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종 46년 강화 성립 2) 1268년(원종 9) 몽고에서 ‘6사(事)’ 요구 3) 무신정권 종식 4) 1274년(원종 15) 왕실 혼인 5) 1278년(충렬 4) 충렬왕의 친조 ... 몽고에서 漢地派 몽케(憲宗)의 등장 →정복 지역과 事大關係를 수립 ‘以漢法治漢地’ cf.本地派 ⅱ) 공세를 강화하면서 항복을 요구 :講和 조건을 완화 →講和 조건이 出陸還都, 國王親朝 ... 武臣政權(金俊·林衍)의 대립 2) 1268년(원종 9) 몽고에서 ‘6사(事)’ 요구 :⑴納質 ⑵助軍 ⑶輸糧 ⑷設驛 ⑸供戶數籍 ⑹置達魯花赤 3) 무신정권 종식 :元宗 11년 원종이 親朝
(親朝)요구 거란의 강동6주 영토 요구 거란의 제1회 침입(1014.10~1015.9)→ 강동의 보주등 점령 거란의 제2회, 3회 침입→ 큰소득 없음 소배압 침입(거란의 제4회 침입 ... 40만대군 남하→ 강조의 30만 대군과 격돌→ 강조의 패배 개경함락 및 현종의 피난 양규장군의 활약 및 거란의 퇴각 고려의 친근(親覲)약속 원 인 과 정 결 과 제3차 거란침입 거란의 친조
전국유린 - 고려측은 강화요청(고종25) → 국왕의 親朝를 조건으로. 고려측에서는 왕족인 新安公 佺을 파견. ... 결국 톨루이家의 몽케(蒙哥)가 定宗으로 즉위(1246: 고종38) 몽케는 즉위하자 고종의 친조를 요구. ... 대몽적대를 계속 - 원종은 이러한 무신세력들을 꺾기위해 몽고세력을 이용 - 원종 5년(1264) 몽고가 국왕의 친조를 요구하였을 때 김준 등 무신들은 반대 입장 - 원종 9년의 출륙준비에도
이에 요는 고려가 하공진(河拱辰)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 현종이 친조(親朝)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돌아가다가 구주 등에서 양규·김숙흥(金叔興) 등의 공격을 받아 많은 피해를 ... 고려는 송나라의 연호를 정지하고 요의 연호를 사용하는 데 그치고, 요가 요구한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를 반환하지 않았으며, 요가 멸망하는 1125년까지 양국 사이에 사행무역(使行貿易 ... 입었다. 1011년 정월 개경에 돌아온 현종은 요에 친조하지 않았고, 강동 6주를 반환해 달라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1013년 거란과 국교를 끊고 다음 해에 송나라와 다시 교류하였으므로
몽고군의 침입에 의해 고종 19년(1232) 강화천도를 단행한 이래 몽고는 고려조정의 개경환도, 그리고 국왕의 몽고조정에의 親朝를 고려조정에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이에 형식적인 대응으로 ... 그것은 원종 5년(1264) 국왕으로서 몽고에 친조하였는데, 세조의 큰 환대를 받았다.) 따라서 그는 몽고와의 화해가 결코 왕권에 불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 이런 가운데 무분별한 친몽적 태도와 잦은 정치적 마찰을 가진 무인집권자 임연은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 창을 즉위시켰으나 친조로 몽고에 가있던 원종은 몽고의 세력을 발판으로 이를 무위로
고종 12년(1225) 몽고의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 유역에서 피살당한 것을 구실로 삼아 1231년 고려를 침략 → 1232년 최우 대몽항전을 위해 강화 遷都 → 몽고 강화도 정부에 親朝 ... → 원종 왕정복귀위해 당시 집권자 김준을 휘하 임연 주살 명령 → 임연 병권장악 후 원종과 대립, 폐위 → 몽고 원종의 폐위 거부, 복위요청 → 원종 친조 후 임연을 제거하기 위해 ... 최항 사망 후 주화파 득세, 몽고 친조보다 낮은 태자입조 요구 → 1259년 4월 말 태자입조, 6월 고종 사망, 7월 몽고 헌종(몽케)사망 → 쿠빌라이 황위계승, 태자(원종) 왕위계승
이에 대해 서희는 첫째,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고려라고 했으므 친조(親朝)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돌아가다가 구주 등에서 양규·김숙흥(金叔興) 등의 공격을 받아 많은 피해를 ... 입었다. 1011년 정월 개경에 돌아온 현종은 요에 친조하지 않았고, 강동 6주를 반환해 달라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1013년 거란과 국교를 끊고 다음 해에 송나라와 다시 ... 고려는 송나라의 연호를 정지하고 요의 연호를 사용하는 데 그치고, 요가 요구한 국왕의 친조와 강동 6주를 반환하지 않았으며, 요가 멸망하는 1125년까지 양국 사이에 사행무역(使行貿易
전국유린 고려측은 강화요청(고종25) → 국왕의 親朝를 조건으로. 고려측에서는 왕족인 新安公 佺을 파견. 永寧公 淳을 왕의 친자라 속이고 인질로 보냄. ... 결국 톨루이家의 몽케(蒙哥)가 定宗으로 즉위(1246: 고종38) 몽케는 즉위하자 고종의 친조를 요구. 고려 불응 전쟁이 개시(고종40:1253) 국왕이 出陸하여 몽고사신 접견. ... 대몽적대를 계속 원종은 이러한 무신세력들을 꺾기위해 몽고세력을 이용 원종 5년(1264) 몽고가 국왕의 친조를 요구하였을 때 김준 등 무신들은 반대입장 원종 9년의 출륙준비에도 김준
親朝나 왕자의 입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북위 효문제는 왕제라도 보내라고 재차 요구하며 군사적 응징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 -그것도 유연과 공동으로 벌이는- 북위에게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491년 장수왕이 죽고 북위는 국상을 틈타 고구려의 기를 꺾기 위해 새로 등극한 고구려왕의 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