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02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조선시대 미술] 회화
    조선(1392-1910) 미술 (회화-전반기)* 조선 성립 배경 및 특징- 왜구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실력과 신망을 얻은 이성계가 1392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 건국- 고려의 북벌 정책을 포기하고 원나라 이후 등장한 한족의 새 왕조인 명을 받듦- ‘숭유억불’ 정책에 따른 유교의 형성과정에서 변화된 조선시대 사람들의 미의식 반영→ 불교를 토대로 발전했었던 삼국시대~고려시대까지의 미술과는 많은 차이를 드러냄* 숭유억불의 장단점- 장점: 학문을 중시하는 풍고자 생겨 인쇄문화 발전, 유교 미의식에 입각한 새로운 문화가 창출됨 → 소박하고 진솔한 자연주의적 문화의 탄생- 단점: 기예를 천시하는 풍조 발생, 승려들의 문화적 기여가 심한 제약을 받아 이전 시대 문화적 업적을 기피함 →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약화시킴-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분되는 엄격한 신분제도, ‘사, 농, 공, 상’으로 구별되는 차별적 직업관이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영향을 줌- 도가사상과 불교사상의 잠재적 영향 표출→ 도가사상: 도자기 문양, 산수화, 건축과 조원원리 등에 영향→ 불교사상: 끈질긴 생명력으로 불상, 불교 공예화 회화, 사찰건축 등 발전시킴- 중국 영향을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 일본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침- 회화와 서예가 역사상 가장 크게 발전함Ⅰ. 회화* 조선 회화 특징1) 유교적 문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회화 지도와 후원- 유교에 입각한 정치적 이념의 실시와 도덕적 규범의 보급을 위해 회화가 중요한 역할을 함- 중국 화론에 바탕을 둔 ‘시화일률(詩畵一律)’사상과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은 뒤 차차 독자적이고 새로운 화풍을 창출함- ‘지화격자(知畵格子)’론의 역할: 그림을 잘 아는 사대부들이 화원을 선발, 승진시키고, 이론적으로 그들을 지도하고,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화풍을 수용하는 데에 선구적 역할을 함→ 왕공 사대부들이 순수 감상을 위한 그림 창작과 이론에서 회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함2) 도화서 화원이 중심이 된 회화의 발전- 실용적 기록화 제작: 궁중의 서 반영- 잔산잉수: 북송 이후 남송으로 서서히 패망하는 송의 처지를 반영. 나지막한 산과 습윤한 기운을 나타내는 표현- 굴절된 소나무 표현, 부벽준으로 표현된 산이나 언덕 등 산수 표현→ 이상좌의 에 적용됨③ 절파화풍 영향- 명대 전기 북종화풍으로 절강성 출신인 대진 중심으로 소경인물산수화풍 형성- 강하고 거친 필묵법과 강한 흑백대비, 마하파의 구도에 중경을 삽입한 복잡한 구도, 인물 중심의 소경산수화풍→ 강희안의 에 적용됨④ 미법산수화풍 이입- 북송의 미불, 미우인 부자가 창시하여 원대 고극공으로 계승된 부드러운 미점준의 남종화풍- 서정적이고 시의와 문인정취가 풍부한 산수화- 동원의 산수화법을 참고하여 수묵으로 자유롭게 점을 찍어 안개에 싸인 수묵을 표현하며 붓 가는 대로 그림- 북송대의 이성, 범관의 웅대한 산천과는 전혀 다른 산수화 창출→ 이전의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간솔한 담묵으로 구름과 안개가 낀 어렴풋한 서정적 풍경 표현- 수묵산수화 기법에 영향을 미치며 문인화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음→ 고려시대부터 전래된 후 조선 초의 이장손, 서문보, 최숙창 등에 이입⑤ 백묘화법과 호주죽파 이입- 북송대의 이공린 계의 백묘화법과 문동, 소식의 호주죽파의 묵죽화풍이 일부 작가들에게 이입2. 기록화의 활발한 제작: 의궤도와 계회도- 임금의 어진이나 궁중 행사, 사건, 특정한 인물들을 사실에 충실하게 그린 기록화 제작 유행- 도화서에서 조선 초부터 시작되어 후기까지 오랫동안 제작됨- 주로 극적 장면을 포착하여 구성하며, 당시의 풍ㅅ고이나 풍물을 알게 해주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큼① - 사대부들의 계회를 기념한 그림으로 문인들의 대표적인 향유 문화를 보여줌- 고려시대부터 사대부들의 사모임 묘사로 있어왔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더욱 유행하게 됨- 주로 선비들의 친목 도모와 풍류 목적으로 계회를 기록함- 산수화의 연구 가치가 높으며, 풍속화와 진경산수화가 발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함- 형식은 주로 3단으로 구성 : 맨 위에 제목, 중앙에 회계 장면, 맨 아래 ‘좌목’이라는 참석건을 한 화면에 연속적으로 그려 제시하는 것② , , 등 제작- 17세기에는 일본에 전해져 일본판으로 다시 새긴 도 제작됨5. 사의적 산수화로 소상팔경도와 사시팔경도 전개① 소상팔경도- 중국 소상과 상강이 만나는 동정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린 8장의 그림: 북송 때 정형이 성립되며, 한국과 일본에서도 많이 그려짐- 4계절의 특징을 8폭에 효과적으로 나타냄: 산시청람, 연사모종, 원포귀범, 어촌석조, 소상야우, 동정추월, 평사낙안, 강천모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제작되었으나, 그림은 없고 조선시대 상반기 회화에 많음: 이징, 김명국, 심사정, 최북 등- 조선 후기에는 주로 청화백자의 문양에 사용됨② 사시팔경도- 사계절의 변화를 초봄, 늦봄, 초여름, 늦여름, 초가을, 늦가을, 초겨울, 늦겨울의 8장면으로 묘사한 그림- 각 그림은 각 계절마다 한 쌍씩 마주보는 세트식으로 배치→ 각 그림이 변각구도이기 때문- 안견의 가 대표적이며, 16세기까지 전통이 이어짐* 조선 전기 대표 화가1. 