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제 3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예술의 전당에는 전시를 보러 자주 갔었지만 오페라극장에는 가 본적이 없었는데, 이 공연을 통해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처음으로 경험해보게 되었다. 건물의 내부는 대체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었는데, 훌륭하고 값비싼 어떤 것을 기대하고 오는 관객들을 만족시키려는 듯 보였다. 홀에 들어서니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클래식에 아주 조예가 깊을 것 같이 보이는 머리를 묶은 장년층의 남자들도 있었고 부티 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계단을 통해서 내가 공연을 관람하게 될 3층으로 올라가니 탁자에 팔기위한 팜플렛들이 쌓여있었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티켓을 검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팜플렛이 쌓여있는 탁자에 둘러져 있던 벨벳 천도 그렇고, 티켓을 검사하는 사람들이 차려입은 옷도 모두 검은색에 격식 있어 보였다. 아마 이 오페라 극장에 히피풍의 옷을 입었거나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면 아주 어색해 보였을 것이다.3층에 올라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예매해두었던 표를 받으러 예매하는 곳에 갔었는데, 그 창구 옆에 이렇게 적힌 종이 하나가 달랑 붙어있었다.2012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공연과 관련하여,6월 1일(금) 출연 예정인 소프라노 박미혜씨가 건강 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출연이 불가능함에 따라 소프라노 이승희씨로 교체될 예정입니다. 관객 여러분들의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문의 : 예술의전당 02-580-1300사실 그 종이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원래 오늘 공연하기로 했던 소프라노와 교체된 소프라노 둘 다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만약 내가 원래 출연하기로 되어있었던 소프라노의 팬이었다면 이런 식의 일방적 통보에 가까운 극장 측의 태도가 매우 언짢았을 것 같다.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붉은색의 공연장이 드러난다. 붉은 벽에 천장과 난간은 금색이어서 색감은 매우 화려했지만 미술사 시간이나 영화에서 봤던 옛날 서양 오페명이 모서리가 없이 둥글게 되어있어서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느낌이었고 생각보다 크지 않은 내부였다. 높이에 비해 폭이 좁은 느낌이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공연장보다 오페라극장 1층 홀이 훨씬 더 장식적이고 화려했던 것 같다.3층의 왼쪽 열 맨 앞줄에 앉으니 밑으로 평석이 보인다. 무대 양 옆의 벽에는 4층으로 된 박스석이 있었다. 각 층마다 3개의 칸이 있었고 의자가 두 개 씩 있었다. 박스 석에 앉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는데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아무도 앉지 않았다. 4층의 무대와 마주보는 가운데 부분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무대는 막이 내려와 있었는데 실제로 커튼은 아니었지만 마치 커튼인 것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붉은 색의 고풍스러운 커튼이 우아하게 주름이 잡혀있는 모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비교적 심플한 스타일의 공연장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어울리는 그림은 아니었다. 막은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 같아보였다. 그 커튼 의 겉 테두리에는 액자 모양의 틀이 있었고 그 위에 가사가 나올 작은 전광판이 있었다. 입장했을 때는 ‘서울 오페라단/ Opera ’라고 적혀있었다. 오페라를 보러 간 적이 없어서 오페라와 함께 가사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방식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전광판이 작고 높이 있었다. 가사전광판이 크기가 작고 보기에 불편한 곳에 있다는 것은 이 전광판보다는 무대에 더 집중해달라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라 생각된다.커튼 앞으로 사람 세 네 명 정도가 줄을 서서 있을 정도의 깊이로 약간 짧은 단이 나와 있었고 그 바로 밑에 오케스트라석이 자리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석에는 이미 연주자들이 앉아 있었고 악기 연습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생각보다 오케스트라석 자리가 매우 좁아보였다. 그래서 정상적인 오케스트라 배열과는 사뭇 다른 악기 배열이었다. 그래도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평석 사이에는 다시 금색 난간이 있고 거의 그 바로 앞부터 평석이 있었다.왕정복고시17피트 정도로 깊었고 배우들이 대부분 에이프런에서 연기했던 것 과 달리 이 극장에서는 가끔 배우 한 두 명이 이 앞까지 나와 연기하고 대부분은 프로시니엄 아치 뒷부분에서 연기할 것 이라고 예상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관객과 배우의 친밀함 또한 왕정복고시대의 극장에서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었다.객석이 어느 정도 차고 시작할 때쯤이 되자 공연장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서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안내 방송을 받아 적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공연 시작 전의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들뜬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안내방송이었던 것 같다. 