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삼척 지역에서 지금도 믿음의 대상이 되고 있는 퇴조비와 그 설화에 대한 연구이다. 허목이 삼척부사로 가서 퇴조비를 만들어 조수를 물러가게 해 부민을 돕고, 깨뜨려질 때에 대비해 하나를 더 만들어 두었다는 선견지명을 감탄하는 설화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 널리 알..
이 近畿南人學者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龍洲 趙絅, 眉叟 許穆, 星湖 李瀷, 順 菴 安鼎福, 樊巖 蔡濟恭, 性齋 許傳 등이 近畿南人學派의 學統을 이어왔다. ... 이들은 退溪學派의 한 갈래로서 寒岡 鄭逑의 제자인 眉叟 許穆을 통해서 近畿 地域에 退溪學脈을 전파시켰다. 이들은 줄곧 嶺南에 근거를 둔 南人들과 활발 하게 교류를 했다.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연구 許捲洙
眉叟 許穆이 지은 德山碑 즉 南冥先生神道碑는 1585년에 세워졌는데, 1926년에 南冥 曺植의 후손인 德山 曺氏 門中에 의해 훼손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 Duk-san gravestone namely Nam-myoung’s cenotaph[南冥先生神道碑] by Mi-soo, Huh-Mock[眉叟 許穆] was established in ... shrine of Chin-ju[晉州鄕校] argued that it was obviously wrong to eliminate the work of Mi-soo, Huh-Mock[眉叟 許穆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남인계열의 학자로 그가 서술한 동사(東事)에는 남인들의 학문적 사상이나 역사인식 체계를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 17세기 붕당의 정치노선에 따른 고대사 인식에 대하여 - 허목(許穆)의 동사(東事) - 개요 서론 본론 1. 17세기 조선의 정치적 상황 2. 남인 3. 허목의 동사 4. ... 그러나 남인은 대체로 서인과의 유대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점차 의견 충돌이 생기는 등 남인이 서인세력에 눌려 열세를 면치 못하였으나 효종 대 이후 기호지역 출신인 허목, 허적(許積)과
이이첨의 후원으로 집권 대북세력에 적극 협력한 허균은 폐모론(廢母論)과 같은 정국의 최대 이슈에 직면하여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처벌을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 허균은 열네 살 때 둘째형 허봉(許?)의 가까운 친구인 스승 이달(李達)을 만나 그의 문하에서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함께 시를 배웠다. ... 정여립(鄭汝立)과 허균(許筠) -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꾼 혁명가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