안견- 세종 때 배출된 조선 초기 최고의 산수화가로 ‘안견파 화풍’을 형성- 안견파 화풍: 곽희화풍과 마하파의 공간특성이 종합된 독자적 화풍 형성→ 넓은 공간 표현과 편파구도, 해조묘와 변화가 다양한 구륵법, 붓자국이 감춰진 필묵법,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나 시각적을 조화를 이루는 경치 배치, 단선점준 사용, 삼원법에 의한 종합적 구성, 수면과 안개를 따라 펼쳐지는 넓은 공간 등 (몽유도원도, 사시팔경도)- 조선 중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읿노 무로마치 시대의 ‘슈분파’에 영향을 줌- 양팽손, 정세광, 김시, 이징, 이정근, 신사임당, 김명국 등에 의해 중기까지 이어짐① , 1447- 조선시대 산수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조선전기 세종조 르네상스의 대표적 산수화- 시, 서, 화 삼절이 갖추어진 종합 예술적 성격이 강함- 서른 살의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도원을 거니는 굼을 꾼 것을 안견이 재현함- 그림 옆에 박팽년, 신숙주 등 집현전 학자들과 당대 최고 문인들의 찬시가 적힘 물과 자신을 관조하는 도가적 풍경을 묘사함- 묘사에 있어 세부를 묘사하지 않고 대범하고 거칠게 그은 짙은 먹색의 바위와 빠르게 내리 그은 덩굴, 몰골의 나무와 잎이 있을 뿐 자연과 자신을 관조하는 모습* 절파화풍의 조선 초, 중기로의 영향- 마하파의 화풍을 기초로 하여 중경을 삽입시킨 복잡한 구도로 표현됨- 호방하고 거친 필치를 사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함- 강희안이 초기에 도입하여 함윤덕, 김시, 이경윤, 김명국 그림에서 드러남- 함윤덕, , 견본담채, 16세기 후반→ 머리를 숙여 내리고 다리를 벌린 채 비틀거리는 나귀와 태연한 선비의 모습이 주 공간에 부각됨. 주 공간과 인물의 강조가 와 유사. 필치는 보다 더 유연하고 부드러움- 김시, , 견본담채, 16세기 후반→ 인물 중심의 주제, 흑백 대비가 강한 산, 굴곡이 심한 소나무, 강한 필묵법, 기울어진 주산의 형태 등에서 절파화풍의 영향이 드러남- 김명국, , 17세기→ 인물의 비중 있는 표현, 날카로운 느낌의 주산, 화면을 압도하는 대각선 구도, 거칠고 힘찬 수지법과 기교적인 필묵법 등4. 이상좌- 노비 출신으로 도화서 화가로 활동하였고, 인물화와 산수화에 뛰어남- 조선 초기 화단에서 대표적우로 ‘마하파’의 영향을 드러냄→ 산수 중심의 남송 원체풍(마하풍)의 영향을 수용: 근경 중심의 일각구도, 인물에 주어진 작지 않은 비중, 굴절된 소나무, 생략적인 원경의 표현 등에서 마하파 화풍의 특징이 드러남→ 그러나 산이나 언덕에서 부벽준법이 별로 보이지 않아 전반적인 한국적 특색 드러남- 대표작: , 등① - 남송 원체화의 대가 ‘마원풍’의 산수화, 견본담채, 족자형식, 15세기 말~16세기 초: 근경에 산수 중심 배치를 하며 웅장한 산수를 다 그리기보다 인상 깊게 느낀 부분만 중점적으로 그리는 화풍- 등 뒤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는 선비가 소나무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으로 우측 하단에 작게 인물이 그려지고 소나무는 화면 근경에 크게 그려짐- 근경의 벼랑 위 소나무 아래의 길 위로 선비가 동 활달한 필력으로 바위와 나무줄기의 특징을 포착하여 함축적으로 묘사함② , 지본수묵담채, 16세기- 간결한 배경과 흑백의 대비, 한국적 정감이 넘침9. 신사임당- 조선 최초, 최고의 여류화가이자 초충도의 대가- 단순한 주제, 간결한 구도, 섬세하고 여성적인 표현, 산뜻하고 아름다운 품격 있는 색채로 한국적인 감각을 표현함- 정확한 관찰에 의한 필치와 단정한 표현- 유교적 사상으로 여성의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사회상황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마당에서 관찰할 수 있는 초충을 즐겨 주제로 제작함① , 지본채색, 16세기 초- 생활 주변의 화훼초충을 관찰하여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묘사함- 품격 있는 색채와 섬세함이 드러남2. 중기(1550-1700)* 특징- 당쟁과 전쟁으로 혼란스런 시기였으며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함(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은둔생활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제작됨- 은둔생활이 산수나 인물, 화조화 등 다양하게 표현됨- 조선 초기에 이룩된 화풍을 계승하면서(안견파), 거칠고 강한 화풍을 받아들여 구사함(절파화풍)- 미법산수화풍 확산: 북송의 미불, 미우인 부자에 의해 창시되고 원대의 고극공 등에 의해 발전된 화풍- 영모화와 화조화에서 한국적 서정적 세계를 표출함: 김식, 조속 등- 묵죽, 묵매, 묵포도 등 활발히 제작됨* 조선 중기 대표 화가1. 김시(=김제)- 조선 중기 16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이자 시, 서에도 능함- 안견파 화풍을 계승하여 자기화한 화풍+절파계 영향 수용한 작품 제작- ‘삼절’의 그림: 최립의 문장, 한호의 글씨와 함께 삼절로 평가- 도화서 벼슬을 지내면서 궁중화원으로도 활동하였으나, 역적으로 몰려 속세를 등짐① , 견본수묵담채, 1548년- 안견파 화풍의 잔영을 잘 보여줌: 왼쪽에 치우친 편파구도, 수면을 다라 펼쳐지는 넓은 공간, 희미하게 비벼져 보이지 않는 필묵법 등→ 안견파와의 차이: 근경과 원경 사이에 산허리나 다리를 배치하여 3단 구도 형성, 주산이 기울어져 있음(절파계)② , 견본수묵채색, 16세기 후반- 절파 가미함
    예체능| 2020.03.21| 14페이지| 1,500원| 조회(354)
    미리보기
  • [통일신라시대 미술] 회화, 조각
    통일신라(7-9세기) 미술 (회화, 조각)* 배경과 특징① 삼국통일의 강력한 왕권: 삼국을 통일한 후 강력한 왕권에 의한 안정된 정치가 문화가 발전하는 토대가 됨-> 8세기에 조각, 건축 등 미술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함② 호국불교의 불교문화 발달- 원효와 의상의 불교사상 등 불교가 귀족들의 통치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됨- 불교문화의 발달로 대승불교에 의한 호국불교가 발달함③ 국제적 교류 확산: 대외적으로 당의 문화를 수용하고 서역, 인도와 같은 불교문화권과의 직간접적인 교류로 국제적이며 독창적인 미술문화가 생성됨④ 골품제에 의한 귀족문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골품제에 의한 귀족체제가 확립되어 귀족문화가 발달*통일 초기의 통치사상원효와 의상의 불교사상원효의 화쟁사상의상의 화엄사상- 대승과 소승의 불교 경전을 결합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확립함- 극락과 지옥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봄- 모든 사물은 현상적으로 차별이 있으나 그 본질은 다 진리를 내포하고 있어서 불법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걸림이 없이 조화되며 서로 통한다고 봄- 모순과 대립을 하나로 묶는 사상으로, 지배층에게 현실적으로 극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 땅이 바로 극락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줌- 신라사회가 바로 불국정토임을 귀족들에게 심어주며 민중들에게는 사회적 차별과 착취를 은폐시킴Ⅰ. 