로서의 발전적인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1960년대 대구남양, 경남혜림1970년대 부산혜성, 광주선명, 청주혜원1라 그 당신 중학교에 우열반 편성 논의와 때를 같이 하여 저능아 및 지진아의 교육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초등학교에 특수학급 설치 문제가 거론되면서 비롯되었다.(1) 국민학교 특수학급 교육우리 나라 특수학급 교육이 발전해 온 과정을 몇 단계로 구분지워 볼 수 있다.첫 단계는 특수학급 교육의 [시도기]로서, 1971년 대구 칠성국민학교에 학력구제의 성격을 띤 1개의 특수학급이 자생적으로 운영되면서부터였고, 사실상 이것이 정신지체아동을 위한 특수학급의 태동이 된 것이다. 경상북도 교육위원회에서는 이를 계기로 특수 시책의 하나로서 계속 특수학급을 증설한 바 1972년에는 18개 학급, 1973년에는 33개 학급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에 힘입어 문교부에서는 특수학급 교육의 일반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73년 9월에는 제1회 [특수학급 설치와 운영에 관한 세미나]를 가짐으로써 특수학급 설치에 대한 검토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게 되었다. 또한 그래 11월에는 [정신박약에 관한 아시아 회의]가 마닐라에서 창설되어 국내외적으로 정신지체교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이러한 토대 위에 교육가능 정신지체 특수학급이 1974년에는 전국 각 시군 소재지 초등학교에 1개 학급씩 설치되어 모두 210개 학급으로 확산되었고, 1976년에는 350개 학급으로 증가되었다. 이것은 특수학급 교육의 정착을 위한 국가적 의지와 노력의 공식적 표명이었다. 그래서 1974년을 기점으로 한 이 시기를 특수학급 교육이 [정착기]로 볼 수 있다.그러나 이 때부터 특수학급 교육의 질적개선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어 1977년 1월에 제2회 특수학급 세미나에서[특수학급 교육의 질적개선과 효율적 운영]이 논의되었다. 1977년 12월 31일[특수교육진흥법]이 공포되면서 특수교육 발전은 새로운 기틀과 정비체제로 돌입하게 되었고, 이 시기를 특수학급 교육의 [내실기]라 할 수 있다.그러나 [세계장애자의 해]인 1981년을 기점으로 특수학급 교육의 양적 발전에 다시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문교부에서는교 ② 의성중학교 ③ 안동복주중학교 ④ 성주중학교 ⑤ 영주중학교 ⑥ 구미중학교 ⑦ 고령중학교 ⑧ 문경중학교 ⑨ 상주중학교 ⑩ 예천중학교이상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정신지체 특수학급의 연도별 증가현황과 그 전개 과정을 살펴본 바, 우리 나라 특수학급 교육을 초등학교는 70년대, 중학교는 80년대 들어와 시작된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특수학급 교육이 태동하게 된 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2. 취학 및 출현 실태정신지체의 출현율출현율은 1995년과 2000년의 실태조사에서 정신지체는 각각 81,509명과 108,678명이 등록되었다. 정신지체출현율의 변화를 보면 1980년에 0.12%, 1985년에 0.19%, 1990년에 0.08%, 1995년에 0.07%, 2000년에 0.12%이다.취학실태는 전국특수교육요람을 참고해서 2000년, 2002년, 2003년 등 연도별로 살펴보고자 한다.2000년에 전국의 정신지체아 취학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유치부초등부중학부고등부전공과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1287117596,8553593,*************35유치부초등부중학부고등부전공과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1326447756,4643653,9613123,62962672유치부초등부중학부고등부전공과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학급수학생수1947407826,2974014,0733423,869656542002년도에 전국의 정신지체아 취학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2003년도에 전국의 정신지체아 취학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3. 교육과정 운영1)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의 변천[제 1차 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우리나라 정신지체학교는 1967년에 처음 설립되었지만, 학교 교육과정 기준은 정해진 것이 없이 학교와 교사에 의해 임의적으로 운영되었다. 이런 문젤ㄹ 해소하기 위해 교육부는 1974년에 처음으로 정신지체학교 초등부 교육과정을 제정하여 현장학교에서 사일을 국정 지표로 하고 있던 때이다. 그래서 학교교육은 올바른 정신과 튼튼한 몸을 단련하는 건강한 사람, 취향이 고상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적인 사람, 지식과 기술을 익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있는 사람, 인간을 존중하며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적인 사람, 자신과 공동체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며 실천하는 자주적인 사람을 자라게 하는 전인적인 발달을 요구하고 있었다.이 교육과정의 철학적 배경은 진보주의에 입각한 인간중심 교육과정으로 인지적 결과보다는 정의적 영역을 더 강조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 전체적인 사람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지체아의 자아실현과 통합교육을 통한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실현하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제 3차 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일반학교 5차 교육과정 개정 적용기간에 제 3차 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은 문교부고시로 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의 이름으로 개정되었다. 이 교육과정은 시대적으로 제6공화국의 복지정책과 1989년의 세계 장애인 올림픽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장애인의 홀대에서 정신지체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장애인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교육을 실천해 옮기려는 교육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 교육과정이 철학적 배경은 지금까지 본질주의에 의한 학문중심의 교육과정과 진보주의에 의한 경험 및 인간중심의 교육과정을 통한한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교과, 경험, 학문, 인간중심의 조화로 교육과정으로 단일 사조를 지양하고 통합된 교육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기초 교육과 미래사회 대비교육을 강조하고 있다.