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가능하며, 무엇이 이를 제약하는가?학 과:신문방송학과학 번:74665과 목:독일관념론성 명:최 인 주체코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에는 "인간이 천사를 만난다면 그 천사를 향해 인간은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 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말로 천사를 눈 앞에 두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수다를 떨 기회가 생긴다면, "야, 넌 이것도 못하냐?" 라고 천사에게 말하며 거들먹거릴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인간과 천사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에게 자랑거리로 삼기 위해서는 인간은 할 수 있지만 천사는 할 수 없는 일.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천사는 영원히 살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 존재라면 인간은 언젠가는 모두나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쳐도 모두 이룰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바로 그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그 유한함을 천사는 아무리 동경하고 원해도 이룰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유한성'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흔히 ‘자유’라고 하면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위를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인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인간은 어떤 상황이나 인물에게 구속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 살 박이 어린아이는 부모가 정해놓은 규약을 지켜야하며, 연인 사이에는 연인 간에 지켜야 할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것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우리는 구속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인기연예인의 콘서트를 보러 갈 자유를 박탈당한 채 교칙에 의해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고 아무리 급해도 교통법규를 지키기 위해서 신호등의 녹색불이 켜기지 전에는 길 앞에 멈춰서야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아이러니하게도 구속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술을 자유롭게 마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만약 한 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마음 껏 술을 마실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비틀어 생각하면 ‘술을 자유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자유’는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알코올 중독에 이르지 않는 선에서 절제하며 마시는 것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자유란 적절한 절제와 규제를 밑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절제와 규제가 없다면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지배자가 아니라 자유에 잠식된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칸트는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자유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기도 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의지의 자유, 행동의 자유란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와 같은 논리에서 비롯된다. 즉 사회구조적으로 정해져 있는 보편적인 도덕원칙이란, 본질적으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칸트는 거기에 따라 사는 것만이 선이며, 올바른 윤리적 삶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율성과 자존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영화 와 를 통해 바라 본 인권이야기택시를 운전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착한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진우.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진우는 자신이 사랑하는 간호사인 신애와 함께하는 소박한 꿈을 꾸지만, 부푼 마음으로 신애와 첫 데이트를 하던 날, 극장에 군인들이 들이닥치면서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비극으로 치닫는다. 김지훈 감독의 작품 는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실제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총칼에 맞서 맨손으로 뭉친 시민들이 과연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지만 광주 시민들은 맨손으로 민주화라는 결실을 얻어냈다. 이 모든 것은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과잉진압한데에서 시작되었다. 총칼앞에 무너질 뻔한 몇몇 학생들의 인간적인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일어난 광주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가 결국에는 한국 사회의 큰 획을 긋게 하였다. 인권이란 과연 무엇일까? 영화 와 는 이러한 질문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의 주인공 데이와 의 귀주는 모두 시대에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당하는 희생자이다. 영화 의 귀주는, 남편이 부당하게 이장에게 맞은 것에 분노하고 공명정대하게 잘잘못을 가리길 원하지만 그 누구도 이장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당시 중국은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표방했지만, 소시민 한 명의 인권보다 관리 한 명의 체면이 훨씬 중요한 사회였던 것이다. 귀주가 원하는 것은 이장의 진심이 담긴 사과다. 하지만 이장은 ‘돈을 줄지언정 체면상 사과를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장이란 직책은 인민을 위해 일하는 하나의 책임이지, 결코 인민을 지배하고 그 위에 서있는 존재는 아니다. 