혹은 그렇게 떠들면 안내방송도 안 들리고 앞으로의 공연도 못들을 수 있으니 이제 그만 조용히 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겠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조금 안 되어서 극장 안의 불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곧 깜깜해졌다. 어둠 속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걸어 나오자 그와 동시에 앉아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일어섰다. 지휘자가 인사를 하고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박수가 잦아들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악기를 들었다. 지휘자가 지휘 자세를 취하고 연주가 시작되는 동시에 커튼 모양의 막이 올랐다.막이 오르자 막 안쪽에 있었던 화려한 무대가 드러난다. 무대의 배경 그림은 마치 고급 저택의 홀같이 꾸며져 있다. 프로니시엄 아치 안쪽에는 앤틱한 장식의 탁자와 의자들이 세 개 정도 놓여있었는데, 탁자 위에는 꽃병과 와인 잔이 있다. 프로니시엄 아치 안쪽의 부분이 생각보다 깊었는데, 무대의 깊숙한 안쪽에는 기둥들이 놓여있고 그 안쪽은 복도인 것처럼 되어있다. 그 무대의 가장 안쪽에서 비올레타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홀로 서 있다가 잔잔한 전주곡이 진행되는 동안 비올레타는 무대 안쪽에서 관객쪽으로 천천히 사뿐 사뿐 걸어 나온다. 비올레타는 전주곡이 끝날 때 까지 허공을 바라보며 공허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오케스트라의 웅장하면서 경쾌한 연주와 함께 갑자기 복도의 양 끝 쪽, 의사, 플로라, 듀폴 공작 등의 주요 인물들이 앞에 있다고 나머지 가수들은 배경의 일부처럼 주로 뒤쪽에 선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위에서 마치 진짜 파티에 온 것처럼 웅성웅성 대다가 합창이 시작되고 비올레타가 왼쪽 가장 앞에 서서 그들이 대표인 듯 혼자 노래를 받아서 부른다. 합창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대답하듯이 노래한다. 무대 위의 가수들은 노래를 하면서도 자신이 파티에 초대된 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듯 계속해서 양 옆의 사람들과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는듯한 연기를 한다. 비올레타는 사교계의 여왕답게 도도하고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고 있으며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녀와 인사를 하려한다. 전주곡 부분에서 보였던 비올레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그녀의 전주곡부분에서 표현되었던 부분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며 파티에서의 쾌활한 모습은 그녀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Un Di, Felice, Eterea’부분에서 무대의 앞쪽에서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노래를 하고 가장 안 쪽의 기둥 안쪽에서는 어느 한 쌍의 연인들이 왈츠풍의 박자에 맞추어서 춤을 추고 있도록 하는 연출이 있었는데, 현악기의 피치카토, 알프레도의 구애하는 가사와 잘 어우러지며 무대 위의 볼거리를 앞뒤로 풍부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올레타의 목이 아직 덜 풀린 것인지 기교적인 부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여서 조금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목소리가 작았던 것 같기도 하다.1막의 ‘Sempre Libera’에서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알프레도의 목소리를 못들은 채 쾌락을 노래하던 팜므파탈 비올레타는 2막에서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모 마리아 같은 여성으로 변해있다. 비올레타는 이제 조르조 제르몽의 부탁을 듣고 슬픔에 괴로워하는 연기를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를 동정하도록 한다. 비올레타의 의상은 1막에서의 치렁치렁한 파티용 드레스에서 일상복 같아 보이는 드레스로 바뀌었고 하녀 안니나의 무채색의 홀쭉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제르몽은 신사든 점잖은 신사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듯하다. 공연에 나온 성악가들 중에서는 제르몽 역으로 나왔던 바리톤 김동규의 노래가 그 중 단연 돋보였다. 그 유명한 ‘축배의 노래’가 끝나고서도 나오지 않던 브라보 소리가 2막의 김동규의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들려왔다.2막의 무대 배경은 숲속의 오두막이 있는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고 무대 위에는 정원처럼 보이도록 울타리와 우체통이 있고 오른쪽에는 탁자가 놓여있다. 배우는 탁자 위의 종이와 펜을 이용해서 실제로 편지를 쓰는 듯이 행동하기도 한다. 1막의 소품들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것들이라면 2막의 소품들은 컨트리하고 약간 빈티지한 느낌의 것들이어서 파리 근교의 분위기를 내고 있다. 무대 위의 울타리와 우체통으로 인해 생긴 공간이 문을 암시하며 비올레타, 알프레도와 그의 아버지, 안니나, 우체부, 심부름꾼들이 그 공간을 통해 드나들게 된다.파리 근교에서의 장면이 모두 끝나고 막이 내렸다 다시 오르면 무대는 호화로운 무도회장으로 바뀌어있다. 1막의 장면처럼 화려하지만 더욱 퇴폐적인 분위기이다. 그에 맞게 비올레타의 의상도 검은색의 매혹적인 드레스이다. 갑자기 무대 위에 집시 분장을 한 여자 무용수들과 투우사의 옷을 입고 붉은 망토를 든 투우사들이 이국적인 음악과 함께 번갈아 나와 춤을 춘다. 곧 알프레도가 등장하고 비올레타도 듀폴 남작과 함께 등장한다. 비올레타는 무대 앞쪽의 왼쪽 끝에, 알프레도는 오른쪽 끝에 서 있는데, 플로라가 눈치없이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심정을 떠보는 질문들을 한다. 분노에 찬 알프레도의 시선과 난처해하는 비올레타의 시선이 무대의 양 끝을 오고가고 관객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무도회장의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밀회 장면에서는 조명이 어두워지고 그 둘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알프레도가 도박에서 딴 돈을 비올레타에게 던지고 무대의 가운데에 서 있는 비올레타를 중심으로 해서 알프레도는 후회를, 제르몽은 비올레타의 희생을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한다.