[제 4차 교육과정]교육부는 1981년 제 4차 교육과정 개정작업을 마치고 특수학교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1982년 [특수학교 교육과정 시안]개발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과 특수교육연구소에 의뢰하여서 개발하도록 하였다. 이 시안 개발을 위해서 70여회에 걸친 전문가의 세미나 및 워크샵을 거쳐 시안을 마련하여 1983년 문교부 특수학교 교육과정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같은 해 12월 31일 문등학교 1~3학년 해당 연령의 정신지체아가 다 성취해야 하는 내용이 아니라 정신지체학교의 1단계 교육과정의 의미를 가지며 모든 교육과정은 개인의 능력에 부응하여 계속성이 유지되도록 운영지침을 정하였다. 따라서 이 교육과정은 개별화 교육의 원리에 통하게 만들어 진 것이다.제 4차 교육과정에 의해 개발된 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의 효율화를 위해서 교사용 지도서를 개발하여 현장에 교육과정이 실용화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교실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 자료의 개발 등은 그 수가 아주 소수여서 미흡하였다.[제5차 교육과정]제 5차 교육과정의 내용은 제4차 교육과정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요육활동의 내용이 정선되었으며, 생활의 내용은 더욱 정리되어 분명해졌다. 개별화 교육에 대한 요구가 더 많아졌는데 교육과정 명칭을 기준으로 제시한 점은 이 교육과정이 국가적 수준의 기초이고 각급 교육청이나 특수학교에서 재구성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한 점이다.제 5차 교육과정에 의해 각 특수학교에서는 학교수준 교육과정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내용구성에 대한 이해부족과 능력부족으로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앞으로 효율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초석을 쌓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정신지체 학교 제 7차 교육과정정신지페와 정서 장애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 교육은 기초 생활 능력과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고, 진로 개척 능력을 개발하며, 장애 극복 의지를 길러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데 중점을 둔다.(1) 원활한 의사소통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언어 경험을 가진다.(2)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기본 생활 습관을 기른다.(3)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기본 생활 습관을 기른다.(4) 원만하고 슬기로운 사회 생활에 필요한 과학적 기초 지식을 습득한다.(5) 건강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신체 활동과 보건 위생 활동의 경험을 가진다.(6) 일상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가진다.(7)
정신지체아 교육의 역사한국의 정신지체아 교육의 시작은 1949년 국립 각심학원의 의하나 이는 수용시설로서 교육이 주 목적은 아니었다. 한국구화학교가 1963년에 문교부 인가를 얻어 농아와 정신지체아의 교육을 병행했고 독립된 정신지체 학교는 1966년 설립된 대구 보명학교이다. 구미에 비하면 약 100여 년이나 뒤지고 있고, 정식 학교교육을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특수교육, 전반적 상황 즉 시설, 환경, 인적, 제도적 모든 면에 걸쳐 부실한 면이 너무나 많아 하나하나 해결해 가야 할 과제들이다.1989년 현재 정신지체학교(공립 19, 사립 40)가 59개교에 10,916명이 재학하고 있다. 특수학급은 1972년 이래 초등부 1,771개교에 2,341학급 23,280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중학부는 567개교에 567학급 5,810명이 재학하고 있다. 이들 학급의 거의 대부분이 정신지체학급이다. 복지시설로는 33개의 수용시설과 기타 이용시설 및 유관기관이 다수 있다. 최근 수년간 특수교육은 시설등과 같은 양적인 면에서 많이 발전되었다.그러나 지금은 양적인 증대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와 아울러 발전을 가져올 시기다. 현대는 교육의 내용 및 방법적 측면에서 더욱 발전을 이루어야 하며 정상화(normalization)를 실현시켜야 할 시점에 도래해 있다.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서비스가 정신 지체아들에게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특별한 사람들이나 집단의 노력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강력한 사회 정치적인 영향도 관련된다.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정신지체아 교육 내지는 특수교육이 당면한 문제는 새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수교육의 역사적 문헌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문제들이 과거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우리 나라에 정신지체 학교교육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1966년 이영식 목사에 의해 설립된 대구보명학교이다. 1960년대에 불과 2개 학교(대구보명, 서울명수)였던 것이 1970년대(70~79)에 들어와서 12개 학교가 새로학생을 같이 수용한 학교가 대부분이고, 최근에 설립된 학교는 처음부터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복합 수용하는 학교의 성격으로 출발되는 경우가 많다.정신지체 사립 특수학교의 설립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첫째, 정신지체 아동 교육이 1970년대까지는 주로 사립기관에 의존해 왔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에 새로 설립된 학교는 공립이 3개교인데 비해 사립은 12개 학교로서 사립학교가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츰 공교육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1980년대에 와서 증설된 학교는 사립이 14개교, 공립9개교로서 사립학교의 비율이 60%로 상당히 낮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80년대 중반부터 정신지체아동에 대한 공교육적인 확대가 점차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둘째, 80년대 중반부터 청각장애학교와 지체부자유 학교에서도 정신지체 학생을 함께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일 장애 학생의 취학감소에 따른 학교경영 문제와 또 장애영역의 전통적인 분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에 의해 점차 한 학교에 여러 장애학생을 복합 수용하려는 경향이 사립 교육기관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사립 특수학교 가운데 청각장애학교로서 정신지체 학생을 동시에 수용하게 된 학교는 ① 학국구화학교 ② 전북혜화학교 ③ 대전원명학교 ④ 부산구화학교 ⑤ 경북영광학교 ⑥ 구미혜당학교 ⑦ 포항명도학교 등 7개 학교이다.80년대 이전에는 청각장애 학생만 수용하던 학교가 80년대에 들어와 정신지체학생을 같이 수용한 학교가 대부분이고, 최근에 설립된 학교는 처음부터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복합 수용하는 학교의 성격으로 출발되는 경우가 많다. 