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기(紀)는 편년의 유풍(遺風)을 답습한 것이고 전(傳)은 한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 세 번째는 소흥 31년(1161)으로 《통지》를 갖고 임안으로 가 헌상하였는데, 고종이 순행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으나 추밀원 편수 겸 섭검상제방문자(攝檢詳諸房文字)에 봉해졌다. ... 그리하여 《통지》속에 「금석략」1권을 넣어 “삼황오제 시대의 천폐(泉幣), 삼왕의 정이(鼎彛), 진대의 석고(石鼓), 한위(漢魏)의 풍비(豊碑)”를 기록하고, “위로는 창힐(蒼?)
향가의 전통은 그 뒤에 현종이 신하와 같이 현화사에 나가 사뇌가 12수를 지어 현판에 새겨 걸었다는 기록이《비은기(碑隱記)》에 남아 있다. ... 것으로 평민들 사이에 구전(口傳)되어 오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우리글이 만들어진 후 성종 때에《악학궤범(樂學軌範)》,《악장가사(樂章歌詞)》,《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에 문자화(文字化 ... 고려문학의 진수(평민들에 의해 구전, 조선조에 정착) 5) 설화문학의 분류 : 전래문학 정리, 패관문학, 가전 * 전래설화의 수록 * 패관문학의 발달 및 가전의 발생 ① 수이전(殊異傳)
석각비지(石刻碑志)의 기록 현재 조만리(趙萬里)가 집록한 『위진남북조묘지고석(魏晉南北朝墓之考石)』에는 사서의 빠진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 ... 『죽서기년』 13편, 죽간에 기록 → 모두 75편, 칠(漆)을 이용해 쓴 과두문자(科斗文字))이다. 3) 관련서적 진 무제는 비서(秘書)에 명하여 글자를 고증하고 순서대로 편집하여 ... 나진옥(羅振玉)은 일찍이 이것을 이용하여 『위서종실전보주(魏書宗室傳補注)』를 지었다. 5.
이두의 성립 1) 앞에서 소개한 6세기의 , 이후 명실상부한 이두의 성립은 南山 新城碑 葛項寺 造塔記(남산 신성비 갈항사 조탑기)를 통해 7세기로 보고 있다. ... 일본의 漢文 讀法(한문독법) 1) 구결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인 略體字(약체자)들이다. : 비좁은 행간에 글씨를 적어 넣기 위해 신라인들이 만든 문자 개혁의 일면 2) 일본의 假名 文字 ... 고차사실 천대죄득서 고국불안대난세 가용행서지 우별선선미녀 칠월공 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이일대서 시상서예전윤득서상년) 凡男女定婚之初 若有殘疾 ?老幼 ?庶出 ?過房 ?
(桂苑筆耕)》 《중산복궤집(中山覆集)》 《석순응전(釋順應傳)》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등이 있다. 2. ... 불입문자(不立文字)란 선(禪)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 글씨에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 〈무염국사백월보광탑비(無染國師白月光塔碑)〉 〈사산비(四山碑)〉가 있고, 저서에 《계원필경
비(碑)?갈(碣)?묘지(墓誌) 등이 있으며, 갑골류(甲骨類)?도기류(陶器類)?전폐류(錢幣類) 등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 되었다. 20세 무렵 오경(五經)의 하나인 상서(尙書)의 문헌에 의구심을 품고 30년 동안 연구한 끝에 『상서고문소증尙書古文疏證』 8권을 저술하여, 고문 25편 및『상서공전尙書孔傳』 ... 이 실사구시와 명물도수(名物度數)의 학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고경(古經)의 의리를 추구하고 도를 아는데 있었으며,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문자소학(文字小學)을 제시했던
이두의 성립 1) 앞에서 소개한 6세기의 , 이후 명실상부한 이두의 성립은 南山 新城碑 葛項寺 造塔記(남산 신성비 갈항사 조탑기)를 통해 7세기로 보고 있다. ... 천전서 금자삼년이후 충도집시 과실부서 苦此事失 天大罪得誓 苦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七月 고차사실 천대죄득서 고국불안대난세 가용행서지 우별선선미녀 칠월공 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 구결의 略體字와 일본의 漢文 讀法 1) 구결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인 略體字들이다. : 비좁은 행간에 글씨를 적어 넣기 위해 신라인들이 만든 문자 개혁의 일면 2) 일본의 假名 文字
“우리나라는 삼한(三韓) 때에 설총이 지은 방언문자(方言文字)가 있어 이도(吏道)라 하는데 이 땅 풍습이 배우지 않고도 알고 익혀 숙달되어 갑자기 바꿀 수가 없다.” ... 하지만 이두를 창안한 사람이 설총이라고 하기도 하나 《서동요》나 《혜성가》의 제작연대가 6세기경이라는 것과 이두의 표기가 보이는 경주의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591) 및 설총이 신문왕 ... 향찰이라는 명칭은 (1075) '역가공덕분(譯歌功德分)의 최행귀(崔行歸)의 서문'에 처음 나타난다.
이것 이외에도 와(瓦)나 전(傳), 목(木) 등에 각한 것도 있는데 그것은 그 내용이 길이 길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오금(烏金)이란 문자(文字)외의 종이면 전체를 새까맣게 먹색으로 채탁하는 방법이고, 선시(蟬翅)란 문자의 주변이나 글자만 엷은 먹색으로 탁묵(拓墨)하고 남은 지면은 흰 종이로 그대로 ... 금석문이라 함은 비(碑), 갈(碣), 종(鍾), 정(鼎), 와(瓦) 등에 새겨진 글씨나 문양(紋樣)을 말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금석학(金石學)이라 한다.
불입문자(不立文字)란 선(禪)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 최치원은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 낭혜화상비(朗慧和尙碑), 지증대사비(智證大師碑), 숭복사비(崇福寺碑) 등 유명한 4비(碑)의 비문(碑文)을 남겼는데 이를 일러 사산비명(四山碑銘)이라 ...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의 서(序)에서 법장화상의 행적을 10개의 과목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화엄삼매관(華嚴三昧觀)에 나오는 직심(直心)의 십의(十義) 즉, 광대심(廣大心), 심심심(甚深心
그러나 이것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阿道和尙碑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다. ... 이는 본질적으로 造形言語로 만들어진 미술품을 미술 사학자가 해독하여 文字言語로 옮기는 것이다. ... 또한 유사의 註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鄕傳호국행사로 八關會는 원래 八戒를 받는 법회로써 종교적, 금욕적, 수행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