회화/서* 특징- 채색에 의한 사실적 양식화풍 유행: 당과의 교류로 청록산수화와 궁정화가 유행함- 노송도의 솔거, 승려화가 정화와 홍계, 장군 여기화가 김충의 등이 활동-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서로 다른 화풍을 융합하여 발전시킴- 목판인쇄술이 발달함: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본 제작- 전채서를 세워 회화의 수요를 충당함① 무구정광다라니경 (국보 제126호)- 750년경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목판 인쇄본->이전까지 세계 최고 목판인쇄본(770년경)인 일본 를 앞선 것으로 확인- 1966년 석가탑 보수를 위해 해체했을 때 탑신부에 봉안되었던 금동제 사리함에서 발견됨- 죄를 씻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다라니라는 주문을 외우고, 작은 탑을 만들어 그 속에 이 경전을 모셔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중앙박물관 보관② 대방광불화엄경- 통일신라 유일의 서화로 두루마리 형식의 백지 문서- 두루마리 첫 부분에 금, 은니 선화의 보살상과 누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 보상화문 배경의 역동적인 역사도가 그려져 있음③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 8세기 중엽- 생기 있는 필선에 의한 정확한 묘사, 보살들의 부드럽고 유연한 자태의 곡선 표현이 돋보임(금, 은니에 의한 선묘로 양감 암시)- 보살들의 가는 허리와 넓고 부드러운 어깨, 역사상의 울퉁불퉁한 다리근육 등이 8세기 중반의 불상 양식과 공통됨->회화와 불상조각의 동시대 양식 공유를 확인할 수 있음Ⅱ. 조각1. 초기(7세기 후반)- 7세기 중엽의 신라 말 양식이 초당적 양식으로 정리되는 시기-> 중국 조각 양식들(육조 말, 수, 당 초) 혹은 백제 양식이 서로 섞이는 과정을 통해 신라적인 부드러운 개성이 정착되는 7세기 중엽 양식이 초당적 양식으로 정돈됨- 자연주의 표방: 자연스러운 조형성과 날카로운 사실성이 증대되고, 위엄과 당당한 체구가 강조됨- 불상이 아닌 것들로는 석인과 석수, 십이지신상 등이 활발히 제작됨: 괘릉의 문/무인상- 대표작가: 양지(스님)-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소조 불상을 주로 제작함(소조불과 사천왕상 등)- 주요 조각: , , , 등① 녹유 사천왕상전-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 불법을 수호하는 신 중 하나인 사천왕(四天王)을 새긴 벽돌- 사천왕사지에서 나온 벽돌에 부조로 모델링한 후 녹유를 바른 소조(형상을 점토로 만든 틀에 찍은 것)- 마귀를 누르고 앉은 모습을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하면서도 힘차게 표현함(당의 사천왕상을 모방했으나 근육 표현이 더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됨)② 감은사지 사천왕 동상- 감은사지 서쪽 삼층탑에서 발견된 사리함의 4면 바깥에 접착제로 붙인 작은 주조기법 소조상- 사천왕상은 모두 입상으로 허리를 심하게 튼 삼곡자세를 취함- 표정은 분노한 표정으로, 얼굴은 서역인의 모습이며 몸은 정밀하게 표현된 갑옷을 입고 있음- 4구의 사천왕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예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 과 매우 흡사함->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서역인 얼굴, 사실적인 갑옷 표현 등)-동쪽을 지키는 지국천(持國天): 양을 밟고 긴 창을 든 모습-서쪽을 지키는 광목천(廣牧天): 해골이 장식된 창을 든 자세(발 훼손)-남쪽을 지키는 증장천(增長天):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보주를 든 모습(발 훼손)-북쪽을 지키는 다문천(多聞天): 악귀를 밟고 탑을 들고 있는 자세(발 훼손)③ 군위 3존 석불 (경북 군위군)- 암벽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 속에 모신 불상들로, 위엄 있는 표정과 묵직한 양감 표현- 제 2석굴암이라고 부르는 군위석굴 속에 3존의 불상이 모셔짐-> 군위석굴: 석굴사원의 효시로 경주 석굴암의 모태가 됨. 석굴암보다 1세기 이전에 생성-> 석굴암이 인공으로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를 배치한 것에 비하여, 자연석굴을 그대로 이용해 사원으로 꾸밈- 2m가 넘는 본존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등신대의 협시보살이 자리함-> 본존의 항마촉지인(손가락으로 땅을 짚음)은 우리나라 불상들에서 발견되는 최초의 예- 조각수법은 석굴암 본존불보다 떨어지지만,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줌-> 바위에 그대로 새기는 마애불에서 인공석굴을 만들어 부처의 조각상을 앉히는 과정의 중간 형태라는 의의를 가짐- 인도와 중국(특히 수) 석굴 불상의 자세가 드러나며,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 변화가 시작됨④ 의 이수와 귀부- 초당의 영향을 받아 사실적이면서도 강경하며, 섬세하면서도 예리함을 보임- 귀족 사회의 우월적 자부심을 드러냄-> 머리를 힘차게 들고 날카롭고 억센 발을 앞으로 내민 귀부(거북모양의 받침)와 예리함을 잃지 않은 이수(용머리)에서 보이는 당당함은 당시 귀족들의 자부심의 표현2. 