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包靑天)은 누구인가?
- 최초 등록일
- 2008.05.15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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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청천(包靑天)의 일대기를 작성한 리포트
목차
- 포청천은 누구인가
-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 내는 포청천 (사건과 해결에 대한 사례)
사례 1) 소의 혀가 잘린 사건
사례 2) 수로를 뚫은 포청천
- 죽을 때까지도 청렴결백함을 주장한 포청천
- 죽어서도 사랑받는 포청천
- 포청천은 신(神)?
- 포청천에 대한 나의 생각
- 출처
본문내용
포청천은 누구인가
- 북송 진종(眞宗) 함평(咸平) 2년(999), 여주 합비에서 태어났으며 전통적인 학자집안에서 태어났다.
- 송나라의 정치가이다.
- 본명은 포증(包拯)이고 포공(包公)이라고도 한다. 저서에는《포증집》《포효숙공주상의》등이 있다.
- 1027년 진사(進士)에 급제하였으며, 단주지주(端州知州), 감찰어사(監察御使), 삼사호부판관(三司戶部判官), 경동(京東)·섬서(陝西)·하북로전운사(河北路轉運使), 삼사호부부사(三司戶部副使)·지간원(知諫院), 영주(瀛州)·양주(揚州)·여주(廬州)·지주(池州)·강녕(江寧)·개봉부지부(開封府知府) 및 삼사사(三司使)를 거쳐, 가우(嘉祐) 6년(1061)에는 관직이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다.
- 진사에 급제한 후 건창현(建昌縣) 지현(知縣)에 임명되었으나 연세가 많은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임하였다. 몇 년 후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렀으며, 그 후에도 명리를 탐하지 않았다.
- 북송 인종 경우(景祐) 4년(1037)에 천장현(天長縣) 지현(知縣)에 임명되었다.
-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정히 처벌 하였으며, 공평무사한 정치를 펼쳤다.
- 백성들의 억울한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되었다.
- 1062년, 향년 64세에 병사하였다.
- 그가 죽은 후에는 다시 그를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추증하였다.
-남송(南宋)과 금(金)나라 때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이 등장하였다. 명나라 때는 수백 권으로 된 소설화본《포공안(包公案)》등, 청나라 때는《용도공안(龍圖公案)》《삼협오의(三俠五義)》《칠협오의(七俠五義)》등의 장편소설 등이 있다.
참고 자료
http://daum.cn/bbs/bbs/board.php?bo_table=ziliao_1&wr_id=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