이러한 장면은 중국의 급격한 개혁, 개방은 정치 / 경제적으로 국가적인 발전을 이룩했을지는 모르지만, 급격하게 유입된 사상을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에서도 이러한 인권 유린의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의 주인공인 데이는 어린 시절 경극학교에서 무자비한 체벌을 받게 되지만 이를 묵묵히 견디며 자신을 경극 속 인물인 ‘우희’에 이입시키고 경극에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역사는 데이에게 순수한 예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국에 혁명의 바람이 몰아치게 되고, 젊은 층에서는 데이에게 혁명의 내용을 담아 경극을 수정하길 요구하지만 데이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데이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반동취급을 받아 잡혀가게 된다. 자신의 예술을 고수하려는 데이의 모습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게 짓밟히고 만 것이다.영국의 유명한 건축가인 헨드릭 페트루스 베르라헤는 “건축가의 임무는 외관을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를 중국이란 국가에 그대로 적용해보자. 정치가의 임무는 단순히 사회주의라는 외관을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본질을 알차게 채우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한 나라를 이끄는, 특히 중국과 같은 거대한 국가를 이끄는 리더는 국가를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취약한 여건에서 강대국이 탄생할 수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와 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영화 의 종반부에 데이와 샬로가 마지막으로 공연을 하는 모습은 그렇기 때문에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경극을 통해서 평생을 여자인 ‘우희’로 살아왔던 데이는 마지막 공연에서 현실의 자신을 자각한다. 그리고 우희처럼 데이는 칼을 뽑아 실제로 자결을 하고 만다. 데이에게 있어 샬로는 단순히 경극의 파트너가 아니라 경극 속 패왕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에 패왕은 무릎을 꿇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비굴해지며 심지어는 자신의 사랑을 파는 비열한 짓까지 일삼는다. 더 이상 데이에게 샬로는 사랑하는 패왕이 아닌 예술혼을 판 역사의 패배자에 불과한 것이다. 더 이상 데이는 자신이 우희로서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데이 한 사람의 종말임과 동시에 문화대혁명 시기 인간성의 종말을 표현하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는 아니였을까.
중국인의 금기에 관하여1. 들어가기에 앞서.외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 풍속이나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중국의 경우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나와 중국은 같은 유가(儒家)문화권에 속하여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식’과 ‘중국식’이라는 말에 등호를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간단한 사례로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중국에서는 ‘괘종시계나 탁상시계를 선물하는 것(送鐘)‘이 ’사람의 임종을 의미하는 송종(送終)‘과 발음이 같아 금기시 되는 것에서도 어렵지 않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의 문화와 문물을 익히는 방법은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종의 상황에서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특별히 금기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검토해 보는 것이 그 민족과 문화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금기‘란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1. 중국인들에게 금기(禁忌)란?금기(禁忌)는 본시 원시인들이 초자연적인 역량에 대한 경외(敬畏)로 인해 취한 일종의 억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금기가 가지고 있는 원시적 의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신앙적 습속(習俗)이며 소극적인 정신 방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금기는 서양에서 ‘금지하다’, 혹은 ‘금지되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터부(taboo)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금기의 ‘금(禁)’은 ‘?’변이 말해주듯 ‘신(神)’과 관련된 일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즉, 신의 암시에 의거해서 인간이 자신의 행위 중 어떠한 것들은 해야 하고, 또 어떠한 것들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중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금’에 해당된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심리상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그것을 극력 피하고자 하는 심리 상태가 바로 ‘기(忌)’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중국에서는 ‘금기’라는 단어보다는 ‘기휘(忌諱)’라는 어휘가 더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기휘의 개념은 금(禁)이나 속(俗)보다는 좀 더 민간 차원에 치중된 통속적 성격이 강한 어휘라고 할 수 이다. 하지만 학술계에서 ‘금기’라는 용어를 통일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글에서 다루는 사례가 통송적인 사례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금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중국의 금기는 무엇이며 나아가 중국의 문화는 어떠한지 알아보도록 하자.2. 본 론 - 중국의 문화를 읽다.(1) 중국의 음식문화와 금기‘중국 음식’ 하면 다양하고 풍부한 종류의 요리가 연상되어 중국인들은 종류나 형태를 불문하고 먹거리 문화에 대해 매우 관대할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지만, 중국인들은 사실 음식문화에 대해 매우 까다로운 면이 있다. ‘복숭아는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고, 살구는 사람에게 해가 되며, 오얏나무 아래에는 죽은 사람을 묻는다(桃養人, 杏傷人, 李子樹下埋死人)라는 중국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에는 음식의 종류에 대한 선호 및 금기사항이 존재해왔다.