중기(8세기)- 신라 조각 양식의 정착과 통일신라 조각의 절정기->본격적으로 중국 조각양식의 영향으로부터의 이탈- 이상미와 자연미의 조화-> 7세기 말의 자연주의 경향을 계승하면서도 서서히 옷 주름이나 체구, 표정 등에서 도식화를 가미해 부처의 정신성을 드러내려고 함-육체의 풍만함과 괴량감, 사실성 등 신체의 표현을 완전하게 습득함-> 석굴암 내부 조각에서 절정을 이룸- 주요 조각: (시초), (절정), , , (퇴화), , ① 황복사 금제 아미타 여래 좌상, 706년/입상, 7세기 후반- 순금제 소형 불상으로 부드럽고 앳된 미소와 옷 주름 형식에서 아직 삼국시대 특징이 보임- 사실적이면서도 도식화된 옷 주름 표현 방식은 8세기 불상의 표본이 됨② 석조 아미타여래입상/석조 미륵보살입상, 719년, 감산사- 통일신라 불상의 정신성 표출: 표정과 넓은 사각형의 얼굴 등의 분위기에서 정신성 표출- 8세기 통일신라 불상의 출발점이 됨: 볼륨 있는 육체 표현 등- 연대가 확실한 불상이며, 대좌와 배 모양 광배를 모두 돌로 조각함③ 석굴암 본존 불상- 통일신라 조각의 절정을 보여주는 내면과 외형의 미를 함께 드러내는 최상의 종교조각- 당당한 체구의 뛰어난 비례미를 드러냄 -> 얼굴:가슴:어깨:다리 = 1:2:3:4-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함- 자연주의와 이상주의의 조화가 돋보임-> 사실적 표현이 바탕이 되면서도 근육 생략하고, 옷 주름 간소화하며, 우아한 표정 표현- 광배의 독립배치에 따른 공간의 깊이 표출-> 석굴암 중앙 공간에서 다소 뒤에 배치되어 광배를 종전처럼 몸체에 붙이지 않고 벽 뒷면에 박아 넣어 공간 제약을 받지 않고 불상을 모든 면에서 볼 수 있게 함- 광배 둘레를 다라 장식된 연화문은 위로 올라갈수록 크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작게 하여 올려다 볼 때의 착시현상을 고려한 균형미가 돋보임- 숭고한 정신미 표출③-1 석굴암 불상군- 불·보살(십일면관음보살, 범천, 제석천, 문수, 보현보살) 및 나한(십대제자), 천부(사천왕, 인왕, 팔부중) 등 모두 40존상- 종교적 숭고미와 뛰어난 조각기술이 예술성의 극치를 이룸- 《삼국유사》 5권에 의하면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774)이 751년에 발원하여 불국사와 함께 건립하였으나, 774년 사후 나라에서 이를 마무리했다는 내용이 있음-> 석굴암 불상군은 8세기 중엽에서 후반까지 약 25년에 걸쳐 조성된 것- 인도, 중국처럼 자연적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닌 여러 개의 판석과 돌을 다듬어 인공적으로 축조- 1910년 일본인이 해체 복원한 것을 1960년대 문화재관리국에서 재복원했으나 원래 전실의 배치구도가 일부 변형됨④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아미타불좌상, 8세기 중엽-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불상 양식-> 얼굴에서 정신미가 감퇴하고 옷 주름의 보편적 표현, 몸의 양감이 줄어들어 백률사 금동여래입상과 함께 후기로 넘어가는 특징 보임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8세기 말-9세기 초- 두 팔이 없는 1.8m 입상- 중기 말엽에 이르러 서서히 약사불상이 유행함-> 당시 통일신라 사회의 흉작과 풍토병으로 인한 민간신앙적 발로- 양감이 결여된 힘 없는 몸과 얼굴, 늘어진 주름, 형식화된 인상⑥ 괘릉 무인상, 8세기 후반-9세기 초
    예체능| 2020.03.21| 6페이지| 1,000원| 조회(253)
    미리보기
  • [조선시대 미술] 조각-금동불상,소조불상,목조불상,목각탱,능묘조각,장승조각
    조선(1392-1910) 미술 (조각)1. 불상 조각* 특징 및 배경① 토착화와 민간신앙화- 고려시대 불상 전통 계승하나 서서히 민간신앙과 만나 토착적인 성격 강해짐→ 개인의 행복이나 내세를 위한 작은 불상 제작이 성행함- 인간적인 불상 조각의 발전: 표정은 자비롭고 대중 친화적인 인간적인 모습을 취함② 숭유억불로 조형 퇴화- ‘숭유억불’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불교조각의 유입이 줄어들면서 불교조각이 전반적으로 쇠퇴하는 경향- 그러나 오랜 전통으로 왕실과 비빈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교 성행했으며, 세조·명종·문정왕후 등 왕실의 후원을 받아 사찰·불상·탑 등이 조성되기도 함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한 승려들의 활약으로 불교에 대한 지배층의 인식이 호의적으로 변함→일시적으로 불사(佛事)가 활발해짐→ 조각승들이 활동하면서 일정한 형식을 갖춘 불상양식이 성립되었으며, 조성연대를 알려주는 명문이 있거나 복장물이 발견된 불상이 남아 있음- 인체 파악의 부실과 표현 기술의 미숙함이 드러남- 대체로 가슴을 핀 당당함보다는 등이 굽고 약간 앞으로 숙인 듯한 모습을 취함- 의습은 단순화되고 보관은 장식성이 강해지고 번잡해짐→ 불심보다는 형태의 형식적 구현에 치중함으로써 허세적 표현이 강세를 드러냄→ 불상의 형식화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심해짐③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됨- 후기에는 중국 명나라 불상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3-5m에 이르는 대형 소조 불상과 중형 목조 불상들이 조성되며, 나무판에 조각한 목각탱 등장1) 금동 불상① , 16세기, 102cm, 보물 제 514호, 경북 영천- 조선 전기의 대표작으로, 조선 불상양식의 특성을 잘 드러냄→ 몸에 비하여 머리가 크고, 등이 굽고 머리가 앞으로 약간 나와 있음→ 상체에 비해 하체가 빈약하고 마르며, 복잡한 장신구가 돋보이고 보관이 화려해짐: 라마교 영향- 얼굴 면적에 비해 작은 입, 밑으로 내리뜬 가늘고 긴 눈, 두툼한 볼, 자비롭고 평화로운 표정- 16세기 조선화 형식을 잘 드러내며,오층석탑에서 발견됨→ 총 25점의 금동불상군이 나왔으며, 발원문 내용에 따라 각각 15세기, 17세기 조성된 불상으로 나누어짐- 1층 탑신에서 발견됨→ 밑바닥 명문에 의하면, 1459년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가 조성하여 시주한 것을 1493년 성종의 후궁들이 왕과 왕자, 왕녀들을 위한 발원문을 탑 안에 안치할 때 함께 봉안하였던 것 (명빈 김씨는 의 복장기에도 나오고 있어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왕실의 비빈임을 알 수 있음)-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반가상과 지장보살이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나, 삼존불의 크기나 특징에 차이가 있어 원래 한 짝으로 조성된 것은 아님- 본존불의 침울한 얼굴 표정, 2개의 계주 장식, 몸에 비해 머리가 큰 신체 비례, 수평으로 입은 내의와 띠 매듭 등 : 조선시대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들③ , 1628년, 높이 10cm, 국립중앙박물관- 수종사 석탑의 1층 옥개석과 기단 중대석에서 발견됨- 17세기 전반에 왕실에서 발원하여 조성된 것→ 1628년에 인목대비 김씨가 발원하여 조성했다는 명문이 불상 대좌 밑바닥에 새겨져 있음- 고개를 약간 숙이고 움츠린 자세- 네모난 얼굴에 상체가 크고 유난히 다리가 빈약하게 처리되어 불안정한 신체 비례를 보여줌- 머리에 표현된 2개의 계주와 간략한 옷주름 처리: 조선 후기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시대 양식2) 소조 불상① , 