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 만력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 최초 등록일
- 2008.06.26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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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587 만력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의 서평입니다.
목차
◈ 들어가는 글
1장, 만력제(萬曆帝)
2장, 수석 대학사 신시행
3. 장거정(長居正이) 없는 세상
4.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황제
5. 유별난 모범 관리, 해서(海瑞)
6. 고독한 장군, 척계광(戚繼光)
7. 자기 모순적인 철학자, 이지(李贄)
◈ 마치는 글
본문내용
명조의 13대 황제 만력제(재위 1572~1620)는 어린나이인 8살에 거대한 제국인 명의 황제가 되었다. 어린나이에 황제가 된 만력제는 중국왕조에 비추어 봤을 때 결코 짧지 않은 제위기간을 가진 황제이고 명조의 황제 중 가장 긴 시간을 황제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만력제가 제위 한 시기는 명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쯤 지난 때라 왕조가 서서히 몰락해 가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린나이에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만력제는 장거정이라는 대신에게 대부분의 정사를 의논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나마 장거정이 있었기에 만력제가 제위 초기 기간을 무난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린나이의 황제는 언제든지 그 자리가 위협을 받을 수 있음이 분명한데, 현명하고 뛰어난 장거정으로 인해 그 자리가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황실 가문은 장거정을 곤경에 처한 어린 황제의 옥좌를 지켜준 사람으로 신임하게 되었고, 장거정의 직위는 수보(首補)로 격상 됬다. 게다가, 장거정은 황제의 교육까지 관장하게 되면서 더더욱 그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장거정의 교육은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만력제는 어린 시절 온 힘을 다해 학업을 정진하는데 애를 쓴 것 같다. 이러한 훈육의 결과로 만력제의 학문은 나날이 발전해 갔다고 한다. 이러한 충실하고 지혜로운 신하이자 스승인 장거정과 함께 어린 황제에게는 친구와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원보(元補)이다.
장거정과 원보는 만력제에게 있어 떼려야 땔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권력의 끝은 그렇듯, 이 두 인물도 끝까지 자신의 소임을 겸허히 받들지 못하고 만력제에게 심한 충격을 주는 결말로 치닫게 된다.
만력제는 황제이지만, 참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낸 것 같다. 좋아하는 서예도 마음껏 할 수 없었고, 자금성을 떠나 자유로이 여행을 할 수 도 없었다. 물론 몇 차례 여행이 있긴 했지만, 참으로 갇혀진 생활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는 자성 황태후의 감시도 톡톡히 한 몫을 차지한다. 1582년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 장거정의 사망이 가장 큰 사건이다. 장거정이 전국적인 토지조사를 하던 중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장거정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때의 만력제는 큰 슬픔에 잠겼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할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홉명의 비빈이 책봉되었는데 그 중에서 숙빈 정(鄭)씨가 만력제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는 것이다. 숙빈 정씨는 외로운 황제의 진정한 벗이 되어주고 정서적인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 해 여름 숙빈 정씨와의 사이에서 상락이 태어나자 만력제는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왕조실록과 더불어 여러 가지 대중문학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