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라스전투이후 당의 중앙아시아 진출이 곤란. 따라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대식국인은 육로보다는 海路를 이용하여 당과 교역. 당 이후 해로가 동서문화 교류의 중요한 통로. ... 알라 앞의 만인평등 주장.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를 와해시킨 아랍군(사라센 제국=大食國)은 백년 뒤 중국 당과 일전, 즉 751년 탈라스(Talas) 강변에서 격돌.
탈라스전투?이다. ... 고선지는 실크로드를 평정하고 또한 탈라스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그 여파로 종이를 유럽에 전파한 큰공을 세운 인물이라 생각한다. ... 그러나 장안의 문신들이 포로가 된 석국왕을 참살하였기 때문에 이듬해 서역 각국과 사라센이 분기하여 연합군을 편성하여 탈라스(羅斯, Talas)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오자, 이를 막기 위하여
고선지는 탈라스전투 후 오히려 승진할 만큼 탈라스전투는 자신에게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의 과학 아카데미 학자들은 탈라스전투 이전에 이미 종이 제조법이 전해져 있었다는 의견을 주장한다. ... 이슬람 세계에 종이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유명한 '탈라스전투'의 두 영웅인 고선지 장군과 아부 무슬림은 둘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이와 관련해 데니스 트윗챗은 “ 탈라스전투는 탈라스라는 제한적인 지역 차원의 전쟁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해게모니가 중국에서 아랍으로 옮겨가는 전투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 하지만 이 전투는 결과적으로 당나라의 상 종식되었다. ) - 탈라스 전쟁의 문명교류사적 의의 - 전쟁사적 견지에서 볼 때 탈라스전투는 일단 패배로 끝남으로 인해 고선지는 대당제국에게는 ... 이것이 바로 당나라와 이슬람이 처음으로 충돌하게 된 역사적인 ‘탈라스전투’이다.
전투(751년) – 중국의 당 vs 이슬람권의 압바스 왕조 실크로드를 통한 상호 교역 활성화, 교역량 증가, 무슬림 포로의 안착 안록산의 난(755~757년) – 위구르와 압바스조에게 ... 회족의 기원 이슬람의 최초의 중국 접촉 중국사서의 기록 – 학설의 대립이 있으나 651년으로 보는 견해가 통설 구전 기록 – 620년대의 사드 빈 아부 와카스 경제·무역을 통한 교류 탈라스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 현종 대의 명장이었으며, 동서 문화교류에 한 획을 긋는 전투를 지휘한 인물이다. ... -신당서- 동일한 전투에 대한 기록이나 두 기록은 소발률국 왕의 항복시기와 등교를 끊은 시기가 서로등교의 정확한 명칭이 언급되어 있으며) 신당서에는 고선지에 대한 의도적 훼손이 덜
전투에서 승리(751) 독자적 이슬람 문화 발전 멸망: 지방 총독의 독립-칼리프의 권력 약화, 몽고군에 의해 멸망(1258) 알 만수르가 1192년부터 1197년까지 장대한 모스크의 ... 확실히 아랍권의 모스크는 페르시아권의 모스크와 다름 △ 옴미아드 모스크 전면 시아파가 옴미아드 왕조를 타도하고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여 건립-중앙집권체제 확립 동서무역으로 번영 탈라스
서양 문명의 교류에 기여한 이슬람 -유럽 문명의 부흥과 발전에 기여한 이슬람 -한나라 장건의 서역여행(기원전 2세기): 실크로드 개척자 -당나라와 이슬람 압바스조의 조우: 751년 탈라스 ... 전투 (우선지장군) -칭기즈칸과 몽골 군대의 서역원정: 이슬람 제국과 본격적인 접촉 -실크로드의 활성화: 중국 4대 발명품의 이슬람권 유입 -사라센문화의 유럽 전달: 십자군전쟁 (
이때 아랍 제국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나는 군사를 이끌고 탈라스로 출정했다. 이로써 동서 문명간의 최초의 전쟁인 탈라스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 한편, 탈라스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포로로 잡혀간 당군에 의해 중국의 발달된 문화가 아랍권에 소개되었다. ... 이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서역의 헤게모니는 당에서 아랍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는 이후 탈라스전투에서 패배했으나 역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패전지장에게 ‘유럽 문명의 아버지’란 평가를 내렸다. ... 탈라스전투 이후 알려지기 시작한 제지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와 바그다드를 거쳐 다마스쿠스까지 전파되었다. ... ●나침반도 고선지에 의해 전파된 듯 나침반이 서방으로 전파된 것도 탈라스전투에 패배한 고선지 휘하의 당군 때문인 듯싶다.
제지술은 탈라스전투에서 고구려 유민출신의 당나라 장군 고선지가 패배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전해졌으며 유럽이 동양보다 빠르다고 생각하는 인쇄술 역시 동양에서 발달된 문물 중 하나였다 ... 이것이 480년 9월 22일에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해전, 살리미스 해전의 결과였다. 4차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도 두 진영 사이의 간헐적인 전투는 3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