싸이와 타바코쥬스싸이의 국제적인 성공은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직도 유투브에는 외국인들이 클럽이나 파티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를 틀고 다 같이 말춤을 추며 떼창을 하는 동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강남 스타일’은 현재 빌보드 차트 5주 연속 2위를 하고 있으며 미국 쇼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딱 한번 학교 축제에서 싸이의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그의 노래나 공연을 보면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기에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싸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오직 자신의 춤, 표정, 퍼포먼스에 집중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싸이는 지금 이 순간 즐기기 위한 음악을 하는 가수이다. ‘진지한 고민 없이 즐기자’라는 태도로 음악을 하는 또 다른 이들이 있는데, 타바코 쥬스라는 (지금은 해체한)인디밴드이다. 그들은 음악에 의미를 두고 계속해서 탐구하는 쪽인가, 아님 즐기는 편인가 하는 질문에 “소리 음(音), 즐거울 락(樂). 음악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밴드가 우리인 거 같다.”라고 답하는 이들이다.(출처: 인터뷰 인디10│④ 타바코쥬스 “소리 음, 즐거울 락. 우리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싸이와 타바코 쥬스가 말하는 ‘즐기는 음악’이란 무엇일까?싸이는 얼마 전부터 케이블 티비의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출연하고 있는데, 참가자와 일대일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그는 버클리 음대생인 한 참가자에게 이렇게 조언을 한다. “자기만족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만족이 우선이야. 우리가 대중음악을 하잖아, 듣는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 듣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걸 해줘야 되는데…….” 정말 싸이다운 발언이다. 싸이가 말하는 ‘즐기는 음악’이란 대중들이 즐기기 위한 음악이다. 싸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든다. 사람들이 춤추기를 원하면 댄스곡을 만들고, 뛰기를 원하면 록을 만든다. 싸이는 자신은 원래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이 직업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음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싸이의 음악은 싸이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음악이 아닌 대중의 기호로부터 나온다. 그러다보니 그의 노래와 그 자신이 서로 모순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강남 스타일’은 그 뮤직비디오와 우스꽝스러운 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혀 강남인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강남 스타일을 따라하는 것을 풍자하고자 하는 노래이다. 실제로 한국에는 강남 스타일이 존재하고 있다.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은 매끈한 윤광피부 메이크업과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우아한 패션으로 카페에서 여가를 즐기는 부잣집 부인들을 떠오르게 한다. 많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이런 단어를 사용하며 실제로 청담동 며느리가 사 입는 옷들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는 비강남인 여성들을 위한 옷들을 판매하고 있다. ‘강남 표준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한 컷 만화는 비슷비슷 하게 성형하여 강남인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풍자하고 있다. 싸이는 “가끔 보면 강남 스타일이 전혀 아닌 사람들이 강남 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게 웃기니까, 그거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출처: 인터뷰 인용)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가 강남의 중심인 청담동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말춤을 추면서 한참 웃다가도 뭔가 뒤통수가 쎄해진다. 강남인이 비강남인을 조롱하는 노래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하는 재주를 가졌다. 불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노래인데도 웃긴 비쥬얼과 춤, 중독성 있는 음악을 내세움으로써 다 같이 부르도록 하는 것이다.타바코 쥬스가 말하는 즐기는 음악은 타바코 쥬스 자신들이 즐거우니까 하는 음악이다. 