16세기, 보물 958호, 경북 경주- 현존하는 소조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예 (1562년 중수되었다는 복장물이 발견됨)-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여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불이 배치된 삼신불 형식→ 세 불상 모두 높이 3m가 넘는 대형 불상으로, 손의 형태만 다를 뿐 크기나 얼굴 표현, 신체 비례, 법의의 착의법 등에서 거의 유사- 육계는 높고 큰 편이며, 머리와 다리에 비해 상반신이 장대하여 전반적으로 신체 비례가 잘 맞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이나 수평으로 입은 내의의 주름 표현, 두 다리 사이로 무겁게 늘어진 옷 주름 등: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 비로자나불의 복에 따르면 1626년 현진을 비롯한 승려 17명이 조성- 높이 5m의 거대 불상- 각이 진 네모난 얼굴에 무표정한 모습, 수평으로 입은 내의의 주름진 형식, 오른족 어깨에 걸친 옷자락이 가름까지 늘어지게 처리된 점 등: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③ , 1633년, 보물 제1565호, 충남 부여- 현진, 연묵, 회묵 등의 승려가 1633년 조성한 불상-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배치된 삼세불좌상- 5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와 불상의 형식에서 과 양식적으로 유사④ , 1641년, 본존 550cm, 좌우 불상 520cm, 보물 1274호, 전북 완주- 석가불을 중심으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협시로 배치한 것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삼세불 형식- 높이 5m가 넘는 대형 불상- 발원문에 의하면, 1641년 중국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빠른 환국을 기원하기 위해 각성(覺性) 외 승려 300명이 발원하여 조성하였다고 함-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그릇을 쥐고 있는 약사불, 오른쪽에는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는 아미타불이 배치된 삼세불 형식3) 목조 불상① , 1458년, 72cm, 국보 282호, 경북 영풍- 조선 왕실(불교를 숭상한 세조)에서 발원해 조성한 것으로, 원래는 법천사 아미타삼존불상의 본존불이었으나 후에 이곳으로 옮겨짐- 얼굴과 신체 비례, 옷주름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조선 초기의 불상→ 상반신이 유난히 길게 표현된 모습, 수평으로 입은 내의, 단순한 옷주름 표현- 불상 머리 위의 육계 위에 표현된 2개의 계주는 중국 원대 티베트 불교에 영향을 받은 것→ 고려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불상에서 많이 나타남- 오른쪽 어깨 위에 내려와 접혀진 옷자락, 넓게 주름잡힌 왼쪽 어깨 위 옷주름 표현은 명대 불상에서 비롯됨- 1992년 개금 불사를 할 때, 불상 1구와 전적 7종 14점, 직물 38점 등 많은 복장물이 나왔음→ 복장물에 의해 태조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없어진 상태② , 1466년, 98cm, 국보 221호, 강원 평창- 세조의 흥불정책에 의해 삼국, 고려 때 성행했던 문수신앙이 다시 발현하게 되면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발원하여 조성한 것- 조선 세조의 설화와 관련 있는 불상으로 유명-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은 어린 동자의 모습으로 표현됨- 통통한 얼굴, 비교적 균형이 맞지 않고 양감 있는 신체와 옷 주름 표현→ 조선 전기 불상 중 우수한 조형미를 보여줌③ , 1635년, 전남 영광군- 1635년 무염, 승일, 도우 등의 조각승이 조성한 목조 불상→ 무염이 조성한 불상: (1651), (1652), (1652), (1654) 등- 석가불, 아미타불, 약사불로 구성된 삼세불상- 크기가 작은 편으로, 몸에 걸친 법의의 주름이 굵고 간략하게 처리되고 수평으로 입은 내의가 단순해짐④ , 1636년, 비로자나불 280cm, 석가불 264.5cm, 노사나불 264.5cm, 보물 1548호, 전남 구례- 17세기에 조성된 삼신불상4) 목각탱- 목각탱: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나무판을 잇대어 붙인 후 조각한 불상- 주로 사찰의 중심 전각에 모셔진 불상의 뒷벽에 걸어두는 것으로, 목각불탱이라고도 함- 조선 후기 17세기에 들어서 법당 본존불 뒷벽에 대형 후불탱화 대신 목각탱화로 전환되어 등장함→ 평면적인 후불탱화를 나무 조각으로 입체화하여 더욱 장엄함→ 목각탱은 중국,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 불교조각의 특징- 조선 후기의 목각탱은 대부분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보살, 나한, 신장상, 비천 등을 배치하여 아미타불의 정토세계를 나타내고 있음→ 이는 당시 《아미타경》, 《무량수경》에 의한 극락정토의 아미타신앙이 유행했음을 의미- 현존하는 목각탱은 6점 중 4점 경상북도에 집중되어 있음① , 1684년, 261x215cm, 보물 989호, 경북 예천- 현존하는 목각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예- 5개의 나무판을 붙인 형태-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팔대보살(중단과 끝단), 아난과 가섭(상단 좌우 끝), 사천왕상(아래 끝단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특징을 보여줌- 조선 후기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아미타목각탱이 유행했음→ , 1694년, 경북 상주/, 1782년, 전남 남원 에서도 아미타불상을 본존으로 하고 있음->당시 아미타신앙이 유행하였음을 반영하는 시대적 특징 중 하나② , 1782년, 전남 남원- 한 장의 나무에 조각한 보기 드문 예- 아미타불상을 본존으로 하고 있음- 2단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도, 부드러우면서 입체적인 조각기법->조선 후기 목각탱의 대표작2. 