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화장한 채 채찍, 또는 짧은 치마와 같은 감독 의도적인 섹슈얼한 요소를 그들 영웅 모습의 일환으로 부각시킨 채 섹슈얼한 이미지를 하나의 캐치 프레이즈처럼 활용하며 영화에 등장하고는 하였다. 반면 캣니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캣니스가 피터와 함께 12구역의 추첨자로 캐피탈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말이 끄는 수레를 탄 캣니스의 모습은 섹슈얼한 기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것들을 알게 되면, 하늘 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 레프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위의 문단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대사로, 천사 미하일이 하느님의 뜻을 어겨 인간 세계로 추락할 때 신에게서부터 듣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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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에 의하면, 인간이 인식하고 있는 정신적 영역은 의식이며, 그 뿌리에 자리하는 이정표는 자아다. 여기서의 자아는 프로이트에 비해 보다 주체적인 개념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자아는 특수한 콤플렉스의 일종인데, 융에 따르면 콤플렉스는 무의식의 핵심 요소다. 이는 프로이트의 억압당한 원초아와도 비슷하나, 성적이거나 1차적인 충동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충격적 경험은 무의식에서 하나의 핵이 되고, 그 핵을 중심으로 형태가 결합될 때 콤플렉스가 된다. 또는 천성적으로 지닌 핵의 발달이 콤플렉스가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프로이트의 히스테리는 열성劣性에 가까운 어조를 드러내는 반면 융은 콤플렉스를 부정적으로만 다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융은 콤플렉스와 대면한 인간의 파괴와 재생, 그로 인한 자아의 강화와 실현에도 주목한다. 또한 프로이트가 설명하는 무의식은 어딘가 고통스러운 야수가 도사리고 있다면, 융은 도리어 그 야수를 길들이거나 타고 오른 채 전인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는 듯하다. 물론 그에는 깊은 탐구가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기에, 융은 두 번째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콤플렉스를 처음부터 전부 의식의 영역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집단의 영향으로부터 전혀 영향받지 않는 것 역시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쯤 짚다 보면 융이 왜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융이 무의식을 창의력의 창고라고 말했듯이, 인간의 내부에는 활용할 수 있는 내적 자원이 존재한다. 그런 가능성을 프로이트는 크게 재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융이 다루는 성격이론에서도 억압에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 희랍, 라틴 고전을 표방
- 희랍과 라틴 고전을 모델로 삼았다.
- 알렉산더 포프로 대변되는 시기 동안 고전주의가 절정 상태에 도달.
- 전통주의: 버질, 호라티우스 같은 로마 작가들을 문학적 이상으로 삼았다.
- 형식주의: 희랍과 라틴의 대표적인 고전들을 모델로 삼았다.
- 모델의 완벽한 형식성을 자신들의 작품에 준용하고자 노력.
- 형식과 규칙을 중요시.
(2) 적정율(decorum)
- 고전주의자들: 문학은 기술(art)이다. (일종의 skill. Talent가 아니다.)
- 문학: (X) 천재적 창의성의 소산 (e.g/ 셰익스피어)
(O) 정리된 엄격한 규칙들을 오랜 수련을 통해 연마, 적용하는 것
→ 이상적인 정립된 규칙들: 적정율(decorum)
- 적정율의 예시:
서사시, 비극: 고상한 언어, 기품 있는 시어, 장려함을 살리는 운율 사용
희극: 저급한 문체, 화려한 수사와 장식이 없는 자연스럽고 평이한 언어 사용
(1) 콘텐츠(주제) 및 선정 동기
문화교양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답습하는 여러 사회적 양상에 대해 고찰하는 중요한 과목 분야 중 하나이다. 우리는 문화교양을 통하여 사람이 ‘사람 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흔히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듯,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정의는 ‘동물의 일원이지만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1’이라면, 사람의 정의는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2’이다. 인간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문화와 교양을 배운다. 그런 이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이제야 좀 사람 답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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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강사를 초빙하는 등 다양한 활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이론적인 부분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이론을 쌓고, 단순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주제들을 여러 방법들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삶과 사회에 대한 계획을 실천하는 형태로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자기계발과 학습을 고루 균형 맞추어 이룩해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시로는 한양대학교의 ‘상상과 창조’라는 교양 과목을 들 수 있다. ‘상상력’, ‘창의력’, ‘21세기 사회 변화’ 등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이 과목의 성격은 강의의 설명에서부터 드러난다. ‘상상력의 한계가 곧 인류의 한계다!’. 이 과목은 지식보다는 인간의 상상력에 집중한다는 면에서 다른 과목에서는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운 상상력에 그 무게 중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상과 창조’에서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틀을 구축할 수 있는 힘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예시들을 통해, 창작과 디자인이라는 콘텐츠가 문화교양 방면에서 어떤 식으로 다루어져 왔고 실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람은 파란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어떤 인종이나 혼혈에서도 사람의 피부 색이 청색인 경우는 없으며, 모든 사람의 피부 색은 멜라닌 색소의 영향 아래 황색과 갈색이 희고 어두운 정도를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영화 <Moonlight> 속의 마약거래상 후안에게 어떤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가? “달빛 속에서 흑인 아이들은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블루.” 달빛(moonlight)은 영화의 제목인 만큼 분명 작중에서도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흑인들을 푸르게 변모시킬 수 있는 달빛은 주인공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며, 결론적으로 어떠한 주제를 담고 있는가?
이 보고서는 위의 의문점을 기반으로 영화 Moonlight의 주제 의식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또 결론내려 보고자 함에 그 목적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