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 抑亦地中之鬼, 已議陰誅) 이 살벌한 표현은 최치원(崔致遠·857∼?)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게 한 ‘격황소서(檄黃巢書)’의 한 구절이다. ... (20점) -한국인이 꼭 읽어야 할 한시- 최치원의 계원필경- 1) 계원필경의 특징 계원필경(桂苑筆耕) 또는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은 남북국 시대 신라 말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致遠 乃本彼部人也 今皇龍寺南味呑寺南 有古墟 云是崔候古宅也 殆明矣)”라는 기록에서 보인다. ... 미탄사(味呑寺)는 『삼국유사』 권1 기이1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최치원은 즉 본피부 사람이니 지금 황룡사(皇龍寺) 남쪽에 있는 미탄사(味呑寺) 남쪽에 옛 터가 있어 이것을 최후(崔候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이 당 나라에 들어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고병(高騈)의 종사관이 되어 황소(黃巢)를 토벌하였다. ... 이규보(李奎報)가 일찍이 평론하기를, 최충헌(崔忠獻)을 신품제일(神品第一)로 삼고, 탄연을 둘째로 삼고, 유신(柳紳)을 셋째로 삼았으니, 이는 권세가에게 아부한 것이요, 공정한 평론은
비교적 충실히 갖추고 있는 최초의 작품은 조선 초의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신라 말 고려 초의 ‘전기문학(傳奇文學)’인 「김현감호(金現感虎)」·「최치원(崔致遠 ... 소설’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장자(莊子)』「외물편(外物篇)」의 “소설을 꾸며 높은 벼슬을 구하는 것은 크게 출세하는 것과는 또한 거리가 멀다[飾小說以干縣令 其於大達亦遠矣
박인범(朴仁範)·최광우(崔匡祐)·최치원(崔致遠) 등의 이름이 높았는데 특히 동방 한문학의 비조라 일컬어진 최치원은 중국에서 문명을 떨쳤으며 그의 칠언금체시 중에서 《등윤주자화사상방( ... 사변성(思辨性)·기교성(技巧性)과 도학파시의 도덕적 제어성(制御性)에 반발하여 이를 극복하려 당시(唐詩)를 배워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출을 지향하는 운동이 백광훈(白光勳)·최경창(崔慶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