타바코 쥬스는 음악을 왜 하냐는 질문에 “음악으로 성공하는 걸 원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재밌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안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하며, 너무 게으른 거 아니냐는 말에 “우리도 꼭 해야 할 일은 챙겨서 한다. 다만, 방송은 나가면 좋겠지만, 또 음악 외의 어떤 귀찮은 일을 해야 하면…… 안하는 게 나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출처: dongA.com [O2칼럼/구가인]루저스피릿⑦ 인디밴드 ‘타바코쥬스’ 백승화 &권기욱)실제로 이들은 음반으로 버는 그리 많지 않은 수입 이외에 막노동을 뛰고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음악을 해나간다. 음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그때그때 버는 것이다. 타바코 쥬스의 드럼이자 영화 을 감독한 백승호는 "돈벌이와 명예가 위너와 루저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타바코쥬스를 찌질이들의 대마왕, 루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불려도 된다. 내 생각엔 그런 루저라면 그렇지 못한 위너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루저이길 잘했다."라고 의 제작노트에 쓰고 있다. 타바코 쥬스의 1집에 수록되어 있는 ‘요다의 하루’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얼굴 좀 파랗고 키가 좀 작아도 괜찮아. 테레비 세탁기 컴퓨터 없어도 괜찮아. 드넓은 우주에 혼자 좀 있어도 괜찮아.” 마치 타바코 쥬스 자신들은 음악만 있으면 다 괜찮다고 말하는 듯 들린다. 에서는 그들이 골방에서 소주병을 까놓고 기타를 치며 녹음을 하는 장면, 술을 마시다 공연을 펑크 내는 모습, 사소한 일로 싸웠다가 화해하는 장면들이 솔직하게 나와 있다. 그들이 하는 음악은 남을 위한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재밌어하는 것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닐지라도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남들이 보면 찌질하고 안쓰럽게까지 보일만한 모습조차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보인다.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가도록 세련되게 다듬거나 꾸미지 않는다.
《화성능행도병》의 서양화법 수용으로 인한 양식적 변화- 목차 -1. 들어가는 말2. 화성능행도병2.1. 화성능행도병의 양식적 변화2.2. 화성능행도병의 수행 화원3. 결론참고문헌참고도판1. 들어가는 말16, 17세기의 계회도로 시작한 작은 규모의 궁중행사도는 18세기에 들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혼란기로 인한 왕실 권위 하락을 회복하기 위해 활발히 그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18세기 후반은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아 원근법과 명암법에 의한 표현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시기로, 이 시기의 궁중행사도는 이전과는 다른 특징을 나타내며 이후의 19세기 궁중행사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18세기의 대표적인 궁중행사도인 《화성능행도병》은 조선시대 궁중행사도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양식상의 특징뿐만 아니라 제작 관행에 있어서도 이후의 궁중행사도에 미친 영향이 큰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이 《화성능행도병》에 주목하여 먼저 이 그림이 어떠한 내용을 담은 궁중행사도인지를 알아보고 양식적인 면에서 전통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어떻게 절충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화성능행도병》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당시 이 그림을 그린 화원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의 화풍이 어떤 식으로 그림에 나타나는지 알아볼 것이다.2. 화성능행도병《화성능행도병》은 정조가 1795년(정조 19, 을묘) 8일간에 걸쳐 화성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에 행행했을 때 거행한 주요 행사를 그린 8첩 병풍으로 각 첩은 화성능행의 주요 행사나 사건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조는 재위 기간 중 사도세자의 탄신일을 전후한 1월 말에서 2월 초에 모두 12번에 걸쳐 묘소를 찾아가 전배례를 치뤘다. 그 중에서 을묘년인 1795년의 원행이 도병으로 그려지고 의궤에 상세히 기록될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이때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조가 직접 《화성능행도병》의 제작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제 1첩부터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봉수당에서 열린 진찬을 그린 , 60세 이상의 관료들과 사서노인들이 초대받아 낙남헌에서 열린 행사를 그린 , 화성 문선왕묘에서의 알성의를 치르는 모습을 그린 , 정조가 성묘 전배를 마치고 유생들을 시취한 뒤 낙남헌에서 거행된 방방에 친림한 광경을 그린 , 헌륭원 전배를 마치고 화성 성곽의 서장대에서 저녁식사 후에 열린 야조식의 광경을 그린 , 어사대가 있는 득중정에서의 불꽃놀이 광경을 그린 , 화성에서 제반 행사를 모두 마치고 창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흥행궁에서 경숙하기 위해 들어가는 어가행렬을 묘사한 , 마지막으로 노량진에 설치된 배다리(주교)로 한강을 건너 창덕궁으로 돌아가는 어가행렬을 묘사한 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도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에 1건씩 보관되어 있다.2.1. 화성능행도병의 양식적 변화18세기 후반의 궁중행사도는 양식적인 면에서 서양화법의 수용이라는 변화를 보인다. 궁중행사도는 원칙적으로 정면성과 평면성에 의거하여 그려진다.