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문장가이며 실학자로 1768년 종로 원각사 백탑 근처로 이사한 후로 서양 문물을 접한 홍대용을 중심으로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박제가 등 양반뿐만 아니라 서얼 출신들과도 ... 「영처고서」에서 옛것을 도습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빌려오지 않고 우리나라 일에 충실하여 작품을 쓴 이덕무의 시를 ‘조선의 국풍’이라고 극찬하기도 하고, 「북학의서」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덕무가 아동을 보는 관점은 그가 주역에서 인용했던 “어린이를 바른 도리로써 양육하는 것이 성인을 만드는 공정”이라는 말에서 잘 표현된다. ... “이덕무의 유가 동몽교육 사상에 관한 연구”. 『한국실학연구』 29호, 한국실학연구. 정세화 외(1997). 『한국교육의 사상적 이해』 학지 ... 하지만 이덕무가 현실에서 접하는 아동은 조급하고 부박한 버릇이 있으며 모든 행실이 완전치 못한 존재였기 때문에 양육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다(이학당, 2015).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는 '방문'에서 어른들이 알아야 할 행동과 언어생활에 대해 자세히 적었다. ... (이덕무의 수양서 '조선 후기 사소절>) 아무리 말솜씨가 좋은 정치인이라도 철없는 시기를 거쳐 성숙해진 어른이라도 상대방을 대하는 데 증오가 함축돼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이렇게 신용이 쌓여 이덕무가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두말없이 빌려주었다. ... 나중에는 이덕무의 눈을 거치지 않았다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며 새로 구한 열람한 자를 처벌하라는 상소였다. ... 이덕무는 집이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책 살 돈이 늘 귀했다. 누가 귀한 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만 들으면 그에게 찾아가 책을 빌려 왔다.
물론 채제공은 전부터 승려들의 비문을 지어주고 있었으나, 이덕무는 규장각 문신으로 당대 유학 발전에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 상량문은 좌의정으로 있던 남인의 영수인 채제공(蔡濟恭) 에게 짓게 하였고, 권선문과 주련은 불교를 배척하였던 규장각 검서관인 노론의 문신 이덕무(李德懋)에게 짓게 하였다.
여러 유명한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그들과 제일 친했던 이덕무의 시선으로 볼 수 있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이 책들을 읽고 싶은 이유는 먼저 ‘책만 보는 바보’는 이덕무와 그의 친구 6명에 대한 이야기로 발해고를 지필하게된 이유 그리고 조선시대 정조의 탕평책으로 인해 규장각 검사관이 된
그는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등의 서얼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러한 자유분방함을 통해 다양한 저작이 나올 수 있었다. ... 단편소설(「이충무전」, 「광무나전」)을 지었다. 25세에는 다른 실학자로 유명한 홍대용을 만났고, 주변의 권유로 성균관 시험을 보았지만 답을 제출하지 않았다. 30대 초반부터는 이덕무
뛰어난 문장가이자 실용적 학문을 연구하여 를 저술한 박제가, 사가시인의 한사람이었던 이덕무, 의협심이 뛰어나고 무예 실력이 출중한 백동수, 를 저술한 유득공 등 뛰어난 실력과 훌륭한 ... ‘서얼이 사람의 서열에 끼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천의 가장 원통한 일입니다’라고 이덕무가 말한 것과 같이, 이들은 능력과 자질이 충분하였지만 시대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자신의 역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