지체부자유 학교로서 정신지체 학생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학교로는 부산동암학교, 주몽학교 2개교이다.공립 교육기관의 설립정신지체 공립 특수학교가 최초로 설립된 것은 1968년 대구남양학교이다. 1970년대에는 3개 학교(부산혜성, 광주선명, 청주혜원)가 설립되었고, 1980년대에 비로소 춘천동원학교를 비롯하여 9개 학교가 증설되어 공교육기관으로서의 두 학교만이 중학부를 설치?운영했을 뿐 모두가 초등부에 한정되어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91년에 와서는 모든 학교가 중학부 309개 학급을 설치?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가 고등부 3~6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수로는 부산혜성학교가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의 변천교육법(법률 제 86호)은 1949년 12월 26일에 제정되어 동월 31일에 공포 ? 시행되었다. 이 교육법에는 초등학교를 비롯한 특수학교의 교육목적과 목표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교육법의 규정에 따라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이 제정 ?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신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 교육과정은 마련되지 못하고, 단지 일반학교 교육과정을 준용하여 각 학교별로 관례나 경험에 의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토록 함으로써 특수학교의 특수성을 살리지 못하였다. 특히, 정신박약 아동을 비롯한 기타의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은 당분간 일반학교 교육과정을 준용하되, 장애특성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융통성 있게 운영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별도의 교육과정을 마련하지 못하였다.1974년 1월 31일에야 정신박약학교 초등부 교육과정이 문교부령 제 334호인 ‘교육과정령 중 개정령’ 제 2조 제 4항의 규정에 의하여 별책 6의 2호 처음 제정 ? 공포되었다. 제 1차 정신박약학교 교육과정에서는 교육 가능급 정신박약아의 특성에 유의하여, 초등학교에 준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그 실생활에 필요한 기초적 지식과 기능을 습득시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였다.한편, 특수학교 교육과정은 1983년 12월 31일 문교부 고시 제 83-13호로 전면 개 ? 제정되었다. 그리하여 ‘맹학교 1, 농학교 2, 정신박약학교 3, 그리고 지체부자유학교 4’로 하였다. 이 교육과정은 1985년 3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이때의 정신박약학교 교육과정은 ‘훈련가능’과 ‘교육가능’으로 이분하고, ‘훈련가능 정신박약’은 초등, 중학, 고등부로 나누어 제정하였다. 그리고 ‘교육가활, 고등부 교육과정은 직업생활로 확대 계열화되도록 하였다.이러한 기본원칙과 개정방향을 토대로 마련된 정신지체학교 교육과정 기준은 다른 장애영역의 교육과정 기준과 마찬가지로 1993년 3월 1일 신입생부터 시행되었다.시 기1차 교육과정(74.1.31)문교부령 제 334호2차 교육과정(83.12.31)문교부고시 제 83-13호3차 교육과정(89.12.29)문교부고시 제 89-10호제 ? 개정의배경▶ 1967.4.15 맹?농학교 교육 과정 제정시 제외됨.▶ 정신박약아, 기타 장애학생 은 일반학교 교육과정 준용▶ 장애특성에 맞게 융통성있게 운영토록 규정함▶ 4개 영역의 특수학교 교육과정이 제정되었음.▶ 훈련가능, 교육가능으로 2분함▶ 훈련가능은 초, 중, 고등부로 나누어 제정▶ 2차 교육과정에서의 새로운 요구와 문제점 노출됨▶ 대구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에 의뢰. 현행 교육과정의 적절성과 효과를 탐색케 함.교육과정의구성방침▶ 교육가능의 초등부교육은 일반 초등학교에 준하여 실시.▶ 기본 방향은 실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기능을 습득시키는 생활교육? 교육가능급 - 특수학교? 학습부진아 - 특수학급? 훈련가능급 - 제외▶ 건강한, 심미적인, 능력 있는, 도덕적인, 자주적인 사람 육성.▶ 장애특성에 따른 교육내용▶ 적성 직업교육▶ 장애극복 능력의 신장▶ 교육적 관점의 변화를 중시함.▶ 목표의 적절성과 연계성 고려.▶ 교육내용 선정은 생활경험 교육과정에 토대▶ 통합적 교육경험 이룸.▶ 사회, 직업생활에 적응하기▶ 구체적인 개별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함교육목표▶ 심신의 조화적 발달▶ 신변생활을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기초생활습관 함양▶ 집단생활을 통한 사회생활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 육성▶ 작업활동을 통한 근로 의욕과 태도 육성▶ 잠재능력 계발로 기초학력과 기능습득▶ 총괄목표 -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능력을 기르고 건전한 심신의 건전한 심신의 발달을 도모▶ 세부목표 - 사회, 언어, 인지, 건강, 예능, 요육활동의 구체적 목표제시▶ 정신지체 유아 조기교육에 상응하는 목표 진술▶ 절한 여가 선용의 지도▶ 학생의 상태와 실정에 알맞은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 평가 지침에 관한 사항은 구 과정에는 없었음▶ 특수학교 교육과정 기준의 성격을 분명히 함▶ 무학년제의 융통성과 탄력성 있는 운영방법 도입▶ 발달수준에 따른 개별화 교육의 실천▶ 중증 중복장애아에 대한 지도 방안 제시▶ 교육과정의 계속적인 평가, 보완, 개선방안 제시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서비스가 정신 지체아들에게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나 집단의 노력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강력한 사회 정치적인 영향도 관련된다.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정신지체아 교육 내지는 특수교육이 당면한 문제는 새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특수교육의 역사적 문헌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문제들이 과거의 상황과 아주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특수교육의 이슈, 문제, 아이디어들은 발생하고, 성숙하고, 결실을 맺고 그리고 다시 조건이 그들의 성장에 적합성을 띨 때 나타난다.