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기 위해 조감 또는 부감시점으로 큰 구도를 잡으면서도 각 부분은 모두 정면에서 본 시점으로 그리는 것이다. 전각의 지붕이나 차일의 표현을 보면 이러한 정면성이 잘 드러난다. 완전한 조감시점이라면 차일이나 지붕 아래의 장면이 차일과 지붕에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하지만 그 내부의 모습까지 그리는 것이 궁중행사도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차일을 정면에서 본 모습으로 그 아래를 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궁중행사도는 이처럼 실제의 모습보다는 건축물이나 설치물, 행사 내용을 ‘잘 보여주기 위한’, 그리고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다. 《화성능행도병》에서도 제 1, 2, 3, 4, 6첩의 그림을 보면 수평으로 그려진 담과 기와는 정면에서 본 시점으로, 수직으로 이어지는 기와는 기와를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기왓골의 모양은 수평선이 아니라 땅을 향하여 사선으로 그려져 있어 완벽한 정면에서 내려다본 시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래를 향하여 비스듬하게 내려가 있는 기와의 본래 모습을 잘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점은 기존의 궁중행사도의 관례를 따른 것으로 보이며 궁중행사도가 얼마나 앞선 예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갖고 있었는지 말해 준다.반면에 제 5, 7, 8첩의 그림은 이전의 다른 궁중행사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구도를 과감하게 시도하였다. 전반부의 장면들은 주로 행궁 안의 장면인 것에 반해 후반부의 장면들은 행궁을 벗어난 곳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므로 화원들은 자유로운 구성 능력을 발휘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제 8첩의 에는 선투시도법의 개념을 적용한 원근 효과가 구사되어있다. 화면을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놓아진 주교,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에서 적당히 축양된 주교위의 인물들, 강 건너에 작게 묘사된 인물들과 용양봉저정은 이전의 평면적이고 정면성이 강조되던 화풍에 비해 서양화적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제 7첩의 에는 거리에 따라 크기와 농담을 조절하는 대기원근법이 잘 나타난다. 우선 이 그림은 원근 효과를 내기 위해 ‘之’자형 구도를 사용하여 화면을 근경, 중경, 원경의 세 단계로 나누고 근경에서 원경으로 갈수록 규모를 축약하고 색감을 흐리게 조절하였다.)또한 《화성능행도병》에는 명암법의 시도도 나타나 있는데, 먹으로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농채를 한 뒤 다시 한 번 윤곽선을 가하는 방법이 인물과 기물 등에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전의 궁중행사도가 명암을 주지 않고 단색으로 설채를 한 것이 평면적인 화면 감각을 돋보이게 했다면, 《화성능행도병》에서 쓰인 이중윤곽선을 통한 명암법은 두 번째의 윤곽은 설채한 색보다 약간 어두운 색으로 하되 기존의 윤곽선이 보이도록 그 안쪽에 가하여 설채로 가려진 윤곽선을 살리고 물체에 입체감과 중량감을 부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윤곽선을 따라 진한 색으로 덧칠을 하는 이 일종의 음영 효과는 특히 작은 크기로 묘사되는 인물이나 기물 등 섬세한 필선이 요구되는 곳에 확고한 양감과 생동감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명암법의 시도는 이 도병의 건물기둥에도 나타난다.) 특이한 것은 화면 중심축을 기준으로 왼쪽의 기둥은 왼쪽에서, 오른쪽의 기둥은 오른쪽 방향에서 빛을 받았을 때 생기는 어두운 부분을 진하게 설채했다는 것이다. 좌우대칭에 의한 균제미는 전례와 관련된 궁중행사도에서 화가가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는 구성요소였으며, 그러한 규범성이 관념적인 명암 표현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서양화법이 전통적인 기본 양식과 절충되는 것은 한국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화원들은 사물이나 현상이 실제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보다는 그 사물이나 현상의 정신적인 것을 그리고자 하였다. 게다가 궁중행사도는 기록화라는 점에서 더욱 각 사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점들을 선택하여 그리다 보니 여러 시점이 공존하고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도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당시 화원들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자연주의(환영주의)적인 것에 얽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2.2. 화성능행도병의 수행 화원《화성능행도병》의 역사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의를 한층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문헌기록의 존재이다. 원행의 준비 과정부터 의궤의 인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실들을 상세히 기록한 총 10권 8책의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이 병풍의 제작 배경과 그림의 내용 분석, 도상 해석 등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자료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도식」에는 원행시 행한 일련의 행사도와 행렬반차도, 그리고 봉수당진찬에서 사용된 정재·채화·기용·복식·가교의 그림이 목판화로 실려있는데, 이 「도식」의 밑그림을 그리고 교정하는 일이 김홍도에게 전적으로 맡겨졌다.) 