중국의 정식 요리는 언뜻 아무렇게나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격식이 있다. 먼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몇 가지의 소채(小菜)가 나오는데, 이는 정식 요리가 나오기 전에 차(茶)를 마시면서, 입맛을 돋우는 전식(前食)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땅콩이나 무채 등의 반찬이 이에 해당된다. 그 다음 정식 음식의 첫 부분으로 냉채(冷菜)라고 하는 찬 요리 몇 가지가 동시에 나오는데, 냉채는 주로 술에 대한 안주의 개념이며 맛이 담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다음으로 따뜻하게 데운 음식인 열채(熱菜)들이 하나씩 나오며 열채의 끝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요리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생선요리이다.생선요리는 중국 정식 요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그 중 하나로 생선이 길상물(吉祥物)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농경을 근간으로 사회를 구축했던 중국에서 오곡(五穀)의 풍성함은 곧 절대다수의 공통적인 바람이었으며,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은 물고기를 물과 비를 관장하는 영적인 존재로 여겨왔다. 즉, 물고기가 곧 오곡의 풍성함으로 직결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선이 상서롭게 여겨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에 베어들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생선은 한자로 ‘어(魚 yu)'라고 하는데, 이는 ’여유 있다‘ 혹은 ’풍족히 남다‘ 라는 뜻의 여(餘 yu)와 그 발음이 같다. 즉, 항상 풍족함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중국인들이 생선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음력 설날 춘절에는 행운을 기리는 의미에서 생선 요리를 먹는 것이 거의 필수적인 코스라고 봐도 무방하다.춘절과 음식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춘절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으로 교자(餃子)를 들 수 있다. 교자 또한 생선요리와 마찬가지로 행운을 비는 길상(吉祥)음식에 해당하는데, 중국인들은 춘절 전날 저녁부터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교자를 빚어서 밤 12시부터 교자를 먹기 시작한다. 여기에 또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밤 12시는 옛 시각으로 표시하면 자시(子時)에 해당된다. 자시가 바뀌면 하루가 바뀌고, 특히 한 해 마지막 날 자시가 바뀌면 새로운 해가 접어든다. 따라서 자시가 바뀌는 시간, 즉 교자(交子)되는 시간에 교자(餃子)를 먹기 때문에 교자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에는 행복과 행운을 기리는 음식이 많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오복(五福)을 가장 대표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으로 꼽았는데, 오복은 장수(長壽), 부귀(富貴), 건강(健康), 도덕(道德), 그리고 천수(天壽)를 다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행복은 누구나 누리고자 하는 종류의 행복이며, 중국에서는 이러한 오복 등 각종 길상(吉祥)과 관련된 다양한 풍속이 존재해왔다. 이러한 풍속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특정 대상을 길상한 것으로 여기는 것인데, 길상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복숭아가 있다. 고대인들은 복숭아를 먹음으로써 장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런 관념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어서, 노인들의 생일잔치에도 필수적으로 내놓는 과일이 되었다. 중국 남쪽 지방에서는 귤과 여지라는 과일을 함께 배갯맡에 두었다가 춘절날 일어나서 먹는 풍속도 전해지는데, 두 과일을 합친 단어의 발음이 ‘吉利’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 과일을 먹으면서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돈도 많이 벌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百聞而不如一見(백문이불여일견)’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그만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감상한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은 이러한 감독의 삶이 진하게 베어있는 경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당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장예모 감독은 공산당 정권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부모가 반공혐의로 체포되고 자신 또한 시골로 쫓겨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장예모 감독으로 하여금 직접 보고, 듣고, 온 몸으로 느낀 중국의 근현대사를 오늘날 재조명하는 중국의 5세대 감독 중 한명으로 만들어주었다. 영화 은 장예모 감독 본인의 ‘인생’이 담겨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약 30여년에 걸치는 긴 세월을 소시민의 삶을 통해서 지루하지 않게 풀어냄과 동시에 중국 사회주의의 모순과, 문화대혁명 당시의 부조리한 모습 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중국의 역사는 어떠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주인공인 부귀(富貴)는 물질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매일 밤 도박에 빠져 산다. 결국 그는 도박으로 집을 잃게 되고, 도박에 중독된 남편의 모습에 질려버린 그의 아내도 부귀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부귀는 그림자극 소품을 빌려와 그림자극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왜 하필 부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자극을 택했던 것일까? 부귀는 중국이란 거대한 국가에서 봤을 때, 아무 힘도, 실체도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마치 그림자극의 그림자 인형처럼 말이다. 