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인곡 연구, 누항사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8.12.10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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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미인곡과 누항사는 그 창작동기와 작품의 내적 특성에 있어서 아주 특이한 면모를 보이는 작품이며 여러 작품의 선두에 서서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했던 작품들이다. 작가들이 어떤 연유에서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그 작품들이 문학사적으로 가치를 가지는 이유를 작품 분석을 통해서 알아보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사미인곡
1) 창작동기
2) 구성상의 특징
3) 작품해설
4) 문학사적 의의
2. 누항사
1) 창작동기
2) 구성상의 특징
3) 작품해설
4) 문학사적 의의
Ⅲ. 맺음말
본문내용
1) 창작동기
① 정치적 측면 : 이 작품은 송강이 50세 되던 때에 조정에서 물러나 4년간 전남 창평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작자는 50세되던 1585년 8월에 당파싸움으로 인해,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창평(昌平)에 은거한다. 이때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절과 연군의 정을 고백한 작품이 〈사미인곡〉이다. 고신연주(孤臣戀主)의 지극한 정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임금을 연모하는 연군지사(戀君之詞)인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여 더욱 절절한 마음을 수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치적 측면은 다시 두 방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송강이 처한 입장과 굴평이나 매계의 영향관계의 두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부제학 김우옹, 수찬 정여립이 율곡, 성택, 박순, 정철 등을 훼방하고 공격해오니 결국에는 박순과 정철만이 남았는데, 이발, 이우옹 등이 헐뜯기를 계속하여 송강은 차(箚)를 올려 물러가기를 원하였으나, ‘경은 마땅히 직에 충실할 뿐이지 어찌 향리로 물려가려 하는가? 경은 사면하지 말라’고 임금의 명이 내렸다. 그러나 8월에 양사(兩司)에서 심의겸이 당파를 만들어 논척을하여 송강은 물러나 고양에 은거하다가 곧 창평으로 돌아갔다. <사미인곡>의 창작동기는 송강이 이러한 당파의 와중에 서인의 영수로 우뚝 서 있어 수많은 모함과 훼방을 당하면서 임금과 멀어지는 자신의 비운을 노래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를 보면 송강의 <사미인곡>은 멀리는 굴평의 ‘사미인’에서 시상을 원용하였고 가깝게는 매계의 <만분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 조사법과 시어의 유려함은 송강의 문학적 재능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송강은 조정에서 논척을 받아 파귀하여 실의의 생활을 하니 매계가 순천에 유배되어 <만분가>를 짓던 경우나 같은 것이며 순천과 담양은 인근이어서 송강은 이미 매계의 작품을 접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였다. 또 송강이 「송강별집」에서 ‘두시언해’를 애독한 흔적으로 미루어 매계가 역간한 책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송강은 같은 호남에서 지은 <만분가>의 영향을 받아 <사미인곡>을 창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류연석(1999), <만분가>와 <사미인곡>의 비교연구, 한국언어문학
변종현(1997), 시조가사강독, 경남대출판부.
윤회중 외(1999), 고전문학의 이해와 감상1-운문-, 문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