정신지체의 출현율정신지체는 뇌성마비보다 12배 이상, 전맹보다 100배 이상 많이 출현한다(Batshaw & Perret, 1992). 그러나 정신지체의 출현율도 진단?평가준거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지능지수만을 정신지체 판별의 유일한 준거로 설정하여 -2 표준편차 이하의 학생들을 정신지체로 선정하면 그들의 출현율은 약 2.3%로 추정되며, IQ 75이하를 정신지체로 간주하면 그들의 출현율은 약 5.5%로 추정될 수 있다.Arc(1982)는 1980년대 초 각각의 지역에서 수행된 출현율에 관한 각종 연구들을 조사하여 일반인의 2.5~3.0%가 정신지체를 지닌다고 결론을 내렸고, Fryers(1993)도 1990년대의 출현율 연구에 관한 조사를 통해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가 회원국의 정신지체 출현율을 수합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신지체는 연령별로 0~4세에서는 0.21%, 5~19에서는 0.46% 출현하고, 남자의 경우에는 0.36% 여자의 경우에는 0.30% 출현하며, 지역별로는 아다.
서 론한국사에 있어서 조선 후기는 중세 사회의 틀 안에서 근대를 지향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태동했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민중의 사회적 성장과 민중 문화의 발달 등 근대 지향의 계기를 마련하는 새로운 변화들이 대두하기 시작한다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오늘날 ‘실학파’라 일컫는 진보적 문인 학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들은 종래의 관련학자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지원이다.연암은 조선 후기와 시대를 함께 하는 문인으로서 사상과 문학성이 골고루 갖추어진 문인이었으며 실학을 문학에 참여시켰던 진정한 지식인이었다.연암은 문학이 과거를 통해서 입신하는데 필요한 사장(詞章)도 아니며, 산림으로 물러나서 심성을 기르는 데 필요한 재도지기(載道之器)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에게 문학은 현실을 제대로 펴지 못한 위치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선비가 할 수 있는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각을 바탕으로 실학을 문학을 통해 실천했다.이러한 연암의 문학관을 그의 생애와 작품을 살펴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본 론1) 박지원의 생애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북학(北學)의 대표적 학자로, 그의 활동 영역은 소설?문학이론?철학?경세학(經世學)?천문학?병학(兵學)?농학 등 광범위했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필균(弼均)이며, 아버지는 사유(師愈)이다. 그의 가문은 노론(老論)의 명문세신(名門世臣)이었지만, 그가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100냥도 안 되는 밭과 서울의 30냥짜리 집 한 채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영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도 척신(戚臣)의 혐의를 피하고자 애썼으며, 청렴했던 조부의 강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그의 처삼촌이며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잃고 있었다.2) 연암 박지원 소설의 일반적인 특징연암 박지원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는 것은 풍자적 성격과 사실주의적 특성이다. 연암 박지원 소설에 있어 풍자란, 중세적 봉건 사회가 무너져 가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는 역사적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 그 모든 추억들을 직시했던 비판적 태도로 나타난다. 또한, 그는 서민들의 삶의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의식 세계를 확장하면서 당대 평민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뛰어난 소설적 성과를 이룩했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 : 연암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비판과 풍자이며 이는 “양반전”과 “호질”에 잘 나타난다.◎새로운 인간형 제시 : 평범한 사람 혹은 사회에서 천대받는 인물들로서 전대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인물로 “광문자전”의 '광문' “예덕선생전”의 '엄행수' “마장전”의 '송욱', '조탑타', '장덕홍'이 그런 인물이다.◎인간성의 긍정과 평등 사상 : 인간성을 긍정하고 남녀귀천에 관계없이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광문자전” “열녀함양박씨전” 등에서 잘 나타난다.3) 실학사상과 문학관한국사에 있어서 조선 후기는 중세 사회의 틀안에서 근대를 지향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태동했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민중의 사회적 성장과 민중 문화의 발달 등 근대 지향의 계기를 마련하는 새로운 변화들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오늘날 '실학파'라 일컫는 진보적 문인 학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들은 종래의 관련학자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지원이다. 당시 박제가, 홍대용 등과 함께 청조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사상은 문학에도 반영되었다. 특히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을 발표, 양반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라도 하라고 대든다. 허생은 책을 덮고 탄식하며 문을 나선다. 한양에서 제일 부자라는 변씨를 찾아가 만냥을 꾸어 안성에 내려가 과일 장사를 시작하여 폭리를 얻고,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번다. 그 뒤, 어느 사공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 하나를 얻어 변산에 숨어 있는 도둑들을 설득하여 각기 소 한 필과 여자 한 사람씩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무인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삼 년 동안 거두어들인 농산물을 흉년이 든 일본에 팔아 백 만금을 얻게 된다.