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의 그 절대성은?
- 최초 등록일
- 2007.12.23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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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승휘의 절대왕정의 탄생이란 책을 읽고 쓴 레포트입니다.
필자는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절대주의 체제의 이해를 도모하고
나아가 절대왕정의 모순점을 알아보았습니다.
목차
Ⅰ. 절대왕정의 대두 배경
Ⅱ. 절대왕정을 뒷받침하고자 이용된 전략
1. `지상의 그리스도`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2. 절대왕정의 거울, 베르사유
Ⅲ. 절대왕정이 내포한 문제점
Ⅳ. 프랑스 절대왕정 "절대"의 공허함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친 시기를 유럽사에서는 절대왕정(Absolute Monarchy)시대 또는 절대주의(absolutism)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는 유럽사회가 봉건사회를 탈피하여 근대적 발전 단계로 접어든 시기이다. 절대왕정 국가는 중세의 지방 분권적 정치체제를 지양하고 왕권을 중심으로 국가를 통일해 행정․사법․군사 면에서 중앙집권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절대왕정의 왕권이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나 로마 황제의 전제 정치에 비하면 훨씬 느슨하고 여러 제약과 견제 세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절대왕정에서 왕권의 절대성은 중세의 봉건적인 권력분산에 비해서의 절대성이었고, 보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적인 대립이 발생하였을 때, 국가 내의 다른 세력에 대하여 왕권이 자기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도를 의미했다. 민석홍, 『서양사개론』, 삼영사, 2006, p.327.
그렇다면, 유럽사의 16~18세기에 어떠한 이유로 이전의 중세에 비해 보다 중앙집권적인 절대왕정이 대두되어 성립될 수 있었을까. 15세기 말 이래로 진척된 중앙집권화 과정은 대체로 이러하다. 화폐유통이 증가하고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민계층은 늘어나고 중앙권력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전체 귀족의 수입은 줄어들었다. 일부 기사들은 비참한 생활을 선고 받았으며 많은 귀족들은 결국 형편에 못 이겨 왕이나 제후들의 신하로 들어간다. 즉, 귀족은 사회 내에서 화폐 경제 부문의 성장과 함께 권력을 상실하는 반면 시민계층은 그와 함께 권력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 양자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오랜 기간 동안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했다. 귀족과 시민계급 간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 이 것이 바로 절대왕정의 구조적 전제조건이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과정Ⅱ』, 한길사, 1999, pp.52~53.
귀족과 시민계급의 불안정한 균형상태 위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은 절대왕권의 확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한 노력들 중에서 우리는 프랑스 절대왕정을 통하여,‘절대성’을 뒷받침했던 절대주의에 관한 이론적 사변과 베르사유의 궁정사회를 알아보겠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절대왕정의 현실적인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자.
참고 자료
임승휘,『절대왕정의 탄생』, 살림, 2004.
민석홍,『서양사개론』, 삼영사, 2006.
배영수 엮음,「초기 자본주의와 국가」,『서양사강의』, 한울, 2000.
E.M.번즈, 손세호 옮김, 『서양문명의 역사 (하)』, 소나무, 2007.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과정Ⅱ』, 한길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