일반 조각1) 능묘 조각- 능묘 앞의 석상류가 제작됨: 문무인의 석인상, 석호상, 석양상 등- 조선시대 왕릉은 국가 통치이념인 유교에 근거하여 능묘의 크기나 문인석, 무인석의 수, 석수의 종류, 묘비를 비롯한 장명등, 망주석과 같은 석물의 규모와 배치가 정해져 있었음(《경국대전》, 《국조오례의》, 《산릉도감의궤》에 의거하여 조성됨)→ 신라 왕릉이 절대왕권 과시를 위해 크게 만들어 진 것과 달리 조선시대 왕릉은 유교적 위민사상에 따라 규모가 크지 않음. 석수는 왕릉 호석의 십이지상이나 석호, 석양, 석마를 각 2쌍씩 배치.- 특히 문무인석과 같은 석인상은 8세기 중엽 남북국 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불교조각과는 다른 의례용 조각의 특징을 보여주며 당시 시대상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나 대체로 신체 균형이 상실되고 옷 주름이 형식화되며 머리가 크거나 딱딱한 자세를 보임① , 15세기 중반, 144cm, 경기도 파주- 세종대의 재상이었던 황희묘의 석인상- 조선 전기에 조성된 석물 배치의 원형이 잘 남아 있음→ 일반적인 석인 배치와는 달리 무인석이 상단에, 문인석이 하단에 배치되었으며 무인과 문인의 도상도 특이② , 16세기 전반, 86.7cm, 경기도 양주- 중종대의 문인이었던 최명창묘의 동자상- 머리를 약간 돌린 채 두 손에 연꽃을 쥐고 서 있는 모습- 어린아이처럼 머리카락을 묶어 틀어올린 쌍계 모양을 하고, 얼굴 표정과 옷자락 등 세부에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조각 솜씨를 보임③ , 15세기 전반, 것
    예체능| 2020.03.21| 5페이지| 1,000원| 조회(142)
    미리보기
  • [고려시대 미술] 회화, 불교회화
    고려(918-1392) 미술 (회화)* 고려의 배경 및 특징- 12세기 후반 무신정권 성립과 13세기 초 몽고의 침입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사회 구분· 전기: 후삼국 통일 이후 지방에 산재한 몰락 귀족 및 지방호족들의 인심을 사기 위한 체제 강화->선종의 채택, 문벌 귀족들에 의한 봉건체제· 후기: 무신 집권에 의한 기존의 귀족정치 규제 철폐, 농민‘노비 등 민란으로 인한 사회·문화적 변화가 시작됨- 14세기 중엽 이후 공민왕에 의해 반원운동이 일어남->14세기 중엽 중국의 반원운동과 시류를 같이함(친원파에 대립한 친명파인 이성계와 관련 관료들이 토지개혁을 하며 고려 말 40여년간 왜구토벌하며 이성계 전면에 등장, 조선 건국으로 이어짐)- 수도 개성을 중심으로 하여 중앙과 지방, 상층과 하층, 분야 간에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며 문화가 발전함->귀족들을 위한 불교회화나 청자류가 제작되면서도 서민을 위한 미륵불상 성행 등 계층간 문화 차이가 뚜렷해짐- 주변 북방 오랑캐국(요-거란, 금-여진)의 침범, 압력으로 인해 선진 한족문화인 송의 문화를 더욱 받아들이고 의존하게 됨- 전반적으로 귀족 취향의 불교문화와 호국 불교적 성격이 짙어짐Ⅰ. 회화* 특징- 이전의 실용적 목적+순수 감상을 위한 목적으로 회화가 제작되기 시작하고 유통됨->화원 및 귀족들과 승려들도 감상화의 제작에 참여함- 화원: ‘도화원’에서 왕실회화 제작, 관리 (최고의 화원: 를 그린 ‘이녕(李寧)’- 중국 화풍 다양하게 수용->북송의 이곽파, 남송의 원체화풍 등 다양한 화풍을 수용하여 독자적으로 발전시킴- 영역의 다양화->인물화·산수화·영모화·화조화·문인 취향의 여기그림 등 제재가 다양해짐- 불교회화가 발달1. 일반 회화① 이녕, , 1124년 (현존X)- 이녕: 12세기의 화원화가, 북송으로 유학 가 중국의 서화가 휘종(徽宗)으로부터 극찬을 받음(이녕이 고려의 명으로 그린 를 휘종이 보고 감탄하여 “근래에 고려에서 따라온 화공이 많으나 이녕이 제일이다”라고 칭찬함)- 실경산수화인 는 휘종 요청에얼굴에 연한 붉은 색을 가하여 피부색을 표현하였고, 의습에서는 철선묘를 사용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 표현- 그림 위쪽에 아들 안우기의 찬문이 실려 있음③ 이제현, , 14세기,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시대 산수인물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14세기 고려 인물산수화의 양식을 이해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 호복(胡服) 차림의 다섯 사람이 말을 타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광경을 그린 것- 얼어붙은 강을 건너 사냥을 떠나는 기마 인물들과 산수 배치로 시원한 공간감이 드러남- 온화하고 부드러운 화풍이며, 인물에 비해 간결한 배경 표현이 두드러님-가늘고 여린 필선과 모호한 언덕묘사 등 여기 화가의 솜씨가 드러남- 중국의 다양한 화풍 영향을 드러내면서도 한국적 특징을 보여줌· 남송 산수화의 영향: 우측 상단에 편중된 산, 굴절된 소나무의 형태· 원대 회화의 영향: 호복을 입은 인물의 묘사와 주제· 한국적 특징: 좌측 중앙의 눈 덮인 소나무 모티브 활용, 짜임새 있는 구도와 공간 구성법④ 공민왕, , 14세기, 비단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시원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채색화로, 원대 북종화와 송나라 화풍의 영향을 받음- 산수를 배경으로 말을 탄 수렵장면 묘사->그림이 조각나 원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힘차게 달리난 기마인물의 모습이 섬세하면서도 기운찬 필치로 묘사됨. 본래 큰 그림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임- 조선 선조의 손자이자 서화와 금석문에 조예가 깊었던 ‘이우’(17세기)의 소장품으로 추정되며, 그가 죽자 애호가들이 나누어 가졌다는 설이 있음⑤ 작자 미상, , 고려 후기, 벽화- 거창 둔마리 고분에서 발견된 고려의 대표적인 고분벽화이며, 프레스코로 제작됨- 고려시대 지방문화의 토속성과 소박성을 반영한 소탈한 형태가 돋보임(그러나 인물의 두발 형태, 복식 등이 원대에 조성된 산서성 순양전 감실벽화에 등장하는 주악천녀상과 유사한 점을 들어 원의 도교 영향을 받았다는 학설도 있음)-풍만한 인체를 통한 생동감 있는 표현이 두드러짐-거창 둔마리 고분: 고사용: 상단에 주존 크게 배치, 하단에 제존(동자승)을 작게 배치- 승려화가: 노영, 한생, 귀일 학선, 석행, 혜근, 지암, 석풍 등 활동(노영의 작품만 전해짐)* 고려불화의 의의- 13세기 후반과 14세기에 화려하고 정교한 묘사력의 , , 등이 그려지며 한국 역사상 불교 회화가 가장 크게 발전함- 다양한 색채를 사용해서 그리면서도 색상이 튀지 않고 은은하고 중후함* 고려불화의 배경- 건국 초기에 교종과 선종이 양립하며 분열과 대립의 양상을 보였으나, 11세기에 의천대사가 교선일치의 천태종을 열고, 무신정권 이후엔 선종 중심의 조계종이 확립되는 등 혁신이 이루어짐- 선종의 발달은 불화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됨* 