嘗觀道旁碑文一過,便能記誦; 일찍이 길가의 비문이 있는데 곧 기억해 암송하였다. 觀人奕棋,棋局亂,粲復爲擺出,不差一子。 ... 孔明曰:「且再作商議。」 공명이 말하길 또 다시 상의해봅시다. ?說夏侯惇敗回許昌,自縛見曹操,伏地請死。 ... 待城中火勢大 作,?於城外?喊助威,只留東門放他出走;汝?於東門外從後 擊之。天明會合關、張二將收軍回樊城。」再令?芳、劉封二人 :「帶二千軍,一半紅旗,一半?旗,去新野城外三十里鵲尾坡 前屯住。
作作處中의 作作은 ‘질질’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作은 근대의 이주주해서에서 作文을 ‘질문’으로 읽는 것을 보면 그 훈이 ‘질’이었음을 알 수 있다. ... 현재 전하여 오는 삼국시대의 비문(碑文) 가운데 매우 이른 것으로 알려진 5세기 초의 광개토대왕비(414)에 이미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의 뒤에도 역독점이 있으므로 다시 위로 올라가 왼쪽에 토가 붙은 구성소 가운데 가장 가까운 ‘不????/안디이?’을 읽는다. ‘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