그는 섬사람을 모아 놓고 이 섬은 땅이 작은 데다 자신 또한 덕이 부족함으로 이 섬을 떠난다고 하고, 외부로 통행할 배를 불태우고 50만금은 바다에 던져 버린 뒤 글 아는 사람을 가려 함께 본토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 10만금을 변씨에게 갚는다. 허생은 집을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 남산 아래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그는 변씨가 돈을 돌려주려고 하여도 받지 않으며 호구 할 정도의 식량만 받고, 술을 가져가면 즐겨 마시면서 변씨에게 돈을 번 까닭을 이야기한다. 변씨로부터 허생의 이야기를 들은 이완 대장이 변씨를 데리고 허생을 찾는다. 허생은 이완에게 와룡선생을 천거하고,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 후손에게 시집보내고, 강남을 정탐하고 국치를 설욕할 계책을 세우겠냐는 물음에 이완이 모두 어렵다고 하자 화가 난 허생은 칼을 찌르려 하자 이완은 피하여 달아났다. 이튿날 다시 그를 찾아갔으나 이미 자취를 감추고 집은 비어 있었다.양반전(兩班傳)정선군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위인이 현명하고 정직하며 독서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놀기를 좋아하고, 신임군수가 도임하면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그의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는 집이 가난하여 하는 수 없이 관가에서 내 주는 환자를 타 먹고 살았다.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내다 보니 어느 덧 천여석이나 되었다. 수찰하던 관찰사가 이 고을에 와서 관곡을 조사하였다. 관곡 천석이 부족한 것을 안 관찰사는 대노하여 환자를 타 먹은 그 양반을 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더러우나 의를 지킴은 꿋꿋하니 엄행수를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 되랴. 이에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이라 부른다는 것이다.민옹전(閔翁傳)남양(南陽)에 사는 민유신은 이인좌(李隣佐)의 난에 종군한 공으로 첨사(僉使)를 제수받았으나, 집으로 돌아온 후로 벼슬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매우 영특하였으며 옛사람들의 기절(奇節)과 위적(偉蹟)을 사모하여 7세부터 해마다 고인들이 그 나이에 이룬 업적을 벽에다 쓰고 분발하였으나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한다.70세가 되자 그 아내가 올해는 까마귀를 그리지 않느냐고 조롱했는데, 민옹은 기뻐하며 범증(范增)은 기이한 계교를 좋아했다고 쓰고 태연하였다.작자가 18세에 병으로 누워 음악?서화?골동 등을 가까이 하며 더러는 손님을 칭해 해학과 고담을 들으며 마음을 위안하고자 했으나, 우울한 증세는 풀 길이 없었다. 마침 민옹을 천거하는 이가 있어서 그를 초대했는데, 민옹은 도착하자마자 인사도 나누지 않고 때마침 피리 불던 이의 뺨을 때리며 "주인은 기뻐하는데, 너는 왜 성을 내느냐"고 꾸짖었다. 작자는 웃으며 악공들을 돌려보내고 그를 맞이했는데, 민옹의 나이는 73세였다. 민옹은 기발한 방법으로 환자의 입맛을 돋우어주고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민옹은 어느 날 밤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마구 골려대고 있었다. 그들은 민옹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딴은 어려운 질문을 퍼부었으나 민옹은 끄떡도 않고 대답하였다. "귀신을 보았는가?" "어두운 데 앉은 사람이다. " "신선은?" "세상 살기를 싫어하는 가난한 사람.", "나이 많은 것은?" "글을 많이 읽은 사람", "가장 맛좋은 것은?" "소금", "불사약은?" "밥.",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 이처럼 그의 대답은 쉽고 막힘이 없었으며 자기를 자랑하기도 하고 열 사람을 놀리기도 해서 모두 웃었으나 그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누군가 해서(海西)에 황충(蝗蟲)이 생겨 관가에서 황충잡기를 독려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민옹은 곡식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시를 보여 주면서 이 사람만은 알아주지 않겠는가 했는데, 연암은 희롱으로 보잘 것 없다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가 다시 탄식하며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느냐 하며 죽었는데, 그의 나이 27세였다고 한다.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옛날에 높은 벼슬을 얻어 부귀공명을 누리던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늘 과부였던 어머니 앞에서 公事를 상의하곤 하였다. 하루는 풍문으로 들은 과부의 추행에 대해 민망스런 생각으로 그의 母에게 의논했더니 母曰 “바람은 소리뿐 형태가 없으니 눈에 보지 못한 일을 어찌 논죄할 수 있는가? 더구나 너희가 과부의 자식으로서 과부를 가벼이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품안에서 윤곽이 다 닳아 없어진 동전 한 잎을 내어 보이며 또 말했다. “이것이 나의 죽음을 참게 한 護符이다. 10년을 두고 손으로 만져서 이렇게 윤곽이 닳아진 것인데, 대체로 사람의 혈기란 음양에 뿌리 박고 욕정은 또 혈기 속에 있는 것이니 깊은 생각은 그윽하고 외로운데서 생기고 슬픔은 또한 그런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과부라는 것은 그윽하고 외로운 生을 보내는 것임으로 쓰라림과 슬픔의 極인 것이다. 혈기가 왕성할 때 아무리 과부라고 한들 어찌 動情이 없겠는가? 생각해 보라. ‘가물가물 야위어 가는 등불은 슬픈 그림자를 던지고, 외로운 그 한밤은 어찌나 더디던고, 게다가 처마 끝에 낙숫물 소리 애끓는 밤, 달 그림자 흰빛이 창문에 흐르고, 지는 잎 우수수 뜰 안에 속삭이는데, 외기러기 구슬피 하늘을 울어예고, 멀리서 닭 우는 소리는 들릴락 말락 할 제 어린 종년 쌔근쌔근 코고는 소리에 정든 님 못 잊어 잠 못 드는 외로운 심사야 그 누가 있어 괴로움을 호소하리’ 이럴 때면 나는 이 엽전을 내어 쥐고 방바닥에 굴리면 엽전이 굴러서 맴돌다가 벽에 가 멈추고 그러면 다시 찾아 또 굴리고 하룻밤 5,6차례 굴리고 나면 밤도 또한 밝아오더라. 이 짓을 10년 동안이나 하고 있으려니 차츰 혈기가 쇠해지는 탓인지 그 뒤는 혹 五夜에 한 번 혹은 十夜에 한 번 이러다
