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서해문집, 20141)?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야말로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16쪽)2)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가 흩어지고 무너져 내린 때를 맞아 나라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를 맡아 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산골 전답사이에서 쉬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 이 어찌 두려움을 씻어주시는 임금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부끄러워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다. (16쪽)3) 비록 볼 만한 것은 없을지라도 이야말로 그때의 사건과 자취이므로 버릴 수 없다. 그러니 이로써 시골 구석진 곳에서 온 정성으로 충성의 뜻을 드러내고, 우매한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기록하고자 한다. (17쪽)4) “나라에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면 병사들은 모두 나약해지기 마렵입니다. 이러한 때에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면 우리 병사들도 강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걱정입니다.” (46쪽)5) 또한 지방에서 선발해 올라온 병사들도 병조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단 관리들과 결탁해 뇌물을 주고 도망가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관원들조차 모른 체할 지경이었으니 쓸모 있는 군사는 하나도 없는 형편이었다. 군의 관리가 이 지경인데 나머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67쪽)6) 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했다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 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 둔다. (74쪽)7) 당시 순찰사들은 모두 문인 출신이었다. 때문에 병무에 익숙지 못해 숫자는 많았으나 명령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요지를 지키지도 못했으며, 훈련 또한 일관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대 다루기를 봄날 놀이하듯 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느냐?’ 했는데 바로 그와 같았다. (85쪽)8) 다음 날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히 끼어 지척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병사들이 일어나 멀리 있는 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방의 대포 소리를 신호로 적이 사방에서 공격해 오자 우리 병사들은 놀란 채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적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매다가 진흙 속에 빠지면 적들이 몰려와 칼로 찔러 죽였다. (91쪽)9) “왜적은 본래 교활하고 간사합니다. 뒤편에 대군이 진을 치고 있다 해도 앞에 나타나는 척후병은 언제나 두셋에 불과하지요. 이를 보고 소홀히 여겼다가는 반드시 그 꾀에 넘어가고 맙니다.” (98쪽)10) 우리 병사들이 배 위에서 현자총을 쏘자 불화살이 여기저기 박히기 시작했다. 왜군은 큰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흩어졌다가는 화살이 떨어진 후에 모여들어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106쪽)11) 그날 밤 박진은 군사를 성 밑에 매복시킨 후 비격진천뢰를 쏘도록 했다. 뜰 안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를 처음 본 왜적들은 신기한 듯이 모여들어 이리 굴려도 보고 밀어도 보는 등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포가 큰소리를 내며 폭발하면서 쇳조각을 흩뜨리자 그 자리에서 서른 명이 넘는 적이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들도 큰소리에 놀라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139쪽)12) 금강산 표훈사에는 유정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왜적들이 산속으로 들어오자 다른 승려들은 모두 도망가고 말았으나 그만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를 본 적들은 감히 다가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합장하면서 예의를 갖추고 돌아섰다. (144,145쪽)13) 아! 이야말로 온 나라 안의 왜적을 순식간에 물리치고, 싫도록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였으니, 이를 놓치지 않았다면 이후 수년 동안 어렵게 싸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천하의 큰 일을 그르쳤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158쪽)14) 그러나 나라의 모습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내 모습을 본 제독이 민망했는지 자기 휘하 장수에게 화살을 돌렸다. (164쪽)15) 게다가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해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185쪽)16) 왜적은 싸움을 시작한 이래 오직 수군에게만 패했는데, 이를 분하게 여긴 히데요시는 유키나가에게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수군을 무찌르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면으로 붙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유키나가는 계략을 꾸몄다. 김응서에게 호감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이용해 이순신이 모함에 빠지도록 술수를 부렸고, 그런 후에는 원균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해 습격한 것이다. 그의 간교한 계략에 빠져 큰 피해를 입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200쪽)17) ‘통제사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요, 하늘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낼 공이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쓴 것은 그가 마음으로부터 감복했기 때문이다. (212,213쪽)18)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218쪽)19) 그는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했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배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평소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221쪽)20) 그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운이 부족해 100가지 경륜을 하나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221쪽)21) 다음 해에 왜란이 발생했으니, 큰일이 일어날 때에는 비록 사전에 알지는 못할지라도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금성이 하늘에 뻗치는 일이 매년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상히 여기질 않았다. (226쪽)22) 100년에 걸친 태평성대로 인해 우리 백성들은 전쟁을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왜적의 침입을 맞게 되자 우왕좌왕하다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228쪽)23) 그러나 험준한 산이나 우거진 숲을 적에 앞서 선점한 후에 매복하고 기습을 가했기 때문에 비록 조총을 가진 적이라 하더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231쪽)24) 훗날 나라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나 같은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말고 활용하기 바란다. (234쪽)25) 무릇 나라에서는 평소에 훌륭한 장수를 선발해 두었다가 유사시에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을 선발할 때에도 정확해야 하고 그들을 활용할 때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237쪽)26) 나는 “우연히 생각이 떠올라 이런 방법을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옛사람들은 이미 사용했구나” 하면서 웃었다. 이 일을 기록해 놓는 까닭은 후에 갑자기 도움이 될까 보아서다. (240쪽)책을 펼치자마자 처음 나오는 작가 본인이 스스로 쓴 서문에서부터 감동이 밀려왔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환란을 겪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책은 처절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시절 관료로서 환란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하지만 후세에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그는 용기를 내어 기록으로 남긴다. 그의 사관은 지금 시대 친일 역사학자들의 그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들은 한국의 불행한 근대사를 미화하기에 급급하다. 그것이 태생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고 그들의 기록에 사실이 아닌 주관적 감정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읽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자들의 몫이다.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 자체는 있는 그대로 남기는 것이 맞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을 치르고 그전 후 사정을 가감 없이 남긴 징비록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고전의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징비록은 단순한 기록으로서의 역사서를 탈피해 독자가 마치 그 시절 전쟁터를 눈앞에서 보듯 생생한 묘사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장면도 많다. 아무래도 고전이란 생각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흡인력이 상당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수 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 속에 살아왔기에 그 당시 우리 군사들 중에 경험과 학식이 뛰어난 병사는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랫사람의 말을 새겨듣는 장수는 많지 않은 듯하다. 일개 병사가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단지 전투가 두려워 또는 적이 두려워 머뭇거린다 생각하여 목을 베어 버리는 장수는 그 병사의 간언을 하찮은 말로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 통에 병력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엄히 다스려야 함이 맞으나 사람 한 명 한 명의 목숨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말의 진위를 섣불리 판단하여 목숨을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패전의 요인 중 하나는 상급자의 독단적인 판단착오에서 비롯된 성급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