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일제치하 민족기업의 성장의 대표였던 면방직 공업에 대해 연구하고, 민족기업의 의미를 재평가 하였다. 경제와 역사의 상관관계를 다룬 분야가 미약하여, 경제성과 역사성을 두로 살린 이 논문이 역사학도와 경제학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목차
Ⅰ. 서론
Ⅱ. 일제의 식민지적 면공업 정책
1. 일제의 근대 면공업
2. 일제의 자본주의 원사문제와 면작재배정책
Ⅲ. 일제시기 한국의 면공업
1. 일제하 한국의 면공업
2. 민족계 면공업의 존재양태
1) 면 제조업
(1) 경성방직
(2) 동양염직주식회사
Ⅳ. 결론
본문내용
세계에서 유래가 없다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던 핵심 산업 중에 하나였던 섬유산업의 뿌리의 형성은 일제하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섬유공업의 시작과 그 근간은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일제의 공업화 정책으로 인하여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통계적 수치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가장 큰 오류는 바로 경제적인 수치와 통계만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척도를 가늠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또한 이러한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의 요구에 따른 한국의 경제구조 재편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 일본의 계획 하에서 진행된 한국경제의 발전 계획은 철저히 일본에 의존하고 일본의 경제와 연결되어 있는 종속적인 형태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경제는 기형적 모습을 띄게 되었는데 가장 전형적인 예를 바로 일제하 면방직 공업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경제개편은 철저히 일본의 경제의 보조수단으로서 활용되었다. 일본은 1880년대 중엽 면방직공업의 기계제 공업의 성립으로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방적업의 근대화, 대규모화는 원사의 수입과 해외 판매망의 제약 등의 한계에 직면하였다. 이에 일본은 한국을 그들의 식민지로 확보하여 원료공급지로 삼고 일본 면산업의 근대화에 필요한 면화를 자급 받는데 이용하였다. 또한 면화를 수입하여 면직물을 제조한 뒤 다시 한국에 내다파는 상품시장으로서 한국을 이용하였다. 이한구, 일제하 토착면공업자본의 성격에 관한 연구(2), 경영사학 17, 1998
이렇듯 한국의 산업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자발적인 근대화의 수순을 밟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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