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유적과 유물
- 최초 등록일
- 2008.05.2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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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유적과 유물 연구
목차
Ⅰ. 서론
백제의 시기별 변화
Ⅱ. 본론 - 백제의 유적
백제의 유물
Ⅳ. 무령왕릉을 통해본 교류흔적
Ⅴ. 결론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백제의 시기별 변화
한성기 백제는 3세기에 마한 중심세력인 목지국을 병합해 국가 단계로 진입했다. 백제의 영역은 3세기 후반에는 경기도 일원까지 확대되었다고 여겨진다. 고고학 연구자사이에는 정치적 중심지의 토기상의 확산을 영역과 지배력 확산의 지표로 보는 입장과 그렇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4세기 중· 후반에 충청도 일원에 백제토기 양식이 확신되며 백제중앙에서 지방 세력에게 제작· 분여한 것으로 여겨지는 금동관 · 금동신발 · 대구 등의 착장형 위세품과 중국도자기 등이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이것은 이 무렵 이 지역이 백제의 지방으로 편제된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또한 5세기 대에는 금강 남안의 전북지방도 백제에 편입되었다고 보인다. 한성 함락 후 청원지역까지 진출한 고구려의 압박으로, 금강 이북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된 벡제는 남쪽으로 진출해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시도하였다. 그러한 정치적 과정은 분구에 석실이 결합된 나주 복암리 3호분이나 전방후원분이 말해준다고 보인다. 6세기 중엽 이후 영산강 유역에서 능산리형 석실묘도 축조되어, 이지역에 대한 백제의 지배력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Ⅱ-1. 본론 - 백제의 유적
1. 도성과 산성
(1) 한성기
• 몽촌토성 · 풍납토성
백제는 처음 한강북쪽에 도읍하였다가 남쪽의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하였다. 한성기 도성의 유적지로 남아있는 곳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만이 확인되고 있다. 고고학 조사결과 풍납토성은 한성기 도성의 핵심으로 보이나 475년 장수왕 남친과 관계된 문헌기록을 참고할 때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도성제 였다고 보인다. 풍납토성은 한강변의 충적대지 위에 판축을 쌓았으며 성내부에서는 의례용 건물과 제의유구, 대형 수혈 주거지등 성 축조이후의 각종 유구와 더불어 성 축조 이전에 만들어진 3중 환호도 확인되었다.
(2) 웅진기
• 공산성
공산성은 공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참고 자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강의, 사회평론
김원룡, 한국고고학강의, 일충사
국립공주박물관, 백제문화 해외조사보고서 5, 국립공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