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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역사 발표 수행평가 자료 (무오사화 발표 PPT) 평가B괜찮아요
    무오사화 10818 김지수 역사 발표 10818 김지수 역사 발표 10818 김지수 역사 발표Contents PowerPoint can tailor your presentation so that all slides will look a certain way or fill a specific template. If you need to create a presentation for a specific company or have a logo or design that you would like to include on every page. Then you will need to custom tailor your presentation WITHWEB PPTKOREA, INC. 01 - 정치적 갈등의 고조, '연산군 · 대신과 삼사의 충돌' 무오사화의 배경 02 - 김일손의 사초, 붕당의 단초, 조의제문의 발견과 해석 무오사화의 전개과정 03 - 삼사의 연루와 관련자들의 처벌 연루자들의 처벌 04 - 연산군의 측근정치와 갑자사화의 발발 무오사화의 영향01. 무오사화의 배경 - 이로써 연산군 초반 국왕·대신·삼사의 상호관계의 명확해짐 - 국왕은 삼사의 언론활동을 가장 심각한 폐단인 능상으로 규정, 일부 대신들이 공감 - 삼사는 대신을 극단적인 표현으로 탄핵, 일부 대신들은 강력히 반발 - 따라서 무오사화는 국왕과 대신이 연합하고 삼사가 그 대척점에 자리잡은 상황적 매락에서 발발한 사건이다. *수륙재 : 국왕의 구병이나 장수 ·명복등을 비는 목적으로 드리는 불교식 제례 (1) 정치적 갈등의 고조 연산군과 삼사의 충돌 삼사의 반항 - 수륙재의 시행, 외척·내시의 임용과 포상, 폐모(연산군의 생모)의 추숭 등 거의 모든 사안에서 충돌했다. - 삼사는 자신의 의견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즉시 사직했다. 사직은 60~70번에서 1백 번까지 지속되기도 했다. 연산군도 이런 삼사의 행태에 분노를 표명했지만, 제어되지 않았다. - 대신을 겨냥한 삼사의 탄핵이 매우 거칠어짐. 삼사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연산군이 즉위한 이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상소를 올려왔고, 사안에 따라 그 기간은 57일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1497년 1월 16일 천둥과 번개가 치자 장령 이수공은 삼정승과 찬성이 사람답지 않기 때문에 재변이 일어난 것이라고 탄핵했다. 한달 뒤에도 사간 최부는 삼정승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녹만 축내고 있다고 탄했했다. 대신과 삼사의 갈등 증폭0 2 . 무오사화의 전개 (1) 김일손의 사초 김일손의 사초 에 세조와 관련된 불충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혐의 → 젊은 관원, 선비들이 불만을 토로한 문제로 확대 → 김종직의 조의제문 이 발견되면서 사제관계를 매개로 붕당을 결성해 역사와 현실에 역심을 품은 사건으로 규정 김일손의 추국과 신문 - 사초에서 세조와 관련된 서술이 문제가 됨 단종 , 사육신, 소릉 같은 중대한 정치적 사안부터 홀로된 며느리를 취하려는 패륜에 가까운 세조의 개인적 행동까지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책임의 소재가 혼미 - 김일손은 반역의 혐의를 부인함 김일손은 사초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었거나 자신의 소박한 판단에 따라 작성되었다고 변명했다. 김일손이 정보를 제공했다고 지목한 인물들은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기록과정에서 착오가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삼사의 등장 - 사초의 내용보다는 국왕이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더 중시 국왕은 대단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 문제될 소지가 객관적으로 뚜렷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삼사의 자세를 피의자들을 감싸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9대 국왕인 성종의 치세를 기록한 실록이다. 1495년 (연산군 1년) 영의정 노사신 등의 건의로 편찬에 착수해, 1499년 3월에 인쇄가 완료되어 사고에 봉안되었다. 편찬 중인 1494년에 김일손이 제출한 사초와 거기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무오사화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0 2 . 무오사화의 전개 (2) 붕당의 단초 (실마리) 국왕의 판단에 대신들도 동조 - 윤필상 등 사화를 주도한 대신들도 국왕의 판단에 동조했다. → 국왕과 대신은 이 사건을 일군의 집단이 붕당을 결성해 국사와 재상을 비난한 범죄로 파악하고 여기에 삼사가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을 구체화 시켰다. 03. 연산군의 삼사에 대한 의심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붕당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 사화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삼사가 붕당에 관련되었다는 의심도 점차 늘었다. 02. 사초에 연루된 인물들을 수색 - 이목과 임희재가 현실 정치와 국왕에 대한 비판이 담긴 내용을 주고받은 편지를 발견했다. 이에 연산군은 이제 군소배가 붕당을 만들어 재상과 국사를 비판하니 통렬히 징계해 그 풍습을 개혁하라고 명령했다. → 국왕은 김일손이라는 개인의 사초에서 발원한 고립적 문제가 아닌 그와 교유한 집단이 붕당을 형성해 국사와 재상을 비판한 조직적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01.0 2 . 무오사화의 전개 (3) [조의제문]의 발견과 해석 조의제문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김종직이 지은 제사문으로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초 의제를 추모하는 글입니다. 조의제문의 내용 - 초 의제를 조상한다는 제문이었지만,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꼬는 내용이었다.