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稿에서는 고주관계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먼저 고주관계에 적용되는 法規範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이른바 雇工律의 내용을 통해 고주관계의 기본구조 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공률이 적용된 사례를 검토하여 고주관계의 실제적인 모습까지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
1혁명의 여진과 조선 사회 -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를 중심으로 한 연구,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 한국 재난 인식 연구의 성과와 과제 ? ... 식민지 임업가 사이토 오토사쿠(齋藤音作)를 중심으로 한 연구, 朝鮮時代 유배형의 집행과 그 사례 연구, 16세기 사대부 집안의 제사설행과 그 성격-李文楗의 默齋日記를 중심으로 한 연구
본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朝鮮과의 關係’에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사실이나, 삼국이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식의 서술은 삭제되었다. ... 한편 征韓論에 대하여는 명치 초기 조선의 일본에 대한 無禮를 ‘朝鮮事件’이라고 표현하며, 이로 인해 西鄕隆盛 등이 분노하여 조선정벌론을 주장한 것이라고 하였다. ... 朝鮮征伐?, ?扇面의 地圖? 등의 제명으로 서술되던 것이 본서에서는 ?外交와 文化?란 부분에서 ?外交의 失敗?라는 소제명 아래에서 설명하였다. 또한 말미에서 “이 役은 무당
シトセス … 近代朝鮮ニ於ケル日露ノ勢力競爭ヲ?シテ朝鮮ノ向背ヲ說キ或ハ韓國痛史ト稱スル在外朝鮮人ノ著書ノ如キ書ノ眞相ヲ究メスシテ漫ニ妄說ヲ遑ウス此等ノ史籍. ... 그가 집필한 韓國獨立運動之血史 (이하 血史 )는 제목 그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피의 역사를 정리한 것으로, 1920년 러시아에서 상하이로 돌아온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韓日關係史料集 ...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0,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994, 24쪽. 13) 박은식 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편, 韓國痛史 , 14쪽 14) “…朝鮮人ハ他ノ植民地ニ於ケル野蠻半開
가장 좌측의 지도는 1810년 에도막부가 편찬한 지도로 한반도 동쪽 영해를 정확하게 한자로 朝鮮海(조선해) 라고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다. ... 이 문서에는 서면의 다케시마 외 한 섬의 건은 본방과 관계가 없음을 명심할 것 (書面竹島外一嶋之義本邦關係無之義卜可相心得事)"이라고 작성되어 있었다. ... 이에 태정관은 1877년 3월 29일부로 내무성의 의견에 따라 "질의한 다케시마 외 한 섬의 건은 본방과 관계가 없음을 명심할 것(伺之趣竹島外一島之義本邦關係無之義卜可相心得事) 이라는
판소리의 계파 판소리의 유파는 사사관계(師事關係)와 출신지역에 따라 갈라진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어 오는 동안 각기 노래의 흐름과 서쪽인 광주 나주, 해남, ... 이때에 활약한 인사들이 송만갑·이동백(李東伯) 들이니 이들은 그 뒤 일제치하에서도 나라 잃은 울분을 판소리에 담아 노래했고, 1930년대에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를 조직하여
자세히 언급하자면, 삼국시대 이래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生産關係는 국가세력 대 농민의 지배 · 예속관계로서 설명하면서, 신라통일기의 농민은 짙은 공동체적 관계에 얽혀 독립된 ... 의 硏究』, 법정대학출판국 12) 박종기, 1989, 앞의 글 256쪽 13) 浜中昇, 1984,「高麗의 歷史的 位置에 대하여」,『朝鮮史硏究會論文集』21; (1986,『朝鮮古代의 經濟 ... 』, 이론과 실천사; 1994,『朝鮮封建社會經濟史』(上), 이론과 실천사 2) 金容燮, 1983,「前近代의 土地制度」,『韓國學入門』, 학술원 3) 김철준, 1970,「한국고대사회의
朝鮮 初期 對明 外交關係 硏究 - 表箋問題와 遼東攻伐計劃을 中心으로. Ⅰ. 머리말 Ⅱ. 표전문제(表箋問題)의 대두와 경과. 1. 표전문제(表箋問題)의 대두. 2. ... 이들이 요동을 공벌하고자 하는 계획의 이유에 대해 『朝鮮王朝實錄』에는 대략 두 곳에 기록이 남아 있다. 먼저『朝鮮太祖實錄』 7년 윤5월 갑진(甲辰)일의 기사를 보자. ...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朝鮮王朝實錄』을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틀린 주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國에 대한 貢女問題에 注目하여 朝鮮과 ?國과의 國階關係를 再檢討하고 나아가 階層間의 分化가 激甚하게 일어났던 丙子胡? ... 후 朝鮮社會의 堆移를 보다 더 具體的으로 照明해 보고자 한다. 동국사학회 동국사학 金甲周 ... 國에 대한 處女의 貢納을 둘러싸고 일어난 여러 問題들이 當時 朝鮮社會의 階層間의 分化를 惹起케 했던 한가지 事由가 아니었던가 推測된다. 따라서 ?者는 丙子 胡?後 ?
오늘날 오랜동안의 懸案인 韓日會談이 그 成敗야 어쨌던 基本關係 條約의 假調印을 끝내고 바야흐로 그 妥結이 目捷에 닥아온 이 때 李鉉淙敎授의 「朝鮮前期 對日交涉史 硏究」가 韓國硏究叢書 ... 그러나 兩國間의 關係는 乙巳 以後의 日帝 侵略은 덮어 두고라도 그 以前은 이른바 交隣關係에서 보다 저들의 一方的 侵寇로 始終되었다고 하여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 우리나라와 日本과는 그 地理的 隣接關係에서 古來 密接한 交涉을 맺어왔음은 周知의 事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