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法藏)의 금사자론(金師子論) Ⅰ. 들어가며 { 법장(法藏, 643-712)은 중국 당(唐)나라 때의 승려로 법호는 현수대사(賢首大師)이고 국일법사(國一法師)라고도 한다. ... 법장은 본체세계는 리법계(理法界), 현상세계는 사법계(事法界)라고 명명했다. 본체는 이른바 자성청정의 원명체(自性淸淨圓明體)이다. ... 법장의 『금사자장(金師子章)』을 통해 화엄종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다. Ⅱ.풀어가며 1. 금사자론의 내용 (1) 연기를 밝힘(明緣起) 금에는 자성(自性)이 없다.
법장의 金師子章 3. 법장의 五敎十宗 敎判說 1. 智儼의 생애와 저술 智儼(602-668)은 속성이 趙씨이고, 天水(甘肅省) 출신이다. ... 법장은 이렇게 어느 면에서는 뛰어난 번역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법장은 일찍이 현장의 역경 사업에도 참가했으나 그 후 현장과 견해가 달라서 그를 떠났다.{) 屬 師譯經. 始預其間. ... 법장의 五敎十宗 敎判說 법장의 스승인 지엄은 교판에 대해서는 유연하여 漸敎·頓敎·圓敎나 一乘·三乘·小乘의 三敎敎判, 小乘·初敎·熟敎(終敎)·頓敎·圓敎一乘의 五敎敎判, 同敎·別敎의 二敎敎判
의상의 횡진법계관과 법장의 수진법계관 참고 문헌 Ⅰ. ... 서 론 의상(625~702)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오랜 기간 동안 화엄 논사 법장을 포함한 여러 중국학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정진한 불교인으로 주로 화엄을 연구하고 설법한 학자이며 ... 의상의 횡진법계관과 법장의 수진법계관 사사무애법계로서 현상세계사물들의 일중다 다중일을 강조하는 것은 각 존재에 있어 개체성과 보편성의 양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직업 문인 본관 경주 작품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시대 통일신라 생애 그는 신라 47대 헌안왕 원년인 857년에 태어났다.868년에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唐) 나라로 유학을 ... 대표 문헌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부석존자전> <사륙집> <사시금체부> <상대사시중장> <석순응전> <석이성전> <쌍녀분전기> <오언칠언금체시> <잡시부> <제왕연대력> <중산복궤집
대승기신론의 주석서로는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와 대승기신론 별기, 그리고 중국 화엄종의 고승이었던 법장의 대승기신론 의기가 유명하다. ... 하지만 법장의 책은 거의 원효의 주석서를 사실상 인용했던 책에 불과했다. 원효의 주석서는 해동소란 이름으로 중국과 일본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최치원의『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등 화엄십찰을 언급한 저술마다 화엄십찰을 다소 다르게 비정하기 때문이다. ... 이듬해인 662년에는 당시 종남산(終南山)에서 화엄교학을 이끌던 지엄(智儼)을 찾아갔는데, 당시 지엄 문하에 있던, 나중에 중국 화엄종을 완성하는 법장(法藏)과 함께 가르침을 받았고 ... 법계도인(法界圖印) 1) 7세기 고구려 불교를 이끌었으나, 연개소문이 집권하고 그가 도교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자 이에 반발하여 백제로 망명해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2) 의상, 법장의
법장 비구는 세자재왕부처님을 통해 210억 개의 불국토를 관찰하고, 오겁사유(五劫思惟)를 거친 연후에 48가지의 서원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 중심내용은 아미타부처님의 행적과 그 본원에 관한 것으로, 먼저 아미타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전 세자재왕(世自在王)부처님께서 출현하셨을 때, 국왕으로서의 모든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출가한 법장
性相融會思想 ▶ 中國의 性相融會思想 : 교종 내부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화엄종사상 내에 법상종사상을 융합하려는 것으로, 이미 법장에 의해 체계화 되었고 이것은 武周朝의 專制政治를 ... . ▶ 均如의 性相融會思想 : 圓宗으로서의 성격을 표방하면서 의상 화엄사상의 융회적 성격을 충실히 계승 - 의의 : 法藏의 융회사상에 비해 오히려 더 융회적인 사상으로 나타났지만 법장의
그 뒤 의천이 송나라에서 귀국한 이래 계속 머물렀던 흥왕사는 금자화엄경을 봉안한 고려화엄종의 본거지였으며, 해인사로 퇴거하기 직전에 머물렀던 홍원사도 법장·징관 등 화엄조사의 구조당 ... 그의 사교판설이 법장 등 중국의 화엄종에서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계기가 되어 원효를 해동화엄종주로까지 칭하게 되었으나 그 자신은 화엄종에 사로잡히지도, 종주로 자처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