1. 사교육 증가원인1) 부실한 학교교육-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고 대학입학의 경쟁이 높은 것에 비해서 학교교육은 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지금도 학생들의 개별적인 학습 욕구를 채워줄 수 없는 과밀학급 상황에서 획일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몇몇 선생님들은 공교육의 부실성을 인정하며 간접적으로 과외를 권하기도 한다.2) 잘못된 입시정책- 거의 모든 부모들이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입시제도가 십여 차례 바뀌었어도, 점수가 유일한 기준인 학생 선발이었다. 특히 국, 영, 수의 점수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목을 대학에서 시험과목으로 볼 경우 학생들은 이를 대비하기위해 학원을 찾게 된다. 예를 들어 ‘논술대비과외’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방식과 과목이 대학입시에서 요구하는 것과 다를 경우에 학생들은 학교만을 믿을 수가 없게 된다.3) 문호 협소와 집중화의 문제- 명문대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고 그러한 대학은 과거 신분제도의 대치물로써 지위경쟁의 수단으로 제도화 되어 문턱이 매우 높아졌다.▶ 간판주의: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몇몇 학교에 편중되어 있다.▶ 대학 서열화에 따른 학벌사회의 고착: 사회적 출세의 척도가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가 되어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어진다. 따라서 좀더 나은 대학을 가고자하는 열마이 국민들의 사교육을 증가시킨다.▶ 학부모의 편견: 대부분의 학부모가 경제적 혜택이외에 명예, 존경 등 각종 사회적 혜택이 고학력자에게 많이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공부만 잘하면, 대학만 가면 행복해진다는 과거 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학력주의적 고용구조와 학력 간 임금격차: 고졸의 임금을 100으로 할 때 대졸의 임금은 209.21(전문대 121)4) 심리적 원인▶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은 욕구▶ 학부모들의 보상심리: 나는 못했으니 ‘네가 해라’라는 심리▶ 학부모의 경쟁심리와 불안 심리: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하면 뒤쳐지지 않을까?’하는 경쟁 심리와 불안 심리2. 사교육 실태1) 사교육 과열의 문제점① 막대한 사교육비의 지출은 공교육투자를 왜곡시키는 등 교육투자의 비효율을 증대시킨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지출하는 사교육비가 모두 비효율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지만 국가의 교육 가용자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교육비로의 과다지출은 공교육투자와 중복되는 것이다.② 학교교육의 소홀 내지는 경시풍토가 만연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학습의 필요와 욕구를 「학교 밖」의 사교육에 의해 충족시키는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즉 과외교육비를 많이 지출하면 할수록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의 폭은 증대될 수밖에 없고 자연히 학교교육을 소홀히 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③ 학교교육의 불신으로 인간교육의 구현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학교 밖」에서의 교습은 인간교육보다는 단편적인 지식의 주입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지식주입이 「교육의 모든 것」으로 오도될 가능성이 많다.④ 교원의 사기도 저하시킨다.-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증대되고 학생들이 「학교 밖」을 선호하게 되면 교원의 사기는 상대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 교원의 사기가 저하되면 학교교육의 질 향상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⑤사회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 과외교육비 지출은 그 속성상 가계의 「부(wealth)」정도에 의해 「없는 계층」보다는 「있는 계층」의 과다지출 가능성이 많다. 학부모간의 「경쟁」에서 「없는 계층」의 경우는 경쟁에서 뒤지는 것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있는 계층」에 대한 위화감까지 느끼게 한다. 이는 더 나아가서 사회적 통합에도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⑥「부의 세대 간 전수」라는 역기능이 초래될 가능성이 많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면 보편적으로 「과외교육비의 과다지출 → 우수한 간판획득 → 사회 직업세계에서의 상대적 우위 → 부의 상대적 우위」의 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학교교육의 기능이 이러한 순환구조를 타파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현재의 학교교육은 그 한계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학교교육보다는 「학교 밖」의 교육에 의해서 富의 세대간 전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⑦ 과외교육비의 과다지출은 학원등 학교 밖의 교육산업의 양산 및 그 변태운영을 부채질하게 된다.- 학원 수의 증가여부에 대한 타당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최근 각종 학원의 증가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변태운영의 증가도 재론의 여지가 없다.3. 대안 및 해결책(1) 외국의 사례- 서양에서는 선행학습의 개념 자체가 없다.1) 미국① 사교육 필요 없는 공교육 - 실력에 따른 수준별 수업진행② 방과 후 과외 - 상류층의 학생이 주로 받음- 뒤떨어진 학업 보충의 목적- 주로 예체능 과외 : 성적만으로는 좋은 대학가기 어려움2) 독일① 철저한 토론 중심의 교육② 선행학습의 개념 자체가 없다.- 나흐힐페(Nachhilfe)라는 보충학습이 있으나 이도 바람직한 교육방법으로 인정받지 못함※ 어느 독일학생의 일과3) 영국① 정해진 교과서 없다 - 그림을 통한 이체학습 강조② 학교 교육방식의 전적인 신뢰 - 교사들도 학부모의 신뢰 때문에 대충 교육할 수 없음4) 일본① 일본 공교육 변신 - ‘여유있는 교육’표방, 현장 체험학습 강조시간일정시간일정7:30등교15:00 - 18:00승마 또는 악기연주7:50 - 13:00수업18:30저녁13:30집도착20:00 - 22:30숙제, TV, 인터넷14:00점심22:30잠자리② 여전한 사교육 열기가 있지만 의식의 변화 생김③ 사교육은 공교육의 보완재 - 명문 학교나 대입준비를 하는 학생들만이 학원에서 공부(2) 대안책1) 학교교육의 개선: 우선 부실한 학교교육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정지원 중에서 교육부에 투자하는 것이 제일 적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가까운 것만을 보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학교와 학생들에게 많은 투자를 해야할 것이다. 