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南人)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들로 구성된 붕당(朋黨)을 말하고), 근기남인(近畿南人)이란 근기지방)에 근거지를 둔 남인들을 말한다. ... 이때 근기남인들은 토지문제를 비롯한 농업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 미수 허목으로 이어지는 근기남인의 학맥은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경세치용학파가 되었다고 한다. ?
조선 후기의 실학 (중농학파를 중심으로) 1. 실학의 의미 실학이란 본래 수기치인이라는 유학의 본령에 충실한 학풍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리라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에서 통시대적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사실 실학은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 할 수 있는 가변..
예송 논쟁 당시 남인의 이론가로 출사하였으나 허목, 윤휴 등 북인계 근기남인과는 견해를 다소 달리하였습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영남 남인과 퇴계학파의 정치적 ... 조선 현종, 숙종 때의 남인 중진으로 남인의 이론가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이며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대표적인 산림(山林)으로 꼽힙니다. ...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이현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남인 중신 문신, 정치인, 유학자입니다.
그 문제들 중 하나는 조선조의 실학을 근기近畿중심의 실학으로 이해되어 온 일을 들 수 있다. ... 사회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제적, 실용적 학문의 필요성 - 양반사회의 모순 심각 → 지배층은 권력다툼에만 → 성리학 극복하고자 등장 * 한계점 - 정치에서 배제 됐던 남인계열이나 ... 근기 실학의 시작인 성호 이익의 연원을 따지자면 호남의 반계 유형원으로부터 그 시작점을 갖는다.
제1기는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로서, 유형원을 계승한 근기 지역의 성호를 대표로 삼고 소농민의 생활은 안정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 이 시기 실학사상은 노론계열의 북학파와 남인계열의 성호학파라는 두 실학의 유형으로 나뉘었고, 성호학파는 다시 천주교 교리를 비판하는 공서파(攻西波)와 반대로 천주교 교리를 지지하는 ... 하나이다. 5) 경상도 포항 지역의 옛 지명으로 정약용의 첫 유배지이다. 6) 금장태, 『茶山정약용 실학의 세계』,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99, 28~29쪽. 7) 조선 후기에 근기
원재린, 「근기남인계 목민학 전통과 『목민심서』」, 『다산과 현대』 7, 2014. 정호훈, 「15~6세기 牧民書의 전개와 牧民學」, 『韓國思想史學』 36, 2010. ... 이 책은 이원익의 편지글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남인 계통의 정치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는 『목민대방』이다.
이처럼 천주교는 본래 지식인 계층인 일부 남인들에 의해 신봉되었으나 전통적인 신분 사회에서의 변화를 추구했던 중인과 평민 계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빠른 속도로 그 교세가 확장될 ... 안정복과 신후담 두 명 모두 이익의 제자이자 근기학파(近畿學派)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는데 이 둘처럼 서학을 배척하기 위해 서학을 연구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과 다른 학통에서는 서학의
실학사상의 전개 1) 중농학파 - 근기남인 재야학파 ① 특징 ⅰ) 성립 : 18c전반 경기도 광주 중심으로 성립 → 17c후반 남인학계 허목과 유형원 등을 계승 → 이익의 일문의 집단적 ... 이익에 이르러 가학화(家學化) → 근기남인 실학파가 됨 ⅲ) 주장 : 성리학의 관념화, 예학의 의식화에 대한 반성 → 민생문제 해결에 주목 토지제도? ... 소론)의 사상적 차이와 정치적 입장을 밝힘 → 실학사상의 배태기로 설정 ③ 중농학파(근기남인 중심) ⅰ) 형성 : 16c말 중앙에서 활동한 영남사림의 일부가 서울 및 경기도 광주로
서인은 김장생으로부터 이어지는 예학적 전통 속에서 주자학을 절대 신봉하는 반면, 근기남인(경세치용의 학풍을 특색으로 하는 근기 지방의 남인)학파는 원시유학인 육경을 중시하면서 고학( ... 효종 ·현종 때 여러 관직을 지내고, 제2차 예송이 일어나 남인이 없지만, 상소가 역사를 바꾸었음. -김우명 : 송시열과 같은 서인이었으나 대부복상문제로 남인으로 이동. ... 이렇게 해서 조정은 다시 제 2차 예송에서 승리한 남인의 힘이 커지게 되었다.그런데 남인의 손을 들어 주었던 현종이 죽자 송시열은 다시 예론을 들고 나왔고 부왕의 뜻을 받든 숙종은
사상적으로는 근기남인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향촌의 사족 가문 출신이었다. ... 결론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은 18세기를 살아간 남인 학풍의 실학자들이다. 18세기는 남인들은 내부적으로 서로 분열하고 정치적으로 ... 그는 과거제도가 실학을 소홀히 한다는 점을 들어 지적하였는데, 이는 정치권에서 소외되었던 남인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근기남인의 학문을 계승한 것이지만, 그 스 스로가 허전의 제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로 학통이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 특히 근기남인의 실 학연원을 튼실히 하면서 자암서당을 중심으로 학도들을 기르며 이들에게서 미 래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점, 다양한 저술과 출판을 통해 전통문화를 정리하고 널리 보급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