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1강좌소개구석기시대 만년신석기시대 천년청동기시대 백년삼국시대 10년을 단위로 한다.수업 300년 다룬다.구석기시대 ? 돌신석기시대 ? 돌+토기청동기시대 ? 돌+토기+청동기삼국시대 ? 토기+청동기+철인간기술 up 사회구조 복잡! 연구대상 up삼국시대1:유적,유구편삼국시대2:유물편시대 개관이해하는데 중점!영남지역을 중심.-가야,신라가 활약, 물질자료인 고고자료가 다양.여기서 차차 범위를 확장하여 중국일부지역,한반도,일본열도가 모두 대상 can, 그래도 고구려,백제,신라,가야등이 중심우리 고고학도들은 물질자료가 나타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 해석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판단하게 하는 일차 기준이 ‘분포권’으로 우리가 사고하는 국경과 같은 경계는 의미가 없다.삼국의 성립: 고구려 BC37년, 백제 BC18년, 신라 BC57년, 가야 AD42년신라가 승자라서 신빙성X삼국지: 이 무렵을 삼한으로 표현고고학: 이 무렵을 원삼국시대, 삼한시대로 표현문헌사가 중: 긍정론(신빙론)자, 부정론(허구론)자, 수정론자-긍정론: 초기기록 믿고 그대로 인정하는 경향-부정론: 아예 믿지 않고 그것을 버리는 경향, 일인 학자들이 먼저 주장-수정론자: 연대기를 그대로는 믿을 수 없다해도, 과연 그내용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초기기록을 나름대로 재해석하려는 연구그룹문헌사학계에서는 대체로 4세기 후반대 초기기록은 믿을만 하다고 봄.예) ‘경주 황남대총 남분’의 주인공을 내물왕,눌지왕 인가에 따라서 신라고고학의 편년관이 5~60년 차이를 보임선사고고학: 기록이 없는 시대를 다루는 학문-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고고학역사고고학; 기록이 있는 시대를 다루는 학문-삼국시대고고학 이후 대상원사고고학: 기록이 있기는 하나 너무 미진하여 고고학에 의존해야만 하는 시대-삼한시대,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삼국시대도 기록이 충분하진 않다.고고학적 기준에 의해서 시대구분이 이루어졌다.삼한시대,삼국시대 경계: 3세기말의 변화를 지표로 삼는다.이 강좌의 시작은 이 무렵부터 시작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의해 멸망하는 7세기 중엽 경까지로 설정은 하나 실제는 6세기 중엽 경까지 주로 다룬다 !!(가야 활동 시기)6세기 신라사회는 율령사회로 접어들며 실묘문화(‘횡구식석실묘’,‘횡혈식석실묘’)정착, ‘박장’ 습속 유행.전기가야:3세기말~5세기 1/4분기후기가야:5세기 2/4분기~562년고대사학계-전기론,전사론전기론은 건국시기부터 이 무렵을 가야전기로 파악하고 그 이후를 가야후기로 보는 입장. 가야 전후기의 획기를 가야 관련 기사가 공백을 보였다가 새로 나타나는 5세기 중엽 경으로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때를 가야사에 포함시켜 해석합니다.전사론은 이를 가야사에 포함시키지 않고 삼한과 같은 전 시대사로 봅니다.1970년까지 전기론 -> 전사론 정착‘분묘’,‘부장품’이 핵심자료 !! -고분편무문토기:산화염소성, 와질토기:환원염소성전기: 초기철기시대 후기: 원삼국시대 목관:목곽- 장법의 차이이다.> 유물부장 습속과 묘광 내 공간 처리법이 다르다.- 유행시기가 다르다.> 전기와질토기(목관):후기와질토기(목곽)[삼한 전,중기:후기, 전기전반:전기후반, 원삼국시대 전기:후기]목관묘:목관이 나무로 됬으니 빈공간이므로 안에 썩고나면 목관이 함몰한다. 