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농업생산력 발전과 지주제의 변동
- 최초 등록일
- 2008.05.23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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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지주제의 변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존 개설서에 있던 내용에 대한 요약과
인구변화에 따른 경제관계의 변화에 대한 토니미셸 교수의 논문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거 하나면 아마 다른자료는 필요없을겁니다.
목차
1. 머리말
2. 인구의 변화와 농업의 성장
1) 조선후기의 인구변동
2) 농업의 변화와 인구의 성장
3. 농업생산력의 발달
1) 파종법, 시비법의 변화와 발전
2) 농기구 및 수리시설의 보급
3) 토지생산성과 농법의 발달
4. 농민층 분화의 전개
1) 토지소유의 집중화
2) 광작의 출현
3) 농민층의 양극분화
5. 지주제의 변동
1) 민전의 변화
2) 소작료 형태의 변화
6. 상업적 농업의 발달
1) 상업적 농업의 발달배경
2) 임노동의 고용
3) 상품작물의 재배와 판매
본문내용
1. 머리말
조선후기, 즉 17 ~ 18세기에 이르러 조선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중세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여러 부문들이 동요되면서 중세사회의 구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회적인 면에서 신분제의 동요, 신분제와 맞물려 중세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었던 경제구조의 변화, 유학자들의 주자학적 사유방식에 대한 이반(離反), 정치적인 면에서 붕당정치의 전개 및 향촌사회에서 새로운 세력의 등장 등 사회 ․ 경제 ․ 사상 ․ 정치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를 근원적으로 유발한 것은 경제구조의 변화였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구조의 변화는 인구의 변화를 모르고선 설명될 수가 없다.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agner)는 17 ~ 18세기의 사회 ․ 경제적인 변화의 본질과 원인에 대하여, 현재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견해에 대해 논평하기를 “지금까지 조선시대의 사회 ․ 경제사는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가설 가운데 하나가, 사료와는 다소 무관하게 받아들어져서 발전되어 온 것 같다.”라고 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인구변화와 관련하여 일련의 가설을 제시한 것이 토니 미셸(Tony Michell)의 연구이다.
이 글에서는 토니 미셸의 연구에 기초하여 인구변화에 따른 농업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 보다 세부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펴볼 것이다.
Ⅱ. 인구의 변화와 농업의 성장
1. 조선 후기의 인구변동
15세기 중엽인 세종대에 조선의 인구는 약 550만 ~ 700만 정도였다. 이는 17세기 말의 영국이나 웨일즈 지방과 비슷한 인구밀도이다. 반면 도쿠가와 시대 초기의 홋카이도를 비롯한 일본 전체와 비교해 보면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다.
15세기 초는 인력난이 심각한 때였다. 예컨대 공노비들의 도망이 빈번히 발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는 호패제도의 도입을 통해 주민들의 이동현상을 억제하려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