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이언적의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8.11.02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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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윤리
한국윤리사상에 있어서 회재 이언적의 사상
목차
Ⅰ. 생애 및 시대적 배경
Ⅱ. 저술
Ⅲ. 사상
1. 무극태극논변
2. 심성관(心性觀)
(1) 심(心)과 성(性)과 정(情)
(2) 인덕론(仁德論)
3. 수양관
(1) 성(誠)과 천도(天道)
(2) 궁리(窮理)와 거경(居敬)
4. 경세관
(1) 군주론
(2) 인정론과 군정론
Ⅳ. 서경덕과 이언적 비교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생애 및 시대적 배경
이언적(1491-1553)은 조선시대 전기의 철학자로 본관은 여주이고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이며 자는 복고(復古)이고 이름은 적이다. 시호는 문원(文元)이고, 원래 이름은 적(迪)이었으나 중종의 명령으로 언적(彦迪)으로 고쳤다. 그는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세 때부터는 외숙인 손중돈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23세 때에는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25세 때부터 벼슬길에 올라 주학교관, 성균관전적, 춘추관기사관, 병조전랑, 이조전랑, 성균관사성, 사간, 사예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530년 그는 사간으로 있으면서 권신인 김안로 등의 배척을 받아 정계에서 은퇴하고 고향 자옥산 아래로 돌아가 독락당을 짓고 안거한 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직 유학을 연구하는 데만 몰두하였다. 7년 후인 1537년 권신 김안로가 죽고 나서 이언적은 조정의 부름을 받고 다시 관직에 중용되었다. 그 후 그는 홍문관부교리, 직제학, 대사성, 대사헌, 이조판서, 형조판서 등 조정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547년 그는 다시 권신인 윤형원 일파의 시기를 받아서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7년 후에 사망하였다. 이 유배기간 중 그는 저술에 전념하였는데 그가 남긴 대부분의 저작들은 이 때 씌어진 것들이다.
이언적은 우리나라 리(理)중시 철학의 선구자로서 서경덕과 함께 퇴계, 율곡 직전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화담 서경덕이 기(氣)중시의 성리학을 전개했다면 이언적은 리(理) 중시의 성리학을 전개하였다. 회재가 살던 시대는 사화시대에 해당하여 8세 때 무오사화, 14세 때 갑자사화, 29세 때 기묘사화, 55세 때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따라서 이언적이 논쟁을 통해 태극, 즉 진리가 일상적인 삶 속에 있으며, 인간의 본모습은 이 원리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인간다움을 실현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권력에 빌붙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훈구 세력에 대한 비판이었다.
참고 자료
▷ 한국인물유학사편찬위원회 (1996) 『한국 인물 유학사1』 한길사.
▷ 정대환 (1992) 『조선조 성리학 연구』 강원대학교 출판부.
▷ 황의종 (1997) 『한국의 유학사상』 서광사.
▷ 김교빈 (2003) 『한국 철학 에세이』 동녁.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27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