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시대(1271-1368)에 와서는 여러 북방의 음악과 악기를 도입한 잡극(雜劇)이 성행하여 원곡(元曲)의 명칭으로 국민의 애호를 받았다. ... 후기에 들어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풍이 점차 사라지고 잡가를 잘 부르는 '사계(四契)축 소리꾼'과 선소리를 잘 부르는 '오강(五江)의 소리꾼' 들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서울 노래의
들어가며. 1246년 전후, 원나라에서 이라는 정명을 달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던 잡극이 있었다. ... 특히 잡극에서는 노래와 이야기가 동시에 구현되는데, 이것은 서정에서 서사로의 이동의 싹을 보여준다. ... 물론 잡극 공연에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공연자이다. 그러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그 공연자보다는 작자의 영향이 더 컸다.
그러나 이식은 ‘잡가, 소설, 〈태평광기〉같은 것은 간혹 남녀의 풍요가 있어서 오히려 취할 만하다’며 소설을 무조건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 이탁오는 전기, 잡극, 《수호전》등을 꼽으면서 “동심은 곧 진심이며 바로 이 진심에 근거를 두고 나온 글이야 말로 지문(至文)”이라 하며 소설양식을 여러 경전과 같은 수준으로 놓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