고려불화의 구도- 이단구도: 화면을 상하 이등분했을 때 위쪽에 여래, 아래쪽에 권속 배치-> 특히 설법도 형식의 불화에서 두드러짐-> 고려시대 귀족과 일반민중이라는 계층의 수직적 관계를 대입하여 사회사적으로 해석하기도 함- 화면 비율은 세로 대 가로의 비율이 2:1이 주류이며, 길이 2m 전후* 고려불화의 재료 및 채색- 바탕 재료는 주로 비단이 사용되었으며, 대부분 50-90cm 전후의 화폭을 사용- 인물 채색은 주로 주색, 군청, 녹청, 백색 안료 등을 사용하고, 부수적으로 주구, 백군, 백록, 황토 등이 가미됨- 장식문양에는 금니를 적극 활용하여 장식성을 극대화- 배경에는 적갈색계 혹은 갈색계의 어두운 색을 탁하지 않게 바림하여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냄- 군의와 대의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복견의는 녹청색을 칠해 보색대비 효과를 내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연출- 불보살상을 에워싼 광배의 표현은 금선으로 윤곽을 두르고, 윤곽선 안쪽에 바림하여 음영효과를 줌->빛으로 감싸인 성신(聖身)과 바깥이 은은하게 구분되어 영적인 기운이 표출되는 분위기를 연출함[고려 전기]- 고려 전기는 현존하는 채색불화의 사례가 없기 때문에 경전의 변상도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음- 대표작품: , , ① , 고려 1006년, 감지에 금니, 29.2x45.2cm, 일본 )을 장식하여 화사함을 더함- 보살상은 철선묘를 사용해 양감과 탄력을 표현하고, 화면에 여백을 두어 여유 있는 분위기② , 『어제비장전』 권6 제2도, 고려 11세기, 22.7x52.6cm, 성암고서박물관- 『어제비장전』은 북송 태종(재위 976-997)대에 간행된 경전이며, 고려에서 다시 간행함- 보리도량(菩提道場)을 표현: 산수를 배경으로 불법을 설교하고 수행- 옆으로 긴 화면에 묘사된 여러 면의 변상판화로 이루어짐(인물이 암자에서 수행하거나 문답하는 장면, 길을 떠나는 승려의 모습, 일하는 속인들의 모습 등을 담음)-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부드럽게 장면이 이어지는 형식은 경전 설화를 연상시킴- 북송에서 간행된 경전을 모본으로 했지만 판화의 구도와 등장인물의 배경 등에 차이가 있어 고려식으로 재해석하였음을 알 수 있음- 오대말 북송초의 산수화풍을 드러냄 -> 산의 형태나 세형침수(細形針樹), 산의 표면에 사용된 우점준(雨點?)과 치형돌기(齒形突起), 자연은 웅장하고 인물은 작게 나타내며 대관(大觀)산수적 표현이 돋보이며, 삼원법을 활용함[고려 후기]- 종교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기로, 현존하는 불화가 160점 이상이며, 제작시기는 13세기 후기에서 14세기에 집중되어 나타남 (특히 14세기에 현존하는 고려 불화의 90%가 집중 제작됨)- 예배용으로 제작된 걸개그림 형식의 본격적인 불화- 도상은 아미타여래, 수월관음, 지장보살 등이 주류를 이루며, 관경변상, 미륵하생경변상, 비로자나, 석가, 약사, 나한 등도 제작됨* 아미타여래도: 고려 불화 중 가장 많이 그려진 도상(약 60여 점이 전해짐)- 아미타팔대보살도: 서방정토(西方淨土) 세계의 주존을 상징적으로 표현- 아미타정토변상: 화려한 극락정토(極樂淨土) 세계를 표현- 아미타내영도: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한 중생이 죽으면 아미타불이 여러 보살들과 서방극락으로 왕생자를 맞이하러 가는 장면① , 고려 1286년, 비단에 채색, 203.5x105cm, 일본은행/, 고려 13세기, 비단에 채색, 175.9x87.1c 색, 110x51cm, 국보 218호, 삼성미술관 리움- 인물의 비중에 따라 크기의 차별을 둠(주대종소)-> 주불인 아미타불이 우측에 크게 배치되고, 앞의 관음보살과 후면의 지방보살은 작게- 주불: 풍만한 얼굴, 근엄한 표정, 볼륨감 넘치는 후덕한 모습으로 부처의 위덕을 보여줌지장보살/관음보살: 각각 앳된 모습과 자비로운 모습으로 내영자를 맞이함- 섬세한 묘사와 화려한 문양, 절제된 선, 강렬한 색 대비 등 뛰어난 조형성을 드러냄④ 노영, , 고려 1307년, 흑칠 위에 금니, 22.4x10.1cm, 국립중앙박물관- 소규모 병풍이며, 피부가 드러난 신체 부위에 금니를 바르고 나머지는 금선묘로 처리- 앞면에 , 뒷면에 를 그리고, 전체 테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금강저(金剛杵)를 배치하여 당시의 금니사경화를 연상시킴④-1 노영, , 고려 1307년, 흑칠 위에 금니, 22.4x10.1cm, 국립중앙박물관- 14세기의 산수 배경의 보살도이며, 가장 오래된 금강산 실경산수화라는 가치가 있음- 상하 2단 구성· 상단: 태조가 금강산 입구 고개 위에서 보살을 만나 예배한 전설을 그림· 하단: 바위에 보주를 들고 앉은 지장보살이 그려짐- 북송산수화의 영향: 구름 위로 우뚝 솟은 험준한 산의 봉우리 표현, 붓을 잇대어 산의 윤곽선을 표현하는 방식, 바늘형 나무 표현과 침식으로 인한 돌기 등. 북송대 화가 허도녕(11세기 전반)이나 곽희(11세기) 화풍 표출- 우측 하단에 ‘노영’이라는 글자 옆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인물로 노영 자신 표현- ‘행운유수묘’와 ‘정두서미묘’ 사용: 구름을 표현한 부드러운 곡선과 지장보살의 의습에 반복되는 주름의 우아하고 유려한 선(행운유수묘), 의습주름이 시작되는 부분은 못 머리 모양,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진 선이 쥐의 꼬리와 같은 선이 쥐의 꼬리와 같은 선(정두서미묘)* 수월관음도: 해변의 암굴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담은 그림⑤ , 고려 1310년, 비단에 채색, 419.5x254.2cm, 일본 경신사- 화면 하단에 줌
    예체능| 2020.03.21| 7페이지| 1,000원| 조회(245)
    미리보기
  • [고려시대 미술] 조각-철불, 대형석불
