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대전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9.01.12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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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시절 교양으로 미술학의 이해를 듣게 되었습니다.
중간,기말을 통 털어서 과제가 단원대전을 다녀와서 paper를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학점에 비중이 큰 과제였지요.
5월의 찌는 태양을 뚫고 친구와 간송미술관까지 걸어가서 정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미술감상을 하며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레포트안에 많은 김홍도의 그림까지 실려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A+~^^
목차
없음
본문내용
‘단원 대전’이 열리는 간송미술관을 다녀와서...
5월 19일 목요일 오전 10시.......
나는 교양과목인 ‘한국미술의 이해’의 과제이기도 했던 천재화가 김홍도 전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간송미술관이었다.
간송미술관........ 처음 들어보는 미술관이라서 그 전날 인터넷으로 그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성북동에 위치해 있으며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간송 미술관의 소장품이 대략 5000~6000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몇 점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나는 인터넷으로 이 미술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김홍도 전을 보기에 앞서 먼저 이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에 대해 존경심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때 10만석 재산을 모두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62)이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설립한 것이다. 설립자인 간송은 문화재 수집 차원을 넘어 당대 문화계의 최고의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였다. 간송미술관은 현재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전영우, 연구실장 최완수) 부설 미술관이지만 그 출발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이었다. 이곳에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의 원본을 비롯한 고서 1만여 점과 서화, 석조물, 자기 등 골동품 3천여 점이 소장돼 있다. 그 대부분을 간송의 손으로 사 모았다. 그는 증조부 때부터 배우개(梨峴=지금의 종로4가) 중심의 종로 일대 상권을 장악한 10만석 부호가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양부와 생부의 가산을 간송이 모두 상속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간송은 그 많은 재산을 탕진했다고 손가락질 당할 만큼 심혈을 다해 문화재를 사 모았다. 특히 일본 사람이 탐내는 물건은 놓치지 않았다. 민족 문화재가 적들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그것은 일종의 저항이요 투쟁이었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졸업 직후인 25세 때(1930년)부터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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