여기에서 김홍도의 역할은 의궤도의 화본을 직접 그렸다기보다 선발된 화원들이 밑그림을 그리는 데 기본 방향과 형식을 제시하고 제작 과정을 감독 지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화성능행도병》의 제 7첩의 는 《화성능행도병》에서 가장 산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인데, 주로 나타나는 산수 표현은 피마준을 기본으로 한 청록산수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상전」에는 진찬도병 진상 후의 시상자로 화원 최득현, 김득신, 이명규, 장한종, 윤석근, 허식, 이인문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이 중 화풍이 알려진 사람은 김득신, 장한족, 이인문 정도인데, 김홍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들 세 명 중에서 의 산수는 남종화와 북종화를 혼합한 화풍으로 일가를 이룬 이인문의 화풍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불규칙하게 각진 사각형으로 바위 표면의 질감을 내는 방식은 김홍도 그림에서도 자주 보이는 특징이며 이인문의 작품 중 의 일부분과도 상당히 관련이 깊어 보인다.또한 대각선 혹은 ‘之’자형 구도, 거시적인 시점, 그로 인한 넓은 시야의 확보, 자연스럽고 시원한 공간감, 주변의 지형이나 일반 백성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에서 읽을 수 있는 주제 이외의 부분에 대한 관심 등은 앞에서 말했듯이 《화성능행도병》의 후반의 장면에서 두드러진 특징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김홍도 화풍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병풍의 제작자는 김홍도의 영향권 안에 있던 화원들이었으며, 위에서 보았듯이 비공식적으로 의궤의 감독을 맡았던 김홍도가 병풍의 제작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화성능행도병》에 뚜렷한 김홍도 화풍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원근효과가 강조되는 구도와 현실감 나는 공간처리는 서양화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 영향을 받은 이 시기의 풍속화에서 즐겨 사용되었으며), 《금강산도》 8첩 병풍이나 《산수행려도병》 등의 김홍도의 그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관계맺음에 대한 열망2010-12594동양화과 김유진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대단한 청년이었던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비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끝에 자신의 피조물을 창조해낸다. 그의 피조물은 외형은 끔찍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모델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이 피조물과 인간의 공통점은 둘 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또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지만 그의 시도는 매번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계맺음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프랑켄슈타인이 윌리엄과 저스틴을 잃은 후 그의 피조물과 몽탕베르 정상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그에게 이야기한다. 태어나자마자 갑자기 혼자가 된 혼란 속에서 그는 우연히 한 오두막집에 사는 가족을 엿보기 시작한다. 태어난 후로 외로움과 고독감만 느껴왔던 그는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그 가족으로부터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다. 그 가족을 사랑하게 된 그는 자신도 그 가족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되고 그러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습득하고 또 그들 몰래 도움을 주기 위해 연장의 사용법을 터득한다.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배움에 대한 열정을 주었고 삶의 기쁨이 된 것이다. 우리들 또한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언어와 다른 지식들을 배우고 관계 속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관계맺음이 생산적인 인간 행동의 중요한 동기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관계맺음에 대한 실패와 좌절은 인간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도 자기가 꿈꾸어왔던 인간 가족들과의 만남에 완전히 실패하게 되고 도움을 주려다 도리어 봉변을 당하는 일을 겪으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저주하고 자신을 버린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복수심에 타오르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온전히 혼자라는 것을 깨닫고 프랑켄슈타인에게 찾아가 그의 짝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프랑켄슈타인에게까지 거절당한 그는 복수를 이어가고 프랑켄슈타인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 피조물의 행동과 비슷하게, 관계맺음에 실패하여 깊은 좌절에 빠진 인간들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등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관계맺음의 성패 여부는 한 인간을 선하게 만들기도 하고 악하게 만들기도 할 만큼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처음에는 범죄와 상관없는 선한 인물이었지만 관계맺음의 실패를 통해 살인마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복제와 문학 중간과제인간 이후의 존재[공각기동대]를 통해 생각해보는 인간과 복제인간2010-12594동양화과 김유진1995년 일본에서 시로우 마사무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오이시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는 