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어찌 항후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마침내 이것을 알 수 없으니 글을 지어 조문한다. → 이를 통해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단종에 대한 상황묘사와 유사한 면이 있어 세조의 후인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유자광의 발견과 해석 - 유자광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발견한 뒤 구절마다 풀이했다. 그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지적해 추관들에게 두루 보이면서 이것은 모두 세조를 지목한 것이니, 김일손의 죄악은 모두 김종직이 가르쳐 이룬 것 이라고 말하고는 즉시 국왕에게 구절마다 해석해 쉽게 알도록 했다. (7월 29일) → 이로써 사건의 피의자들을 김종직의 제자라는 하나의 그물 안에 포획함. - 유자광은 피의자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그 문집과 판본을 소각하며 간행한 사람까지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종직의 부관참시(관을 부수어 시체의 목을 벰) - 제자들의 참화 - 김일손의 부인의 자결 김종직의 [조의제문]. 무오사화가 확대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조의제문] 의 원문이다. 김종직이 26세 때 지은 이 짧은 글은 41년 뒤 조선 최초의 사화에서 핵심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사진은 [연산군일기] 권 30, 4년 7월 17일의 기사며, [점필재집] 부록의 사적에도 실려있다. 유자광의 처벌 주장0 3. 연루자들의 처벌 (1) 삼사의 연루 - 삼사는 앞서 실록을 열람하려는 국왕의 행동을 저지 → 국왕은 삼사에게 ' 어떤 사정 ' 있다고 확신 - [조의제문]이 발견되어 해석된 뒤 정문형, 한치례 등 거의 모든 신하 들은 김종직이 지극히 부도하므로 부관참시에 처해야 한다는데 동의 했음 - 그러나 이유청과 민수복 등의 대간은 김종직은 부관참시해도 부족하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작호를 추탈하고 자손을 폐고시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 을 아룀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극한적인 추죄는 불필요하다는 원칙론적 입장을 제출) → 국왕은 앞서 의심한 '어떤 사정'의 확실한 증거 로 받아들임 - 7/17 7/21 - - 7/24 7/26 - 삼사 체포 명령 김종직의 대역이 이미 나타났는데도 이렇게 논의하니 비호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대노했고, 즉시 체포해 국문하라고 지시했다. 연산군이 대간의 형장과 신문 지시 - 사화에서 삼사가 직접 처벌된 최초의 사례 → 연산군은 삼사가 김종직 일파와 붕당으로 연결되어있다고 파악함 연산군이 대간의 형태를 제어 이제 대간을 뽑을 때에는 대체를 아는 자를 선발해야 하며, 이전의 대간처럼 불초하거나 연소한 자들은 절대 임명하지 말라. 국무에 관련된 발언과 기록 통제 - 기록을 맡은 주서청에 조정 관원들의 출입을 금지시킴 → 외부인들이 김일손에 관련된 일을 모르게 하려고 함 * 무오사화의 영향 * - 사화 발단에 단서가 된 실록청 관리들과 신진사대부들이 숙청된 뒤 그 위세가 더해져 갑자사화가 발생함 - 연산군이 폐위한 까닭인 연산군의 측근정치를 가속화시킴THANK YOU 감사합니다! PPTKOREA{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18.09.25| 8페이지| 2,500원| 조회(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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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발 중국 아가씨 독후감
    전족을 거부한 다섯 살 여자아이인 아이린은 자유롭게 걷고 싶었기 때문에 전족을 거부했다. 아이린의 아버지는 황제가 다스리는 왕조 정치가 무너지는 격변기에 사회의 변화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린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아이린의 인생에는 전족을 거부했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었다. 정혼한 집안에서 파혼을 당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의 첩으로 들어갈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사실, 아이린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곳은 집안만이 아니라 중국 사회 전체였다.아이린은 아버지가 공립학교에 보내 주어 열악한 상황에서 홀로 살아갈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린은 선교사 가정에서 일하다가 그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되었는데, 집안에서는 아이린이 거부하고, 반항하고, 고집 부리며 생활했기 때문에 참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아이린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길이라면 ‘아니요.’라고 말했다. 즉, 아이린은 안정적인 삶이나 소중한 관계를 포기하고 정체성의 혼란이 오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아이린은 전통과 서구 근대 사회의 경계에서 갈등과 혼란, 불안감과 외로움을 겪지만 중국에서의 상류층 생활보다 미국 이민 2세와 결혼하여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삶이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음을 당당히 증명해 보인다. 아이린의 이런 삶이 중국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을까? 아이린의 삶은 지금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행복에 방해받지 않고 용기 있고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지나 욕망을 꺾고, 감추고, 전족과 같은 틀에 억지로 끼워 넣으며 살고 있지는 않느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전족에 대해서 자세히 찾아보았다. 전족은 송나라 때 시작되어 명·청 시대에 유행했던 것으로, 여성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어 성장을 멈추게 하는 풍습이다. 약 10센티미터의 발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하니,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발은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오그라들어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몹시 흉측한 모습이라고 한다.
