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외로이 혼자 묻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모습이다. 태실비에 적힌 것은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정보에 따르면 “만력 16년 아기씨의 태실로, 만력 17년 2월 25일 ... ”에 태실비를 세웠다고 한다. 어쩌면 인성군의 탄생은 인성군의 생애 중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고작 다섯 살일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무능한 왕 선조는 국민을 버리
에서 태를 갈무리하는 것은 태어난 아기의 장수와 복을 비는 것으로,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다. 왕비의 맏아들인 원자는 왕위 계승의 1순위자로서 대개 8세 전후에 세자로 책봉 ... 하면 태봉 정상에 묻은 돌함에 항아리와 지석을 넣고 덮개석으로 덮은 후 흙으로 봉분을 쌓고 태실비를 세웠다.태의 주인이 왕이 된 경우에는 태실 위에 부도와 비슷한 석물을 올리 ... 고 주위에 팔각난간석을 설치한 후 새로운 태실비를 세웠다. 이를 가봉태실이라 한다. 태실 근처에는 작은 사찰을 짓거나 아예 사찰이 있는 주위에 태실을 정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태실을 만드는 과정은 미리 정해진 일자와 시각에 맞추어 정확히 이루어졌다.
)하리라고 믿었다.태를 가르는 것을 삼 가른다고도 했는데 가위 등 쇠붙이를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로 만든 칼이나 정 급하면 이빨로 끊었다. 쇠붙이를 사용하면 태독이 생길 수 있고, 아기 ... 에 아기의 태를 몹시도 중하게 여겼던 당시 왕가에서는 왕족의 남아가 탄생하면 아기의 태를 아름다운 항아리(주로 백자)에 담아서 길일을 택하여 매장한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이러한 풍습 ... 들이 많은 곳을 택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그곳을 약간 파고 항아리를 묻고는 그 위를 돌로 매웠다.그러나 왕가나 양반 가족들은 아기의 태를 항아리에 넣어 길일을 택해 좋은 장소를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