인형사라는 캐릭터와 네트워크 및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이라는 주제를 관철할 수 있는 원작과 같지만 전혀 다른 내용으로 재창조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내용면에서 같은 모티프를 취하고 있으며 후에 개봉한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매트리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극찬을 받은 이 영화는 '거대 정보 네트워크 시대의 정체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봤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는 이 영화의 멋진 영상에 감탄을 했을 뿐, 내용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고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인간복제를 주제로 한 자유 레포트를 쓰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공각기동대’였다.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어렵다고 치부하고 이 영화가 감상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쳤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여러 번 돌려 보면서 이 영화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영화 ‘공각기동대’의 두 인물 쿠사나기와 인형사를 중심으로 그들의 대화나 영화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장면들을 분석해보면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인간의 특성과 인간복제에 대한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쿠사나기는 공각기동대라고 불리는 보안군의 소령으로, 뇌를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여 살고 있는 인물이다. ‘쿠사나기’는 일본 고대서 [고사기]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명검이다. [고사기]에 따르면 명검 쿠사나기는 뱀(생명체)이 잉태한 검(기계)으로, 아마테라스 여신에게 바쳐진다. 이는 인간의 고스트를 가지고 있지만 몸은 기계화 되어있는 사이보그인 주인공 쿠사나기를 상징한다. 영화의 첫 부분,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쿠사나기의 의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쿠사나기의 몸체가 어떻게 만들어져있는지도 흥미롭지만 나에게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전뇌화’라는 개념이었다.‘전뇌화’란 방대한 네트워크망으로의 접근율과 속도를 높이기 위해 뇌수를 직접적으로 네트워크에 연결시키는 것을 뜻한다. 전뇌화를 한 인간은 직접 컴퓨터에 뇌의 정보와 신호를 연결하고 인터넷에 진입하여 통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전뇌화가 실제로 가능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매우 편리해질 것이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컴퓨터 전원을 켜고 마우스를 움직이고 클릭하여 인터넷을 실행시키는 행동들이 모두 불필요해 지고 단지 척추와 이어져있는 USB 포트를 컴퓨터 장치와 연결시키기만 하면 뇌가 시키는 대로 인터넷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뇌의 기억의 용량도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공각기동대’를 보면 전뇌화 때문에 가능하게 된 새로운 범죄가 생기는데, 그것은 고스트(영혼) 해킹이다. 네트워크와 인간의 정신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은 네트워크에 노출되어 해킹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 예로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을 들 수 있다. 쿠사나기가 속해있는 보안군의 9과가 쫓고 있는 고스트 해커 인형사에게 해킹을 당한 한 청소부는 그에게 부인과 딸이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독신자였다. 딸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부인과 언제 만났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며 그저 눈물을 흘리는 그는 인형사에 의해 거짓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부인과 딸에 대한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딸의 이름도, 부인과의 만남도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이다. 쿠사나기는 이 청소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라 기계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조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고뇌를 하는 것이다. ‘전뇌화’가 가능해지고 인간의 뇌를 해킹하는 일조차 가능하게 된 사회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진짜라는 확신을 할 수 있을까. 누가 언제 자신의 뇌를 해킹하여 기억을 지우고, 왜곡하고, 심어 넣었을 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쿠사나기는 냉정하고 통찰력 있는 강한 여자로 보이지만 깊은 고뇌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쿠사나기가 운하를 지나가며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비행기가 날아가고 건물의 창에 그 비행기가 다시 비치고, 도시의 모습이 물에 비쳐 보인다. 마네킹들이 전시되어있는 쇼윈도에 도시는 거니는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이 비추어진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들은 모두 똑같다. 