부귀는 격변하는 중국의 역사 속에 함몰되어버린 ‘인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장예모 감독은 영화 속 그림자극을 통해서 힘 없는 소시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또한 그림자극의 인형은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 표면은 거창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맹목적으로 사상에 몰두하는 당시의 중국을 일면 비꼬고 싶었던 건 아닌가 싶다.그림자극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귀의 삶을 보여주던 영화는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내전이 시작되면서 급격하게 치닫는다. 부귀는 그림자극을 하던 도중, 국민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되고 자신의 동료인 춘생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부귀와 춘생을 도와주는 국민군의 군인은 죽은 군인들의 시체에서 옷과 담배를 훔쳐다 주고, 공산당군에게 포로로 잡히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모습이 나온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단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몇몇 정치인들의 파워게임에 불과하다. 그들은 배를 채우고 싶고, 가족이 보고 싶을 뿐 그 전쟁을 통해서 쟁취해야 할 사상이나 신념 따위는 없는 것이다. 부귀와 춘생은 후에 공산당군의 포로가 되고, 공산당군 안에서 그림자극 공연을 해주다가 내전이 종료되면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집은 예전의 집이 아니다. 벽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고, 자신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사랑스러운 딸인 봉화는 벙어리가 되어 있다. 자신의 집을 도박빚으로 받아갔던 지주는 반동으로 취급당하여, 거리 처형을 당하게 된다. 중국에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혁명의 태양이 떠오르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인 인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집으로 돌아온 부귀가 지주의 거리 처형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집으로 달려가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이러한 시대의 모순을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부귀는 아내에게 달려와 “우리는 지주인가?” 라고 묻는다. 아내가 아니라고 하자, 부귀는 “맞아 우리는 인민이야.” 라고 말하며, 공산당군에서 일했었다는 확인서를 고이 모셔둔다. 중국의 인민들은 사회의 부당함을 자각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민인가? 라는 질문을 장예모 감독은 던지는 것이다. 부귀의 모습은 단순히 살기 위한 인민의 모습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췄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조적인 것일 뿐, 인민의 의식 자체는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의 소시민들은 자신들이 인민이고 자신들이 주인인 세상이라는 말에 취해서 마냥 좋았을 뿐, 진정한 혁명과 사회주의는 중국에 오지 않았다고 장예모 감독은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시간이 흘러 영화는 대약진 운동이 시작된다. 부귀가 사는 마을에서도 모든 철을 모으는 등 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친다. 이 와중에 동네아이 한 명이 연약한 봉화를 괴롭히자 동생인 유경이 식당에서 그 아이에게 음식을 부어 복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화가 난 아이의 아버지가 이것은 반동이라고 하자, 아이들 싸움이라고 생각하던 부귀는 당황하며 심하게 유경을 꾸짖는다. 앞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소시민들에게 혁명은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 아니었다. 의식이 밑바탕에 자리 잡지 못한 사회주의에서 인민이란 거만하고 이기적인 주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장예모 감독은 코믹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게 표현해내고 있다.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르러 영화는 절정에 치닫는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경이 죽게 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사고의 피의자가 바로 부귀와 생사를 함께 했던 춘생이다. 그로 인해서 부귀와 그의 아내는 춘생을 미워하게 된다. 춘생이 봉화의 결혼식 날 축하 선물을 보내자 부귀의 아내는 선물을 보지도 않고 버리려 하지만 부귀가 모택동 주석의 사진이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그 선물을 받는 장면에서는 왜곡된 사회주의의 절정을 보여준다. 너무나 미운 춘생이지만, 모택동 주석의 사진만큼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결혼 식에서도 부모에게 인사하기에 앞서 모택동 주석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모습은 신격화된 모택동의 모습을 통해 ‘무지한 인민’을 보여 준다. 이러한 무지한 인민의 모습은 홍위병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모택동을 지지하는 대학생 집단인 홍위병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통해 부르주아적인 요소들을 척결하고 옛 것을 배척하면서 자신들을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장예모 감독은 이러한 홍위병의 오만함에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봉화의 출산일에 병원에 가지만 홍위병은 병원의 의사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의사라고 말하며 병원을 장악한다. 하지만 경험도 없고, 지식이 모자란 그들은 하혈하는 봉화를 치료해내지 못하고, 결국 봉화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어떻게든 봉화를 살려달라는 부귀의 말에 “우리는 의사가 아니에요. 학생이라고요.” 라고 말하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만다. 오만한 홍위병 때문에 비극을 맞이한 소시민의 모습을 통해 당시 문화대혁명의 오류를 장예모 감독은 은근히 비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