    독후감/창작| 2018.09.25| 1페이지| 1,000원| 조회(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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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영 시인의 분단극복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국어 심화학습 보고서, 비교과 자료)
    1. 작가 소개김수영 [金洙暎]- 생애 및 활동사항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서 도쿄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다. 1943년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1944년 가족과 함께 만주 길림성(吉林省)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교원생활과 연극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년에 편입하였으나 중퇴하였다. 북한의 남침으로 미처 피난하지 못한 그는 북한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 뒤 미군통역생활도 하고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 등 여러 직장을 전전하였으나, 1956년 이후부터는 시작과 번역에만 전념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2. 김수영 시인의 분단극복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 2018년 우리이 보고서는 김수영 시인이 북한의 남침으로 미처 피난하지 못해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고단한 시기에 집필한 작품을 분석하고자 했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판문점 선언 등 남북 간의 활발한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본 보고서는 논문 을 바탕으로 하여 김수영 시인의 작품을 통한 분단문제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탐구해보려고 한다.김수영 시인은 8·15 광복부터 4·19 혁명까지의 사건들에 관해 시를 남겼다. 김수영 시인의 문학과 활동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들도 언급되지만 본 보고서에서는 작품을 중심으로 다뤘다. 첫 번째로, 김수영 시인은 전쟁중에 의용군으로 소집되어 훈련을 받았고, 그곳을 빠져나오다 국방군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감금되어있었다. 그는 의용군 시절 이북생활을 체험하면서 이전에 자신이 북한에 대해 가졌던 것과는 다른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흔적을 우리는 산문과 시에서 부분적으로 읽을 수 있는데, 그가 쓰다가 만 것으로 되어있는 이라는 소설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김수영이 의용군을 나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으며, 당시 북한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예를 들면, 이작품의 주인공 순오는 의용군에 지원하면서 당시 조선문학가동맹의 문학가들을 존경하고 자신도 그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순오는 그 중에서도 임동은을 우상으로 생각하고 자신도 북으로 가서는 그 사람처럼 영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북으로 이동되는 과정에서 보고 겪은 북한의 실상은 마음속 자리잡고 있었던 이상적인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소설 속의 주인공의 생각을 적은 것이라 이를 작가 김수영의 것으로 바로 연결시키기는 곤란하지만 전체적 정황을 미루어볼 때 이러한 태도는 김수영 자신의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다음으로는 에 관한 내용이다. 전쟁 후 이전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소극적 저항에 불과하였다. 전후 냉전체제가 고착화되면서 남한 사회의 억압적 상황 또한 강화되어 시인에게 일체의 비판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없는 마당에 북한에 대해 비판한다는 것은 김수영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가 북한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남한사회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은 두 체제 어느 곳에도 가담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소극적 저항이다. 이러한 점은 시 에서 잘 드러난다. 이 시는 비록 4·19 이후에 쓰여진 것이지만, 전쟁 중 김수영의 태도, 즉 소극적 저항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그는 반공포로에 속해 있었고, 나중에 남쪽에 남게 되었다. 시 내용중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 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는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서는 전쟁을 겪으며 김수영이 북한에 대해 가졌던 판단을 정보원들이 이용해 그를 포로경찰로 만들려고 여자들 앞에서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려가면서까지 애쓴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그에게는 포로경찰이 되어 어느 한 편을 드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자유롭게 자기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쪽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에게 양심상 허락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소극적 저항을 계속했고 이는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라는 구절에 드러난다.