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쇄술의 발달
- 최초 등록일
- 2008.02.25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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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인쇄술의 발달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1. 서론
2. 우리나라 인쇄의 기원
3. 통일신라시대의 인쇄
4. 고려시대의 목판인쇄
5.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6.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이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 ‘다라니경’과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 서적 ‘직지심체요절’(1377년)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쇄술이 가장 앞섰던 나라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잘 이용하지 못하였고 말한다. 이것은 한국이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정보화에는 그리 기여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의 전제조건에는 고려시대에는 우리나라의 인쇄술이 세계 수준보다 앞서 발달되어있었다는 것을 포함되어있다. 이에 고려시대의 인쇄술발달을 목판인쇄와 금속활자로 구분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전시기 즉 신라시대의 인쇄술을 살펴보고 그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2. 우리나라 인쇄의 기원
(1) 사경의 활용
우리나라에서 인쇄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원전 3~4세기경부터 시작된 중국과의 교류가 점차 빈번해지면서 각종 서사 재료에 기록하는 방식과 서책들이 전해져 오고, 이러한 것들이 점차 발전하여 인쇄술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 널리 보급되었던 기록 방식으로는 손으로 일일이 베껴 쓴 필사 방식을 꼽을 수 있다. 필사 방식은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 불교 경전을 베껴 쓴 사경으로 구체화되어 널리 활용되었으며, 그 유물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불교 초기에 있어서는 사경으로 공덕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는 승려나 일반인을 막론하고 불경을 서사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납탑 공양하면 모두가 부처와 다름없는 경지에 이르며, 부처의 보호와 위력으로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수복함은 물론 소원 성취 할 수 있다는 불설에서 근거한 것이다. 사경을 납탑하는 행사에는 여러 불경이 사용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다라니경이 주된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경을 납탑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경 공덕은 정성껏 서사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때 불교가 전래되어 온 이후 왕실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사찰이 곳곳에 세워지고 승려들이 중국은 물론 인도에까지 유학하는 등 불교문화가 꽃을 피우자 불경 또한 수요가 크게 확대됐는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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