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은 1443년 창제되어 1446년에 반포되었다. 음운문자인 우리말은 음절구성이 복잡해 한자로는 민족어 글쓰기가 무리였다. 그러나 훈민정음을 통해 공동문어인 한문의 사용과 민족어인 한글의 표기가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자의 수용 층이 상층여성에..
鄕藥救急方에서 ‘나?’, ‘어?’ ... 鄕藥救急方은 분명한 예들을 보여 준다. “麥門冬 冬乙沙伊”, “苦蔘 板麻”는 분명히 ‘겨?사리’, ‘널삼’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들은 후기중세 문헌에 ‘겨?사리’, ‘너?’ ... 문제는 鄕藥救急方에 표기된 (1)과 같은 차자 표기가 모두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나마 과연 ‘ㅸ’에 해당될 수 있는 여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5세기 국어에서 순경음 ‘ㅸ
더덕구이 어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1431년에 간행된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이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가덕(加德)이라 표기되어 있다. ... 콩나물은 고려 고종 때 저술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대두황(大豆黃)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콩나물은 자라는 과정에서 체내대사가 이루어져 콩의 영양성분과는 많이 달라진다.
약명의 그릇된 것을 바로잡으며, 선덕(宣德) 신해년101)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兪孝通)·전의(典醫) 노중례(盧重禮)·부정(副正) 박윤덕(朴允德) 등에게 명하여 다시 향약방(鄕藥方 ... 은 3백 38가지인데, 이제는 9백 59가지가 되고, 구방(舊方)은 2천 8백 3가지인데, 이제는 1만 7백 6가지가 되었으며, 또 침구법(針灸法) 1천 4백 76조와 향약 본초(鄕藥本草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환경이나 상황이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약재만이 유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풍부하고 값싼 약재들을 활용하도록 향약(鄕藥 ... 그리하여 총85권으로 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나오게 되었다. 1596년 선조는, 중국의 의서들이 모두 조잡한 것을 베끼고 모은 것이라서 별로 볼 만한 것이 없으니 여러 의서들을
자료 전기 중세국어의 주요 문헌자료 1) 계림유사(鷄林類事) 2)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계림유사(鷄林類事) ? 송나라의 손목이 고려에 와서 국어에 대한 기록을 남김 ? ... 해석하려면 중국 자음의 재구와 국어의 재구 모두가 필요함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 한국의 오랜 의약서 ? 한자 차용 표기법 연구 자료 (향명을 한자 차용 표이중력(二中曆) ?
(高士)들이 쓴 20여 편의 찬문(撰文)이 들어 있다.현재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13여년 만에 국내에 전시된다고 한다 :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향약(鄕藥 ... 세종(世宗) 13년(1431) 권채(權採)·유효통(兪孝通)·노중례(盧重禮)·박윤덕(朴允德) 등이 재래의 여러 의서(醫書)를 참고하여 편찬, 1433년에 간행하였다 :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