이처럼 그는 자유당하 남한현실의 억압 속에서 어차피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침묵하고 협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19 혁명을 계기로 그 시대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그는 아주 적극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분단을 강요하였던 외세의 개입과 강압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현한다. 김수영은 라는 시에서 미국과 소련은 결국 마찬가지라고 평가하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민족 자결권을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미국인과 소련인에게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라고 했지만, 그들이 순수히 물러가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결국은 이 땅의 각성한 민중이 그들을 물리쳐 내는 것밖에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땅에 들어와 자신들의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분단을 초래하였던 외세의 억압을 바로보면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서는 이들을 쫓아내는 길밖에 없음을 자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 시인은 민족문제의 해결책으로 남북한의 민중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4·19 혁명 직후 민족일보에서 기획한 ‘남북한의 지상 서신 교환’ 시리즈에서 김수영이 쓴 글에 이러한 인식이 분명히 드러난다.
    인문/어학| 2018.09.25| 3페이지| 3,000원| 조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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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한국의 사례분석을 통한 법인세 정책과 실효성 고찰(비교과 활동, 보고서, 경영학과, 수행만점)
    ( 미국과 한국의 사례분석을 통한 법인세 정책과 실효성 고찰 )- 목 차 -1. 서론2. 본론2-1. 이론적 배경2-2. 미국의 법인세 인하정책과 대한민국의 법인세 인상 정책 비교2-3. 법인세 인하정책의 실효성 고찰3. 결론4. 참고문헌1. 서론서론에서는 본 보고서의 주제를 선택하게 된 동기(연구배경)와 연구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해서 서술했다.성효용(2008)은 기업에 대한 법인세 부담의 감소가 중장기적으로 투자를 활성화하여 기업의 이윤을 증대시키고 궁극적으로 세수입 증대로 귀결된다는 일반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고 했다. 나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법인세 인하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한국은 문재인 정권에서 법인세 인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정책이 효율적이고 그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지적호기심이 생겨 본 주제를 선택했다.따라서 본 보고서의 목적은 미국과 한국의 법인세 정책에 대한 실효성 분석이며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그 필요성을 두고 있다.2) 본론본론에서는 먼저 이론적 배경에서 법인세의 개념과 법인세를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서 정리하고 다음 항목에서 서로 대비되는 미국과 한국의 법인세 정책을 비교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본론의 마지막 항목에서는 법인세 정책의 실효성을 고찰했다. 법인세의 개념과 계산방법에 대해서는 검색을 통해 그 정의와 방법을 조사하였고 법인세의 실효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법인세 인하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선행연구를 통해서 분석하였으며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선행연구가 부족하여 이에 반박하는 주장에 대한 선행연구를 정리했다. 법인세 인하의 효과가 실제로 있는가에 대해서는 본 연구의 주제에 적합하게 현재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법인세 인하정책을 주장하면서 제시한 효과에 대해서 중심적으로 분석했다.2-1. 이론적 배경이론적 배경에서는 법인세의 개념에 대해서 정리했다. 법인세는 주식회사와 같이 법인 형태로 사업을 하는 경우 그 사업에서 생긴 소득에 대하여 부과하는 세금으로, 기업의 소득세라고 할인을 말한다. 비영리 법인의 경우 공익사업에는 과세하지 않고 수익사업에만 과세한다.법인은 사업연도 종료일부터 3월 내 ‘법인세 과세표준 및 세액신고서’에 기업회계기준에 의하여 작성된 재무제표(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와 세법에 의해 추가로 손금 또는 익금이 허용되는 사항을 반영한 세무조정계산서와 부속서류를 첨부하여 관할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소득이나 특정 분야의 중소기업 등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비과세, 세액감면 등의 혜택을 받으며, 또 외국인 투자촉진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외국인 지분이 10% 이상인 외국인 투자기업과 국내 미개발부문 등 고도기술수반사업, 산업지원 서비스업, 제조와 호텔업 등 대규모 투자사업, 자유무역지대와 관세자유지역내의 투자 사업은 조세감면을 받아 소득세, 법인세를 처음 7년간은 전액, 이후 3년간은 50%을 감세해 준다. 우리나라 법인세율 체계는 과세표준 2억 원 미만 10%, 2~200억 원 미만 20%, 200억 원 초과 22% 등으로 나뉘어 있다.다음으로, 법인세 계산방법에 대해서 정리했다. 법인세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계산된다.1. (손금불산입+당기순이익)-(익급산입한 액수+손금산입한 액수)= 각 사업연도에 해당되는 소득 금액2. 소득금액-(이월결손금+비과세소득+소득공제액)=과세표준3. 