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란이 국문학에 미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08.05.0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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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통사 - 무신란이 우리 국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한 레포트로 알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무신집권기의 문인집단의 동향
Ⅲ. 문인들의 입장
Ⅳ. 비평의식의 성장
Ⅴ. 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
Ⅵ. 민족사 재인식의 시대
Ⅶ.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려 무신정권은 고려사회의 문·무반 차별 대우로 인해 1170년 의종 때 일어난 `정중부의 난`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던 무신정권 초기의 혼란은 최충헌의 집권으로 수습되었다. 최충헌을 시작으로 60여년간 그의 아들 우, 손자 항, 증손자 의가 차례로 정권을 잡았으며, 1258년 최의가 김준에게 살해됨으로써 최씨정권과 무신정치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무신정변은 고려 의종 때 일어나는데(1170년), 문신 중심의 문벌귀족사회의 여러 문제점에 그 원인이 있었다. 당시 고려의 귀족정치는 숭문천무의 정책에 따라 무를 천하게 여겨 문반과 무반을 차별대우 했으며, 문신들은 무신들을 멸시하고 무시하였다. 군인들은 전투와 노역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이 어려워 불만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일어난 무신란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변화를 동반했으며 우리 문학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부터 고려 무신란이 국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Ⅱ. 무신집권기의 문인집단의 동향
무신집권기는 약 1세기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동안 문인들은 각자의 처지, 사상, 성격에 따라 무신정권에 대한 대응을 달리 했다. 첫째 둔세무민(遯世無悶)으로 일생을 마친 부류, 둘째 지방에 물러나 유학을 닦으며 지방 자제의 교육에 종사한 부류, 셋째 화를 물러났다가 다시 벼슬을 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부류, 넷째 무신란 이후 과거로 발신하거나 최씨정권에 등용된 부류 등으로 구분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무신집권기 문인으로서 집중적인 연구대상이 된 것은 기 중에서 셋째와 넷째 부류이며 그것도 죽림고회(竹林高會) 멤버들과 이규보, 그리고 최자(崔滋)등 몇몇 인물에 국한되어 있다. 첫째와 둘째 부류는 이른바 사대부 계급의 형성과 관련해 주목되었다.
무신집권기는 약 1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것은 문학사에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러한 무신집권기 문학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문인들의 존재양태와 문학 활동 양상에 대한 더 포괄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의종 24년(1170) 무신의 난 발발 이후 수많은 문인들이 축출되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화를 면한 문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의종대 정치에 비판적이었거나 덕망(德望)이나 혜정(惠政)을 인정받거나, 또는 무신집권자와의 친분관계로 세력을 온존하며 무신정권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최유청(崔惟淸), 이지명(李知命), 그리고 문극겸(文克謙)이다.
참고 자료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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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1998), 고려시대 문학의 연구, 태학사
조동일, (2005), 한국문학통사2, 지식 산업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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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업, (1989) 「 고려 후기 사대부 문학의 성격 」, 성균관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