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륵신앙
- 최초 등록일
- 2007.12.19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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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미륵신앙-미륵사와 관련한 내용의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백제 미륵신앙(彌勒信仰)의 전개
3. 미륵신앙과 미륵사(彌勒寺) 창건
1) 미륵사의 창건
2) 의의
4. 백제 미륵신앙의 특성(特性)
5. 맺음말
본문내용
2. 백제의 미륵신앙 전개
인도에서 전해진 미륵신앙은 중국을 거쳐 백제까지 전해졌다. 백제의 미륵신앙과 관련한 기록은 성왕대로 올라간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보이는「미륵불광사적기」에 따르면 백제는 성왕 초기에 이미 미륵신앙이 수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시에 미륵불광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미륵불광사는 그 이름을 통하여 미륵신앙의 관련성을 추출해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볼 때 성왕대에는 이미 미륵신앙이 수용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륵신앙은 계율과 관련하여 성행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당시 백제는 중국의 남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당시 남조의 제(齊)에서는 무제(武帝)시에 왕자 소자량이 용화회를 베풀었던 기록을 살펴 볼 때 이 당시 백제에도 중국적인 요소의 미륵신앙이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백제가 미륵을 신앙하고 있었음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위덕왕은 재위 31년(584)에 일본으로 석미륵상(石彌勒像)을 보내고 있다. 즉 당대에 백제에서는 이미 미륵신앙이 성행되었기 때문에 쉽사리 석미륵상(石彌勒像)이 함께 전해질 수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신라의 승려 진자(眞慈)가 미륵선화를 찾아 백제의 웅진을 찾는 것도 위덕왕대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백제의 미륵신앙이 위덕왕대에는 이미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고 할 수 있겠다.
백제는 성왕 초기에는 이미 미륵신앙을 수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설명된다. 백제가 중국 남조문화의 수용에 경도되어 있었던 시기에 중국에서 미륵이 신앙되고 있었던 사실은 이와 같은 내용을 뒷받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백제는 남조를 통하여 북조적인 성격도 유입하였을 것이다. 무령왕대에 나타난 불교와 관련한 북조적인 요소가 이를 말해준다. 이는 정도는 미약하겠지만, 삼국시대 상호간의 영향을 통해서나 중국 북조로부터 고구려나 신라에 전래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참고 자료
※ 참고사료
- 삼국유사
- 삼국사기
- 일본서기
- 조선불교통사 ; 미륵불광사적기
※ 참고문헌
김삼용,『한국미륵신앙의 연구』, 동화출판사, 1983.
김영태,『백제불교사상연구』,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5.
길기태, 「백제 사비시대의 미륵신앙」『백제연구』43,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06.
김두진,「백제 미륵신앙과 계율」『백제연구총서』4,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4.
김삼용,「미륵신앙의 원류와 전개」『한국사상사학』6, 경인문화사, 1994.
田村圓澄, 「백제와 미륵신앙」『백제연구총서』4,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4.
홍사준,「미륵사지고」『마한·백제문화』1, 원광대학교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