    고려 미술 (조각-철불, 대형석불)* 특징- 지역성과 토착적 조형미를 반영한 불상이 전역으로 제작됨-> 강릉을 중심으로 남북국시대 불상 양식이 계승되었으며, 충청도에서는 개성적이고 큰 석불들이, 충주를 중심으로는 인상이 강하고 독특한 모습의 철불좌상이 조성됨- 각 지역에 선종 사찰 건립 및 지방 호족들의 후원으로 불교 조각도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 조각술에 있어 신라보다 수준이 떨어짐 (신라의 조형성과 이상성이 후퇴하며,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환됨)- 13세기 몽고의 침입을 기준으로 전/후기로 나뉨① 전기(13세기 이전) - 통일신라 전통을 이음, 자연주의적 경향이 강세② 후기(13세기 이후) - 송, 원의 영향 하에 고려 왕실을 중심으로 장식적이고 화려한 라마계 불상이 조성됨① , 고려 1346년, 높이 69cm, 충남 서산- 대좌와 광배 모두 잃어버렸지만 불상의 복장에 의해 1326년의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 후기의 아미타불상- 과 같은 해 조성된 것으로, 두 불상 모두 온화하고 정돈된 조형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남북국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것② , 930년경, 크기 82cm,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우리나라 초상 조각의 걸작 (중국, 일본 등에 비하여 초상 조각이 적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 조각- 사실주의적 표현을 바탕으로 스님의 내면적 정신성 표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스님의 있는 그대로를 형상화하여 외형적 사실성과 정신적 세계관을 표출함 (다소 큰 머리, 긴 얼굴과 이마의 깊은 주름살, 자비로운 눈매, 우뚝 선 콧날, 입가의 미소로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 표현. 여윈 몸에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침.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하여 스님의 위용과 인간미를 표현함)- 제작기법: 앞쪽은 건칠기법, 뒤쪽은 나무로 제작 (나무를 몇 토막 조각한 뒤 전체를 이어 붙이고, 고운 삼베를 바르고 칠을 한 후 법의의 문양을 그려 거의 실물에 가깝게 제작함)* 개인 휴대용 불감(佛龕)- 개인의 행복이나 내세를 위한 것- 불감: 불상을 봉안하는 전각(殿閣) 형태의 감실- 불감은 불상을 보호하고 장엄화 하는 전각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크기는 작지만 독립된 형태로 지붕과 치미, 공포 등에서 당시 목조 건축 양식을 보여줌- 내부 뒷면에는 후불탱화(불상 뒤에 모셔두는 불화) 대신에 불·보살상들이 부조+여닫이문 양쪽에는 인왕상 배치+천장에는 건축의장을 따른 보개와 칠보무늬, 능화무늬, 연꽃무늬 등이 화려하게 장식- 전각형 불감은 중국 운강, 용문 석굴사원의 목조 전각형 벽감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 대표작: 간송미술관 소장 금동 불감, 천은사 금동 불감, 미국 하버드대학 포그미술관 소장 금동 불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 불감 2점, 경기도 남양주시 수종사 오층석탑 금동 불감 등 6점(조선 초기 제작된 수종사 금동 불감 1점 외에 모두 고려시대 제작 작품)- 고려시대 불감은 모두 금동으로 만들어진 전각 형태+내부에 따로 만든 불상을 봉안하고 후벽에는 여러 불·보살들의 군상 부조③ , 고려, 높이 불감 18cm, 본존 10cm, 좌보살 8.1cm, 우보살 7.7cm, 국보 73호, 간송미술관- 전각 형태의 작은 불감- 내부는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서 있는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음* 철조 불상의 일시적인 유행- 9세기경 남북국 후기~고려 초기에 철조 불상이 유행함- 철불 유행 배경: 남북국 후기에 진골 귀족들 간의 반란으로 불ㅇ나정한 상태에서 점차 지방 호족의 힘이 강해지면서 세력 충동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 요인. 구리가 무기 재료로 사용되면서 이를 대신하여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철로 불상을 조성하게 된 것- 개성, 원주, 광주, 충주 등지에 남아있음④ , 고려 10세기, 높이 288cm, 보물 332호,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 광주 춘궁리의 절터에서 발견하여 ‘광주 철불’이라 불림- 위엄 있는 얼굴 표정, 안정된 신체 비례, 사실적인 옷주름 표현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충실히 따른 고려 초기의 불상(얼굴 표정, 수상 자세, 편단우견, 옷 주름 등)⑤ , 고려 12세기, 높이 98cm, 보물 98호, 충북 충주- 대원사에 안치된 불상- 강한 인상과 좌우대칭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과 매우 유사->같은 장인이 만들었던 작품으로 추정- 고려 초 철불의 옷주름 처리에서 보이는 도식화의 절정을 보임->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좌우대칭을 지키며, 기하학적 옷주름 선을 규칙적으로 표현- 원주, 충주지역은 일찍부터 당나라에 건너갔던 신라 견당사(遣唐使)들이 돌아올 때 주로 이용했던 길+군사 요충지+대외 문화교류 및 교통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왔던 곳->지방 호족들의 후원으로 불상 활발히 조성됨* 거불의 조성- 고려 초기 개성, 충청도지역에서 거대한 석조 불상이 집중 조성됨- 대체로 크기만 강조할 뿐 신체 비례가 맞지 않고 형태와 세부 표현도 단순, 간략하여 전반적으로 조형감이 떨어짐- 불상의 거대한 크기로 초인적인 존재를 암시하여 중생들에게 종교적인 위엄과 위압감을 줌- ‘왕이 곧 부처’라는 사상에 따라 조성됨⑥ , 고려 940년경, 높이 본존 451cm, 좌우보살 372cm, 보물 219호, 충남 논산- 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이 황산벌에서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936년 건립, 940년 완공된 사찰- 은 절의 건립과 함께 조성되었으며, 고려 초기 불상에 해당- 크기, 형태, 특징에서 이전 불상과는 다른 새로운 요소가 나타남-> 머리에 투구를 쓴 듯한 모습, 굴곡이 전혀 없는 돌기둥ㄹ 같은 몸체, 유난히 크고 뭉툭하게 표현된 손발, 생략된 세부 표현 등- 본존불의 왼쪽 협시보살상 머리 부분은 1988년 법당을 개축할 때 발견된 것으로, 현재 몸체와 연결되어 원래의 모습을 갖춤- 괴량감 있고 단순화된 형태감은 충청도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불상에 나타나는 지역적 특색⑦ , 고려 10세기, 높이 18m, 보물 218호, 충남 논산
    예체능| 2020.03.21| 4페이지| 1,000원| 조회(174)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4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24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