각 학급당 학생 수를 줄리는 것만이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을 뽑을 때 단순한 시험으로 성적순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선생님의 자질을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가지로 있는 지식을 잘 활용하고 전달하는 교사를 뽑고, 학교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능력없는 교사들에게 진금의 기회에 제한을 두고, 교사들이 교화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끄는데 전념하도록 불필요한 공문 작성 등의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잘하는 학생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뒤쳐지는 학생을 끌고가야 할 것이다.2) 방과후 프로그램을 다양화하여 ‘학교 밖’에서 실시되고 있는 각종 과외활동을 ‘학교 안’으로 수령해 나가려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가령 학교 밖에서 행해지고 있는 태권도와 음악, 미술 등의 특기?재능활동과 국?영?수 등의 교과활동에 대해서도 ‘학교 안’에서 보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나가야한다.3) 모든 교과를 점수 위주로 평가하려는 식의 평가 관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점수위주의 평가체제가 지배하는 한 사교육 활동은 점증될 수밖에 없다. 또 평가의 본래 모습이 점수 위주여서도 안 될 것이다. 가령 어떤 학생이 「도덕」과목에서 90점을 받은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그 학생의 도덕성과는 무슨 관계인가.4) 입시제도, 특히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현행 입시제도는 내신?수능시험?본고사 등의 조합에 의해서 실시되고 있으나 거의 획일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의 입시제도는 단위 대학은 물론 계열과 학과별로도 보다 다양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입제도 자체가 고등학교 이하의 교육을 규제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규제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의 통과의례는 크게 출생의례, 성인의례, 결혼의례, 장례의례 이렇게 다섯 가지로 나눈다. 한 개인의 생이 시작되는 통과의례의 첫 번째로 ‘출생의례’라 하여 예부터 임산부의 행위 및 음식금기부터 시작하여, 치성 드리는 방법, 태를 처리하는 방법, 그리고 해산 시의 주의사항 외에도 출산 이후의 칠일, 백일, 돌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자식을 낳는 일은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선택적인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절대적인 의무였다. 이와 같은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특히 사내아이의 출산과 양육을 위하여 여러 가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 아기를 낳기 전부터 어느 정도 성장하기까지의 육아과정을 거치며 치르는 여러 가지 의례를 통틀어서 출산의례라고 하는데 이러한 자녀출산과 관련하여 크게 출산전의례와 출산후 의례가 있다.출산 전 의례에는 기자의례와 산전의례가 있고, 출산 후 의례에는 산후의례와 육아의례가 있는데 이를 각각 살펴보고 이런 출산의례에 담긴 음양사상에 대해 발표하고자한다.기자의례(祈子儀禮)1. 기자의례의 정의한국사회에서 집은 과거의 시조로부터 조상을 거쳐 미래의 자손으로 연결되는 시간을 초월한 관념적인 집단이다. 혼인한 여자는 이러한 집을 종속시키는 가계계승자인 남아를 생산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였다. 그런 만큼 혼인한지 5-6년이 지나도 아들을 출산하지 못하면 여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 자체의 근심이 대단하고 커다란 심리적 압박까지 받으며 시부모나 친정부모는 각종 치성을 드리게 된다. 이것을 기자행위라 한다.2. 기자 의례의 유래아들을 얻고자 치성을 드리거나 주술적인 방법을 동원한 데에는 본래의 생명존중사상이나 종족보존, 혈통보존의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부장제도에서 비롯한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이 컸다. 더구나 조선후기 들어 문중의식과 장자우대 상속제도가 강화됨에 따라 아들을 낳지 못할 결루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은 물론 상속과 유산 분배에도 많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 것은 집안의해서 임산부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데 이것이 태몽과 태교이다.1. 태몽태몽은 아이의 성별이라든지 미래의 운명 등에 대하여 어떤 계시를 주는 것으로 믿는 꿈이다. 태몽 습속은 남존여비 사상이 토착화되기 이전부터 있었으나 사회가 부계중심으로 되면서 아들, 그 중에도 귀자(貴子)의 예언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태몽은 반드시 임산부만 꾸는 것은 아니며 태아의 아버지나 조부모 ·외조부모 ·고모 등 가까운 친척이 꿀 때도 있다. 또 태몽의 시기도 일정한 것은 아니며 수태 전후나 출산 전후가 될 수 있다. 이 태몽습속은 주로 민간신앙으로 전승되는 치성(致誠)이나 굿 등 무속적인 것, 주술적인 것 또는 점 등의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가. 태몽 해석의 두 가지 방향태몽은 두 방향에서 해석된다. 첫째, 태몽을 통해 임신의 징후, 태아의 성별을 알려는 것이고, 둘째, 태몽의 해석을 통해 태어날 아기의 운명을 점쳐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방향으로의 해석은 한 태몽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1) 임신징후와 태아 성별임신의 징후, 태아의 성별에 관한 꿈은 서로 복합되어 있다.크고 용맹스럽고 힘이 세고 꼭지가 달리고 길어서 남성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을 태몽으로 꾸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고, 작고 순하고 예쁘고 꼭지가 없는 것을 태몽으로 꾸면 딸을 낳는다고 믿는 등 꿈 안에서 나타나는 대상물의 특징에 따라 성별을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2) 아이의 운명태어날 아기의 운명을 점치는 태몽은 별도로 꾸는 경우도 있지만 앞의 태몽에서 나타난 징후에 의지해 해석한다.2. 태교한국전통사회에서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 발달하는 관건은 합방시의 부모의 심신조건과 임산부의 심신상태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자녀를 잉태하는 과정에서부터 출산하기까지 엄격하고 까다로운 태교수칙을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와 가족들까지 지키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을 태교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 사회에서는 임신과 육아를 부부공동의 소관으로 인식하여, 임신의 조건으로서 부부의 심신건강을 함께 전염을 예방하려는 타당성이 있는 금기이다.2) 음식금기식생활에 대한 금기는 두 유형의 금기로 나누어진다. 