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태는 부족국가나 부족연맹에 대해 하나의 독립된 시대로 간주하지는 않았으나 부족국가 다음의 귀족국가 이전에 오는 과도기적 단계로서 부족연맹을 설정하였다. ... 왕조사(王朝史) 중심이나 지배층 위주의 역사서술과 시대구분을 배격하고 민족사(民族史) 중심의 역사서술을 주장한 손진태(孫晉泰)는 씨족공동체사회-부족국가-귀족국가로 설정하고, 한국사를
다만, 연구의 편의상 손진태사학(孫晋泰史學)은 후고(後考)로 미루고 안재홍사학(安在鴻史學)의 성격을 검토하는데서 그치려고 한다. (3) 가훈: 후회없는 삶을 살자. ...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는 안재홍(安在鴻)(민세(民世))에 의해서 정치사상(政治思想)으로 이론화되었고, 손진태(孫晋泰)(남창(南滄))에 의해서 사학(史學)이론(理論)으로 발전되어, 정계 ... 신민족주의가 다시금 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로서, 손진태사학(孫晋泰史學)이 먼저 논의대상이 되었고,3) 최근에는 안재홍(安在鴻)의 정치사상(政治思想)에 대한
, 창작과비평사, 1999, pp. 205-206. ) 손진태는 1937년에는 도서관장을 맡았다. ... 이러한 신민족주의 사상은 사관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1930년 안재홍에 의해 제창되었고, 1940년대 손진태로 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 그러나 신민족주의 사학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안재홍, 손진태, 이인영 등이 납북되어 소식이 단절되면서 단명하였다. 3.
또 위지 ‘동이전’의 한전에 “소도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긴다”고 했는데, 이 ‘소도’를 손진태 씨는, 지금은 솟대라고 하는 것의 당시 발음의 한자 표기가 ... 일부에서는 장승을 ‘수살’이라고도 하고, 충청ㆍ경기 지방에서는 솟대만을 가리켜서 ‘수살대’라고도 불러 왔다. ② 이정표로서의 장승은 흔히 솟대와 더불어 동네 입구의 큰길가에 세워지며, 손진태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