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모습을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수업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 시기를 하나의 흐름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조선은 점점 약해졌고, 결국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교과서에 정리된 사건들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외우는 데 집중했 지, 그 안에서 실제로 어떤 고민과 선택이 있었는지까지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았던 건 갑신정변이었다. ‘3일 천하’라는 말이 강하게 남았 고, 자연스럽게 김옥균이라는 이름도 그 이미지와 함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본의 도움을 받아 정변을 일으켰다면, 이 인물 은 결국 친일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 고, 그냥 그렇게 이해한 채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이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특히 ‘왜 나는 그렇 게 단순하게 이해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하나씩 찾아 읽어보면서 느낀 건, 이 시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었다. 겉으로는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고, 외부에서는 일본과 청, 서구 열강이 빠르게 질서를 바꾸고 있었다. 조선은 그 사이에서 점점 선택의 폭을 잃어가고 있 었고, 어떤 선택을 하든 부담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런 조건을 다시 떠올 려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단순히 ‘결과가 실패했으니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 말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 평가일까. 그리고 내가 예전에 가졌던 ‘친일적인 선택’이라는 판단 역시 너무 단순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단순히 한 인물을 평가하는 데서 멈추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인식을 다시 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해보려 한다.
2. 다음 중 아이티 크레올어의 형성과 의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프랑스어 문법과 아프리카계 어휘가 결합해 만들어진 언어이다.
2) 프랑스어 기반 어휘와 아프리카계 언어 등의 영향이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3) 피진 단계 없이 바로 모국어로 발전한 독립 언이이다.
4) 처음부터 프랑스 정부가 공식 언어로 지정한 표준 프랑스어의 변종이다.
3. 다음 중 퀘백이 프랑스어 정체성을 유지하게 된 배경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1) 퀘백 원주민 언어가 프랑스어와 같은 언어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 프랑스 식민지에서 영국령으로 바뀌는 역사적 변화 속에서도 프랑스어와 프랑스계 문화 전통을 지켜 왔기 때문이다.
3) 영국 탐험가가 처음 퀘백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4) 프랑스어가 20세기 이후 퀘백에 새롭게 들어온 언어이기 때문이다.
1. 다음 중 누벨 아키텐(Nouvelle-Aquitaine) 지역의 특징으로 옳은 것은?
1) 에비앙과 페리에 등 생수 브랜드가 이 지역의 발명품이다.
2) 프랑스 북부 공업지대로 와인 산업과는 관련이 없다.
3) 철학자 몽테뉴의 "Que sais-je?" 사상을 통해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강조했다.
4) 미테랑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위해 건설한 지역이다.
5) 중세 이후 프랑스 혁
2. 프랑스 개신교도 위그노(Huguenots)의 해외 이주가 남긴 가장 중요한 문화적 영향은?
1) 위그노 교리의 국가종교화
2) 산업·예술 기술의 확산으로 프랑스 문화 경쟁력 강화
3) 귀족 중심의 정치 회귀
4) 식민지 종교 분쟁의 심화
5) 프랑스의 교황권 강화
경영학부 전공 수업에서 진행한 조별 발표 프로젝트는 나의 인간관과 리더십 방식을 가장 잘 보여준 경험이었다. 팀원은 총 다섯 명이었고, 발표 자료 제작과 조사, 발표 준비까지 모 두 함께 진행해야 하는 과제였다. 처음에는 자유롭게 역할을 나누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 날수록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표를 맡은 팀원은 자료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고, 디자 인을 담당한 팀원은 작업 속도가 늦었다. 또 어떤 팀원은 회의에는 참여했지만 실제 진행 상황은 자주 비어 있었다.
나는 원래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와 사람의 성향을 오래 관찰하는 편이다. 회의 가 반복될수록 누가 어떤 역할에 강점을 가지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발표력이 좋은 친구는 전달력이 뛰어났고, 꼼꼼한 친구는 자료 조사에 강했다. 반대로 현재 역할과 맞지 않 아 힘들어하는 사람도 보였다. 나는 프로젝트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역할을 다시 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단순히 단체방에서 역할을 바꾸겠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는 공개적으로 지적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팀원들에게 개별 적으로 연락을 남겼다. “이 역할이 더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식으로 조심스 럽게 의견을 물었고, 최대한 각자의 동의를 얻으려 했다. 이후 단체 채팅방에 전체 역할 분 담과 제출 기한, 진행 순서를 다시 정리해 올렸다. 마치 흐트러진 실타래를 하나씩 다시 묶 는 기분이었다.
1. 김용환 코주부 삼국지 / 고우영 삼국지 / 이학인의 창천항로 / 이문열 · 황석영 삼국지의 특징
(1)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
- 『삼국지연의』 를 번안한 첫 번째 만화,
6.25 직후인 1952년에 발행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 이라는 잡지에 실림, 우리 청소년의 정서에 맞게 만화로 각색했다.
- 말풍선을 사용하는 만화의 형식적 진보를 보여줌.
글이 사건 전개의 중심 역할을 했던 당시 그림 소설류의 만화와는 달리, 『코주부 삼국지』는 캐릭터의 표정과 동작, 그리고 말투가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했다.
(2) 고우영의 『삼국지』
- 1975년에 자유문화사에서 출판한 5권 분량의 단행본 만화
- 유비를 우유부단하고 배포만 큰 ‘쪼다’로 묘사, 유비는 ‘덕'으로 위장했을 뿐, 실제로는 조조를 자신의 정치적 명분으로 활용하는 야심 가득한 인물로 묘사
- 조조는 ‘좆조’라고 비웃음, 장비는 의리의 ‘싸나이’로 묘사해 => 두 절대 영웅에게 씌워진 ‘무의식적 권위’를 일거에 파괴시켜버렸다.
- 주요 인물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하던 고전
(3) 재일교포 이학인의 『창천항로』 (1999)
- 조조의 삼국지 : 자유롭게 각색하여 조조의 시점으로 시대를 표현
(4) 이문열의 『삼국지』
- 모종강본을 평역
- 조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 판매부수 천만을 넘긴 베스트 셀러
- 원작과 달리 작가의 창작이 많이 가미됨
(5) 확석영의 『삼국지』
- 원작에 충실한 삼국지
3,4. 정사 · 배송지 - 『삼국지』 (→ 시대, 지은이, 특징)
(1) 정사 - 『삼국지』
① 진(晉)나라 진수(陳壽:233-297)가 기록한 정통역사서(285)
② 전형적인 승자의 역사 기록
: 위서(魏書), 촉서(蜀書), 오서(吳書) 가운데 위서가 전체분량의 절반 차지 / 조조를 대업을 이룬 영웅으로 기록
③ 짧은 분량, 간략한 내용
④ 위나라의 정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