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향가라는 이름의 당대적 의미는 당시, 범패에 대응되는 자국어 시가의 총칭으로 볼 수 있다. ... ■ 상위 갈래 서정갈래 ■ 갈래의 개념과 성격 : 향가 중국 시가 및 범패와 달리 자국어로 된 시가를 가리키는 신라 시대의 용어. ... ‘범성’이란 범패이거나 찬불가이다. ‘향가’는 그런 것들과는 이질적인 우리말 노래이고 국선지도가 지어 부르는 것이다.
: 부처님을 찬탄하는 음성공양인 범패는 오랜 옛날 인도에서 시작되어 한국에는 9세기 즈음부터 이어져 내려왔는데 천년이 넘는 원음 그대로의 전통불교음악을 한국의 산사에서 들을 수 있는 ... , 순천 송광사 등과 같이 대형 사찰인 경우에는 다. 11) 민속놀이 : 널뛰기, 윷놀이, 떡메치기 등의 다양한 한국민속 전통놀이를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12) 범패시현
물론 범패를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고승과 일반승려로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겠으나 적어도 득도한 고승이라면 적어도 범패에는 능통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된다. ... ‘월명사’의 신분은 스스로 ‘향가는 할 수 있으나 범패는 익숙치 못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통해 그가 불교적으로 깊은 경지에 다다른 고승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삼국유사 원문을 살펴보면 월명사가 경덕왕에게 그 스스로를 ‘신승은 단지 국선의 무리에 속하는지라 향가는 알고 있으나 범패는 모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들은 진감에게서 범패를 배우려했고, 진감의 범패를 통해 고통을 위로 받은 면에서 진감의 범패가 신라말기 대중의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음을 알 수 있고, 범패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 그는 불교음악 즉 범패에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 당대 최고로 평가받은 지시인 최치원이 진감의 범패 부르는 소리를 극찬했었다. ... 또한 진감의 범패를 배운 것은 당나라 때로 추측하여 진감은 당풍범패라 하는 새로운 소리를 신라에 도입한 장본인으로 새로운 문화를 수입한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범패뒤에 가타(伽陀)를 읊으면서 산화의식은 진행된다. 해가 둘 나타난 변괴를 물리치기 위해 조원전의 청양루에서 준비된 의례는 산화의식이었다. ... 왜냐하면 월명사가 범패를 보르며 단지 향가만을 알뿐이라고 말을 하게 된 까닭으로 볼 때 불교류의 산화의식을 거행하는 자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 월명사는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하여 오직 향가만 알고 범패 소리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하였다. 왕은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정하였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다."
당시 적산원(赤山院)에는 대중이 석가를 칭송하는 회중가의 신라풍과 당나라에서 부르던 당풍, 그리고 당나라의 범패보다 더 오랜 고풍의 세 범패가 있었는데, 신라의 범패는 신라풍과 고풍의 ... 범패의 기록은 옥천사에 세운 진감선사(眞鑒禪師)의 [대공탑비문]에 범패의 오묘함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처음이다. ...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 당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27년만인 홍덕왕 5년(830년)에 귀국하여 옥천사에서 불법과 범패를 가르쳤으므로 범패는 늦어도 9세기 신라 사찰에서 널리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어산 범패를 작곡했다고 해서 팔영루라고 한다. ... 이곳은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을 만든 불교 음악의 발상지이며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