이것을 ‘함몰’이라고 하며 토층이 딸려들어가는데 이것을 ‘u자함몰’이라고한다. 벽에 붙어있던 흙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관높이만큼 함몰되고 토층이 벽에 붙어있다. 관에 부장토기가 부장되어있다.목곽묘:흙이 벽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다. 목곽묘는 전체가 흙을 곽에 채워놓는 것이다. 흙이 나중에 함몰되며 무너진다. 곽의 나무가 썩으면서 빈공간으로 흙이 내려간다. 흙이 묘광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목관묘:주피장자만 안치한 시설, 신체 착장 유물(장신구,손칼)이 포함된다. 토층은 목관이 있고나서 그 사이에 공간을 흙으로 다 채워났다. 벽에 흙이 붙어있다. 목관묘는 부장품을 안에 넣지 않으므로 목관을 두고 유물은 바닥,목관 위, 중간중간에 유물을 부장하여 흙을 채워들어간다.목곽묘: 주피장자와 부장유물(체부를 중심으로 하여 목관묘와 목곽묘로 구별하여 부르게 된 것은 1980년대 부터이다.(1983)전기~후기 전반-목관묘, 신분과 연령에 따른 무덤의 격차상정, 아직 國의 단계후기 후반-목곽묘, 신분에 따른 규모차와 묘역의 구분, 계층화 상정유행시기가 다르다.> 전기와질토기(목관):후기와질토기(목곽)4/7유구의 연대-> 기록x, 연대파악에 어려움-> 거울,돈 (만드는 방식에 따라 연대o) -귀중한 자료사라리 130호묘-목관묘청동+철근이 같이 나옴한국식동검=초기철기시대에 극히유행사라리 130호묘-삼한시대 때의 판상철부-방저경=중국의 거울을 모방- 대표유적: 김해 양동리162호묘, 울산 하대44호묘(곽+부장유물+거울, 규모가 상당히 큼)-환제와 영제의 말기에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이 이를 능히 제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한국으로 많이 흘러 왔다.-소환두대도가 무기로(무장적 변화),토기변화,무덤변화-> 큰 사회적 변화도질토기 3점 첫 출현 -> 가야의 성립-시험문제- 고고학에서의 지표 [3세기말의 대변혁:신경철]1. 도질토기의 등장2. 순장 (한 집단의 지배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강제로 혹은 자진하여 산 사람을 함께 묻던 일)3. Ordos형 동복(청동솥)4. 무기의 훼손 행위5. 갑주(갑옷과 투구)와 마구(말을 타거나 부리는 데 쓰는 기구)6. 묘제(목곽묘)7. 선행분묘의 파괴? 북방적 문물, 습속의 등장[특정종족(부여족)의 이주]? 낙동강하류역에 가장 먼저 등장? 김해(대성동유적), 부산(복천동유적)-김두철- 북방과 왜등의 외래문명을 수용 EX.파형동기(대성동고분군-바람개비모양)- 북방습속의 전래 (순장 등)- 무장적성격의 강화 (갑주와 마구 등)- 묘제의 변천 (주·부곽묘의 출현과 성립)- 지역양식권의 분화? 낙동강하류양식:내륙양식 (주변영남지역)? 토기문화와 묘제? 주·부곽식묘 4/9가야의 고분문화- (문헌기록 : “삼국유사” 중의 “가락국기”)A.D 42년: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가 역촌장의 추동로 왕이 된다.신라 (B.C말~5세기 1사분기]?전기가야: 낙동강하구역의 세력이 중추김해 구야국; 김관가야 (대성동유적)부산 독로국 (복천동유적)-가야후기 [5세기 2사분기~562년]?후기가야: 낙동강서안을 중심으로 할거고령 대가야 (지산동유적)함안 아라가야 (말산리·도항리유적)합천 다라국 (옥전유적)진주·고성 소가야 (송학동유적)기타 친신라계가야제소국 : 창녕, 성주, 고촌고분 등- 풍부한 철기문화?