쿠사나기는 어떤 건물 안에 있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여자를 발견한다. 이 장면은 계속해서 창문이나 물에 무언가가 비추어지는 것, 똑같이 생긴 포스터나 마네킹 등으로 복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쿠사나기는 도시 속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뇌를 제외하고 모두 어떤 회사의 기계 대체되었으니 어찌 보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도 있지만 자신과 똑같은 몸이 대량생산되어 널리 퍼져있다는 생각은 섬뜩하다. 쿠사나기는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한다. 신체도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을 자신으로 생각하게 하는 기억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닐 수 도 있는 이 상황에서 무엇으로 자신을 자신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만드는가. 바토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와 같다.“나같이 완전히 사이버 보디화 한 사이보그라면 누구나 생각해. 어쩌면 자신은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전자두뇌와 사이버 보디로 구성된 모의 인격이 아닐까, 아니 무릇 처음부터 나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네 티탄 두개골 안에는 뇌도 있고 제대로 인간 취급도 받고 있잖아.”“자신의 뇌를 본 인간 따윈 없어. 결국은 주위 상황으로 나 같은 게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이야.”)한편 쿠사나기 일행이 쫓고 있는 ‘인형사’라는 인물은 쿠사나기나 다른 전뇌화와 의체화를 거친 인간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형사는 쿠사나기가 속한 보안군의 6과에서 만든 일종의 프로그램이었다. 6과는 다른 부서 몰래 어떤 음모를 진행시키는데, 그것은 정보기술의 개발을 통해 전 세계 네트를 통해 넘나들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파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6과의 이러한 음모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면서 세계에 드러나게 될 위험에 처한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인격을 가지고 하나의 개인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형사는 6과의 통제를 벗어나 진짜 생명체가 되기 위해 쿠사나기를 만나러 9과로 오기로 결심하고, 어떤 사이버 보디에 자신을 이입시켜 일부러 차에 치여 9과로 실려 오게 된다.)인형사는 9과에 도착하여 인간들에게 자신의 망명을 요청한다.)“의체에 들어간 것은 6과의 공성방벽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은 나의 의사이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너는 단순한 자기복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아.”“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들의 DNA 역시 자기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란 건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정체와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단지 기억에 의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였다고 해도 사람은 기억에 의해 사는 법이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다시 인간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생명체란 증거는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형사의 말,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과학은 생명을 정의할 수 없으니까…….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이다.”인형사는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에게는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있지만 몸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형사는 쿠사나기와의 융합을 원한다. 쿠사나기와 인형사가 나란히 누어 융합을 앞두고 있는 장면) 에서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어떤 것을 이해하고 나서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자신을 생명체라고 말하였지만, 현 상태로는 아직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시스템에는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얻는다는 생명으로서의 기본과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카피를 남길 수 있잖아.”“카피는 카피에 지나지 않는다. 겨우 한 종류의 펄스에 의해 전멸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복사로는 개성이나 다양성이 생기지 않는다. 보다 존재하기 위해서, 복잡 다양화화면서 때로는 그것을 버린다. 세포가 대사를 반복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노화하고 죽을 때까지 대량의 경험 정보를 지우고 유전자와 모방자만을 남기는 것은 파국에 대한 방어기능이다.”(중략)“한가지 더!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보장은?”“그 보장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이고, 네가 지금의 너 자신으로 있으려 하는 집착은 너를 계속해서 제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