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미술: 고구려 계승관계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8.04.24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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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 한국미술사 A+ 레포트입니다.
소논문 형식의 레포트이며, 수업시간에 PPT로 발표했기 때문에 PPT 버전도 함께 있습니다.
PPT에는 원래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등록할 수가 없어서 동영상의 첫화면만 이미지로 나오네요.
소논문버전과 발표용PPT버전 중 필요하신 것 다운받으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소논문형과 발표용은 구성상의 차이 때문에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그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시대 개관
3. 발해의 문화적 특징
4. 발해 미술
(1) 회화
(2) 조각
(3) 공예
(4) 건축
5. 맺음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발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역사연구에서 다소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로는 발해가 짧은 역사를 가졌다는 점, 거란에 멸망당한 뒤 유민들이 강제로 요동반주에 이주하고 수도는 불에 타 버렸다는 점, 만주 동부지역은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 있다가 한참 뒤에야 새로운 왕조가 등장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절대적인 자료의 부족과 본격적인 발해사 연구의 미흡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발해사 내지는 발해 문화에 관한 자료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듯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사이, 중국에서는 발해사와 고구려사마저도 그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소위 ‘동북공정’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의 역사 발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가 시급하다 하겠다.
다음에서는 발해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개관하고, 특히 고구려-발해의 계승관계를 중심으로 발해의 미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발해사 개관
고구려 멸망 이후 대동강 이북과 요동지방의 고구려 땅은 당의 안동 도호부의 지배를 받았고, 고구려 유민들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하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후인 7세기 말(698년), 당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 집단들은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길림성의 돈화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
발해의 국민은 고구려 유민과 고구려의 지배를 받고 있던 말갈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소수의 고구려인이 다수의 말갈족을 지배하는 이중적인 구조였다.
발해는 영역을 확대하여 옛 고구려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였고, 전성기 때에는 대동강 이북의 한반도 북부 지역, 중국의 랴오닝 성(遼寧省), 지린 성(吉林省), 헤이룽장 성(黑龍江省)과 러시아의 연해주 일대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남쪽의 신라와 함께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다.
참고 자료
김원용·안휘준,「한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2003
송기호 「발해를 다시 본다 」, 주류성, 2000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관계, 고구려연구재단, 2005
KBS 역사스페셜 “신년기획: 발해, 대륙의 제국”
KBS 역사스페셜 “발해고구려를 꿈꾸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