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영남감사(嶺南監司)의 물질적 지원과 지방유지의 도움으로 서적과 학전(學田)을 구입하고 노비 및 원속(院屬)을 확충하는 등 그 영속화를 위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文翼公 李德馨 1691 1692 경기도 포천 조선 선조 정치가 江 漢 祠 文靖公 宋詩烈 1785 1785 경기도 여주 조선 숙종 학자 鷺江書院 忠烈公 朴泰輔 1695 1697 경기도 ... 200 사우 [표 2] 대원군의 서원철페령 이후 남은 47개 서원 서원명 주 향 인 건립연도 사액연도 소재지 비고 崧陽書院 文忠公 鄭夢周 1573 1575 경기도 개성 고려말 학자 龍淵書院
龍樹與中觀哲學 (台北:東大圖書公社, 1988), p. 41에서 도안이 노자 의 ‘有生於無’와 같은 발생론에 빠졌다고 한다. ) 天? ... 莊子翼 (漢文大系 권9, 東京:富山房, 昭和 48년). ) 주 6) 참조. ) 若一切不空, 則無有生滅, 如是則無有, 四聖諦之法. 中論 ?觀四諦品? ... 승조의 ‘비유비무’에 대한 해석은 용수의 연기성공의 의미를 올바르게 천명한 것이며, 승조의 도안에 대한 비판 역시 연기성공의 중도논리에 입각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 예컨대 楊惠南은
정전하시 용사상론 황양용사지월 停電何時 龍蛇相論 黃羊用事之月 정전하시(停電何時) 란 언제 전쟁이 멈추는가라는 뜻으로, 용사상론(龍蛇相論)의으로는 小月이고 이것을 달리는 사람의 走(주 ... 頭尾出田亂世英雄 不免項事 天運奈何 (두미출전난세영웅 불면항사 천운내하) ☞ 머리와 꼬리가 나온 전(田)은 신(申)이니 신익희(申翼熙),조병옥(趙炳玉)같은 난세의 영웅도 죽음을 면할수 ... 지금부터 450여년전, 조선중기의 학자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선생께서 우리 단군(檀君) 민족인 후손들에게 남기신 우리 민족에 관한 대 예언서(豫言書)이다.
巡衛司) 신호위(神號衛) 용기순위사(龍騎巡衛司) 흥위위(興衛衛) 용무순위사(龍武巡衛司) 우군(우군(右軍)) 비순위(備巡衛) 호분순위사(胡賁巡衛司) 천우위(千牛衛) 호익순위사(虎翼巡衛司 ... 이 과정에서 주무부서인 병조의 무능이 노출되어, 선조는 그 책임을 물어 병조판서 홍여순(洪汝淳)을 파직시키고, 김응남(金應南)을 병조판서에 임명하였다. ... 이 5사는 중군(中軍)에 의흥(義興),충좌(忠佐), 충무사(忠武司), 좌군에 용양사(龍?
창당에서 소멸까지 : 초대 대표최고위원은 신익희(申翼熙), 최고위원은 장면(張勉) ·조병옥(趙炳玉) ·곽상훈(郭尙勳) ·백남훈(白南薰) 등이었다. ... 담양 일신학교(潭陽日新學校)에서 서양인 선교사에게 산술과 서양사를 배웠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용추사(龍湫寺)에서 최익현(崔益鉉)의 열변을 듣고 의병을 일으켜 순창읍 일인보좌청 ... 해 국제연합총회 한국수석대표로 참석하였고, 바티칸파견 대통령특사를 거쳐, 49년 초대 주미한국대사가 되었다. 51년 귀국하여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하고, 55년 신익희(申翼熙
그리고 48세에 삼가면 토동에 계복당(鷄伏堂)고향 삼가현에 회현서원(晦峴書院) 뒤에 용암서원(龍巖書院)이라 불리게 된 서원을 건립한 것 외에도, 1578년에는 김해에 신산서원(新山書院 ... 崔永慶·李濟臣·裵紳·姜翼·崔 ·河沆·宋師 ·郭再祐·金沔·趙宗道·盧軟·李俊民·李琰·李喜·李魯·趙瑗·河晋寶·全致遠·李晁·鄭構·朴齊仁·河應圖·李瀞·金弘微·朴澯·權世倫·具 ·柳宗智·文益成· ... 1571)이 같은 해에 태어나 각기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양대 산맥인 남명학파(南冥學派)와 퇴계학파(退溪學派)를 형성하였다.
도모노우라는 일본 제일의 해상국립공원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서도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곳으로 조선사절에게도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1655년 乙未사절의 종사관이었던 남용익(南龍翼 ... 언덕이요/역력히 일천 숲 속에 맑은 시내로다/어찌하면 그림 잘 그리는 묘한 솜씨 얻어서/오랑캐 개(浦)의 그윽한 경치 묘사할꼬(高高百尺疊堤고고백척첩제/歷歷千林淨谿역역천림정계/安得龍眠妙手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 지게 먹여 豆滿江(두만강)에 싯겨 세고 - 적토마 살찌게 먹여 두만강에 씻겨 세우고 龍泉劍(용천검) 드는 칼을 셔? ? ... 시호 충익(忠翼).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 1419년(세종 1) 사간원우정언(司諫院右正言)으로 등용되고, 이어서 지평(持平) ·집의(執義) ·우부대언(右副代言)을 지냈다
諸公會于檜里以餞之 世謂之龍頭會 望之若登仙 僕作一篇記之 龍飛位九五 下有 龍聚 呑土明月珠 騰躍靑雲路 旣登竹林高會 중의 한 사람이었다. ... (卷下23) 盖文章得於天性 而爵祿人之所有也 苟求之以道 則可謂易矣 然天地之於萬物也 使不得專其美 故角者去齒 翼則兩其足 名花無實 彩雲易山 至於人亦然 之以奇才茂藝 則革功名而不與 理則然矣 是以自孔孟荀楊 ... 지금 임금님께서 즉위하신 지 6년 째 되던 己巳年에 김곡이 南州에 원으로 나갈 때 諸公들이 檜里에 모여 전송하니 세상에서 龍頭會라 하여 신선이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