임신을 하게 되면 임산부는 철저하게 먹는 음식을 가려야 한다.첫 번째는 제 지낸 집, 비석 세운 곳, 잔치하는 집에서 사용한 음식이 이에 속한다.두 번째의 경우 궂은 음식으로는 삐뚤어진 모양의 과일과 채소, 벌레 먹은 것, 썩어서 떨어진 것 등이 있다.산후의례산후의례는 출산 후 삼일, 초이레(초 7일), 두 이레(두 7일), 세이레(삼 7일), 백일, 돌, 생일 등과 같이 아기가 그날에 이르기까지 무사히 성장한 것에 대해 축하하고, 동시에 앞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해주는 습속이다.1. 해산아기를 낳는 일을 해산이라 한다. 해산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초조와 공포가 따르므로 역시 여러 가지 금기와 주술 및 의례가 행해진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여러 가지 의례들이 행해졌다.가. 준비해야 할 일임신을 하여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출산준비를 한다. 출산준비는 세 가지 방면에서 이루어진다.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한 준비, 산모를 위한 준비, 출산을 위한 준비가 그것이다.1) 아기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준비한다. 배안에옷, 포대기, 베개, 기저귀 등인데, 시어머니나 산모가 준비하며, 시어머니가 없는 경우 친정어머니, 경험이 많은 이웃 부녀자의 도움을 얻어서 준비한다. 여기에 사용하는 베는 무명베로, 초산이거나 가계가 넉넉한 경우에는 새로운 것으로 마련하지만, 가계가 빈곤한 경우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입었던 떨어진 옷을 이용하여 만든다. 포대기는 깨끗한 솜을 넣어 누벼서 만들고 베개는 좁쌀을 넣어 만든다.2) 산모산모를 위해 쌀과 미역 등을 준비하는데 쌀은 산달에 찧어서 깨끗한 독에 담아 대청에 보관하거나 조앙단지에 넣어 보관한다.3) 조산원출산 날을 예측하고 미리 조산할 사람을 결정해 놓는다. 출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조산할 사람이 필요한데 좋은 사람을 가려 조산원으로 모신다.2. 산후처리가. 태 처리태는 흔히 가위뒤에는 산모의 식성에 따라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다. 산후행위금기집안에서 짐승을 잡거나 못을 박거나 땅을 파거나하는 일들을 삼간다. 못을 박으면 장님이 되고 짐승을 잡으면 그 짐승처럼 울며 병신이 되고 믿으면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육아의례1. 이름 짓기아기 때는 아명을 지었다가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면 본명을 지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속칭을 부른다. 본명을 짓기 전에 흔히 돼지?강아지?개똥?쇠똥?돌이?바우?돌쇠?딸막이?딸그만?희남이 등 천한 이름으로 부르거나 아들을 희망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개똥이?쇠똥이는 더럽고 천한 이름이라서 염라대왕이나 귀신들이 거들떠보지 않으므로 수명이 길고, 돌이나 돌쇠는 돌과 쇠처럼 단단하여 수명이 길라는 바람이 깃들어 있다. 아들을 선호하는 사상에서 딸을 많이 낫거나 아들을 원하는 바람에서 딸막이?희남이 등의 이름을 지었다. 2~3개월이 경과한 후 할아버지나 사주를 잘 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본명을 짓는다. 아기의 출생서열이나 성격, 특징에 따라 알맞은 속칭을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본명과 속칭을 함께 부르기도 하고 속칭을 부르다 시간이 지나면 본명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2. 성장의례가. 삼일아기를 낳은 후 삼일 째 되는 날을 삼일이라 한다. 태어나서 삼일 동안 아기는 온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신통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산모는 처음으로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첫 젖 주기를 시작한다. 삼일에는 아침 일찍 삼신시루, 미역국, 정화수를 차려놓고 아기가 무병하고 산모의 젖이 많기를, 아기가 커서 출세하기를 빈다.나. 이레출생 이후 처음 맞는 의례는 첫이레다. 이날 아침에는 방의 윗목에 삼신상을 차리고 밥을 올렸다가 산모가 먹는다. 이 무렵 쌀깃(배내옷)을 벗기고 깃 없는 옷을 입힌다. 가족들이 아기를 첫 대면하는 날이기도 하다.다. 백일세 이레가 지나고 백 일째 되는 날, 이 날에 아이를 위하여 베풀어 주는 백일잔치를 베푼다.대부분 금기 사항이 주류를 이룬물에다 타서 마시던 것이나 또는 구멍이 파져있는 바위에나 남근을 상징하는 뾰족한 돌멩이를 비벼대면서 치성을 드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력에 의하여 생생력을 얻고자 한것이니 음양의 상대성에 기인한 의례이다.버위자체가 단단함으로 양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 양의 기운을 감염받아서 아들을 잉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2. 태몽- 사람들은 태몽을 통해서 태어날 아기가 남아 인가 여아인가를 판별하는데 그것의 기준은 대개 태몽에 나타난 존재물이 지니고 있는 양성과 음성으로써 결정한다.예를 들어 용 호랑이 고추 해 대추 사과 망치 도끼등은 아들을 꽃 달 구름 술잔 은비녀 등은 여자아이를 생각하는게 그것이다.3. 양수와 음수-우연한 일이나 행동거지로써 아들 딸을 구별하기도 하는데 그 기준도 수에 있어서의 음양이분법 곧 홀수는 양수 짝수는 음수 또는 남성적 성질이나 여성적 성질등을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부의 나이와 달수를 합해서 홀수이면 아들이고 짝수이면 딸이다. 임부가 콩을 한줌쥐어서 그 수가 홀수이면 아들 짝수이면 딸이다. 태동이 심하면 아들이고 조용하면 딸이다 등이 있다.*왜 홀수가 양수이고 짝수가 음수일까?? 양은 움직이고 음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대표한다고 생각을 하고 이렇게 생각을 해 봅시다.무인도에 남자 두명, 여자 한명해서 총 세명 표류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겠죠. 한명이 이겨서 여자와 결혼을 했어요. 그러면 진 남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인도를 탈출하거나 자살을 해야겠지요. 이렇게 홀수가 되면 음양으로 결합을 하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짝을 찾아서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홀수를 양수라고 합니다. 짝수는 남녀가 결혼해서 잘 살면 되니 다른 짝을 찾아서 움직이지 않아도 되겠죠? 만약 다른 짝을 찾아서 돌아다닌다면 바람 피우는 것이겠죠?4. 남자아이를 낳으면 금줄에 고추를 끼워 넣는다.고추를 남자아이를 낳으면 끼우는 것은 음양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고추는 남근의 상징이니 빨간색은 음양오행으로 화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