국출철, 한, 예, 왜개종취지. 제시매개용전, 우이공급이군. 「삼국지 위서삼십 오한선비동이전제삼십 변진제」- 해상거점의 확보를 통한 중계무역의 장악(전기가야)-삼한시대(판상철부)->삼국시대(철정)-철이 풍부하였다.*토기분화(낙동강하구양식-부산,김해/내륙양식) :토기를 통해 두 지역적 차이가 있다.외반/내만/-외절구연고배(-낙동강하구양식(김해,부산+창원일부),전기가야)-첫사진/-통형고배(내륙양식)-갈색사진-노형기대(화로형기대)[낙동강하구양식(내만구경파수부)/내륙양식(외반구경무파수)]-파수가 단면이 동그라면 4c전반, 장방형은 4c후반, 5c 흔적기관4/14 -지난시간복습대성동 고분군 29호묘: 구릉아래쪽에서 구릉위를 향해서 무덤이 조형되어간다.(일반론)복천동 38호묘: 구릉밑에서 중앙의평탄지를따라 위로 조형됨, 단독곽과 수강곽은 시간적인 차이존재.구릉아래서 생겨난 경우o, 적석목곽묘 -> 지역의 무덤으로 형성, 독립적인 지역성, 집단무덤이 하나의 유형4c 전기가야 양대 큰세력- 김해대성동고분군,부산복천동고분군3c 후엽: 진한,변한 기록서 이름교체?/ 전기,후기가야=다른국가/ 김해->가야,부산->신라두 세력은 강 [목관계목곽묘]-> 목곽묘>桓(환)(146~168), 靈(영)(168~189)之末(지말)의 변화>목관계목곽묘의 존재와 지역성- 목곽묘(널을 넣어 두는 널방을 나무로 짜 맞춘 무덤) -> 4C 주·부곽식목곽묘(목곽묘 중에는 시신 매장과는 별도로 유물만 넣어두는 공간인 부곽(副槨)을 마련) -> 적석목곽묘(땅 위 또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넣은 뒤, 그 위를 돌로 덮고 다시 흙이라 한다.4C중심 - 김해 대성동고분군, 부산 복천동고분군 공통점-묘제 : 이혈-토기 : 외절구연고배, 파수부노형기대주변-묘제 : 동혈-토기 : 통형고배, 무파수노형기대중심에 +내륙양식 자체생산(여집합)중심과 주변의 관계중심은 생산수급이 충분전기가야 상호관계1. 김해의 하부 조직으로서의 연맹관계2. 독자세력으로서 상호호혜적 연맹관계 *쌤은 이주장 !김해 대성동고분군, 부산 복천동고분군 두집단 차이 -> 장례,장법도 다르다.대성동: 관상이 육각형 혹은 상자형관을 가지고 평서의 형태를 가진다. 꺾쇠,관정이 같이 사용됨.평상을 쓰고 있다.복천동: 관상을 쓰는 최초는 4c중엽경 38호분. 아주 큰 통나무 관을 가지는데 이 큰 통나무 관이 왜의 영향으로 나타난다. 바닥에 요상, 오목한 관상을 쓰고 있다. 꺾쇠는 있으나 관정을 쓰고있지 않다. 4,5c기에 꺾쇠형태 일정.양동리유적 ? 평상o, 꺽쇠,관정o/따로도o, 규모가 작은관구릉의 높이에따라 계급다름 높을수록 엘리트계급.예안리유적 - 관상이 요상. 통나무관, 꺾쇠-경자년 400년(전기가야해체계기)- 통형동기(4c 연맹관계 상징유물): 대성동,복천동 끈끈한 관계맺음, 5c후반대이후 관계끊기고 대성동은 양동리에 통형동기를 줌으로써 관계를 공고히 할려고 함.무시상- 별도의 시설없이 바닥에 돌을 깔지 않고 편평한 것-토착형평상- 관리 안치되는 바닥에 할석,판상석 등을 전체적으로 높이가 고르게 깐 것-상현관으로 존재상정,대성동형요상-곡률이 있는 목관을 위해 밑에서 받치는 개념-복천동형A1: 관 안치 사전에 관장시설마련(통나무관), A2: 관안치와 동시에 돌을 받쳐 놓은 것(주형목관)열상- 관 아래에 돌을 종이나 횡으로 열지어 그 위에 편평한 목관을 둔 것이다.쐐기형-나무에 고정꺽쇠형-개부와 신부의 결합주로사용복천동: 꺽쇠/요상/통나무관,주형관대성동: 꺽쇠&쐐기/평상/A2c많음양동리: 꺽쇠&쐐기,장변에 쐐기많음/A2a많음예안리: 요상이 Ⅱ부터 많음/꺽쇠함안 도항리: 5c부터 관상,관정사용/단독곽/자갈깔고 요상에 통나무관-아라상석곽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