과세표준×법인세율=산출세액4. 산출세액-(세액공제액+기타 감면내역)=최종 부담 금액2-2. 미국의 법인세 인하정책과 대한민국 법인세 인상정책 비교9월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적 감세로 미국에 기업과 고용을 돌려줄 것’이라고 세제개혁을 발표했다. 미국 감세안의 핵심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35%에서 20%로 대폭 인하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영업자들의 사업소득 과세도 최고세율 39.6%에서 35%로 크게 내리고 해외기업들이 쌓아둔 기업 수익금도 1회성 납세만으로 본국에 송금하는 것을 허용했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투자와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경제세율 최고 22%를 25%로 올리는 법인세 증세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반대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방편으로 법인세 인상을 추진해 세수를 증가시켜서 그 증가분으로 복지혜택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미국과 한국의 법인세 정책을 분석했다. 아래는 미국과 한국의 상반되는 법인세 정책에 대해서 정리한 표이다.본 연구는 세계 각국들은 법인세를 인하하기 위해 계속 법안을 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이를 역행해서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했다.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법인세 인상과 인하를 실시하였을 때 기대되는 효과로 주로 제시되는 내용들을 정리했다.먼저, 법인세 인하를 실시했을 때 주로 제시된 기대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의 국가들은 개인 소득세를 높이는 반면, 기업 이익에 부과하는 법인세는 낮추는 추세로, 법인세 감세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위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는 순수 법인세율을 기준으로 대만은 2010년 25%에서 17%로 법인세를 인하했고, 일본은 30%에서 25%로, 영국은 28%에서 22%로 인하를 추진했다. 또한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법인세를 35%에서 20%로 인하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OECD 회원국들의 평균 법인세율도 2000년 32.59%에서 2012년 25.47%까지 떨어진 상태이다.둘째, 법인세를 인하하면 국내기업의 수가 늘고,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도 늘어난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1995~2011)에 따르면 1995년 법인세(30%)에서 2011년 법인세(22%)로 법인세가 25년 동안 대략 8%가 감소하였는데 법인의 개수는 같은 기간 동안 11.8만 개에서 46만개로 3.9배가 상승했다. 또한 과세금액 또한 28조원에서 228조원으로 8.1배가 증가하였다. 다시 말해, 법인세를 인하하면 법인세를 내는 전체 법인 수가 증가하고 세금 부담이 적어진 기업의 적극적인 경제활동으로 세금이 다시 늘어난다는 것이다. 위 주장은 국가의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법인에 대한 제시된 기대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법인세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대기업 법인세율 인상을 통해 대기업의 독식을 방지하고, 이 세금으로 서민들을 위한 소득재분배, 복지정책 등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제시된다.둘째, 현행 법인세 감면에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대한 예시로, 법인세 감면 제도 중 가장 규모가 큰 임시투자세액공제와 연구 개발 세액공제의 경우 상위 10대 기업이 돌려받은 세금(2009년 납부 기준)은 1조 7665억 원으로 전체 감면액 3조 6350억 원의 48.6%에 이르렀다. 즉, 감면액의 절반 정도가 10대 기업에 돌아간 것이다.하지만 위의 법인세 인상에 따른 효과에 반박하는 주장들도 있다. 첫째, 법인세를 올리면 근로자의 임금하락, 주주 배당금가소, 제품 가격 상승 등을 통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김승래(2010)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높인다고 해도 법인세 증가의 부담을 기업이 고스란히 흡수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저소득 계층인 소비자 및 근로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김승래(2010)는 법인세율이 1% 인상될 경우, 1조 4천억 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고 이 가운데 약 26%인 3400억 원이 근로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둘째, 법인세 명목세율을 높이기보다 왜곡된 비과세, 감면 제도 등을 기반으로 한 턱없이 낮은 현재의 실효세율(기업의 과세표준에서 각종 비과세와 감면 항목을 제외하고 실제로 낸 법인세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2-3. 법인세 인하정책의 실효성 고찰본 항목에서는 2-1번 항목에서 현재 미국이 법인세 인하정책을 실시했을 때 기대되는 효과로 제시한 기업투자 활성화와 고용창출에 대한 실효성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제시했다.첫째, 최정철(2015)에 따르면, 법인세의 부담이 감소하게 되면 기업의 설비투자 증대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증대되면 고용창출효과 및 국제 조세경쟁에서도 해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면 기업투자 증대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추가적인 법인세 인하 정책을 수립할 경우에는 현실 경제상황을 고려하여 재정수입 측면을 보완해 나갈 수 있는 대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둘째, 김동훈(2015)에 따르면, 법인세가 기업의 고용창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비유의적인 부(-)의 관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는 법인세 인하가 기업들의 고용수준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유효법인세율(ETR)은 유형자산증가율(INV)을 통하여 종업원 수 증가율에 1%의 유의수준에서 유의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법인세 인하를 통하여 기업의 투자활동을 촉진하고 그로 인하여 우회적으로 고용을 창출하려는 정책에는 유효하다는 결과로 풀이된다. 즉, 법인세 인하는 기업들의 고용수준을 결정하는 간접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셋째, 주은아(2014)는 2008년을 기준으로 법인세 인하 전 3년부터 인하 후 3년까지의 자료를 이용하여 법인세율 인하가 기업의 투자 등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법인세 인하를 실시하면 투자활동 변수들은 연구개발비만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법인세율 인하를 통한 고용증가율은 일정 수준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위의 연구들을 근거로 나는 미국이 법인세 인하정책을 실시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로 제시한 기업투자 활성화와 고용창출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법률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의 연구에서 법인세 인하정책을 실시했을 때, 투자활동 변수들의 증가는 무의미한 방면 연구개발비만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이 법인세 인하를 통해서 얻은 추가 수익을 투자에 사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기업의 확대재생산이나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에 사용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나는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이 법인세 인하를 통해 얻은 수익을 사용할 수 있는다.
    경영/경제| 2018.09.25| 8페이지| 2,500원| 조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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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학 오딧세이 독후감
    미학 오딧세이 독후 감상문 (10818 김지수)미학 오딧세이는 네덜란드 판화가로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 세계로 유명한 에셔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셔의 작품들은 여러 세계를 넘나들며 불가능한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이 책은 가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원시 예술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주름잡았던 근대 예술까지 설명하고 미의 기준과 미적 범주 등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통찰한다. 그중 그리스 예술에서 그리스인들에게 예술은 테크네로서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특히, 플라톤에게 광기의 산물로 취급받던 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후 테크네로 승격한 것을 통해 두 철학자의 가치관의 차이를 생각할 수 있었다.근대 예술에서는 미술 수업 시간에 배웠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중세까지만 해도 장인적 예술로 천대받던 회화가 원근법 덕에 인문학으로 승격되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주로 밀라노에서 활동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야말로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생각했으며 온갖 자연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인체 비례도 등의 그림을 그렸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현실에 충실하여 자연을 모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관과 연결되었다.이에 반해서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예술의 으뜸으로 내세웠으며 내면의 미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즉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는 반대로 인간의 내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이는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주의와 연결된다.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두 화가를 통해서 철학적으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념적 차이를 생각했고 음악적으로는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적 차이로 관련지어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서의 예술은 현실을 모방한 것으로 비례와 같이 기하학적 형식미를 강조한 예술이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질료 속에 형상이 있다고 말하며 형상보다는 구체적 현실을, 즉 개인의 구체적 경험을 중요시했다. 반면, 플라톤의 이데아는 감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영혼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형상을 강조하여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였다.
    독후감/창작| 2018.09.24| 1페이지| 1,000원| 조회(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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