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퍼머넌트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12.10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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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퍼머넌트의 역사를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1. 1920~30년대
2. 1940~50년대
3. 1960~70년대
4. 1980년대
5. 1990년대 이후
본문내용
우리나라는 1930년대가 퍼머의 전성시대였다. 20 년대 중반에 단발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웨이브 스타일이 나타나면서 단발을 하더라도 웨이브가 있는 단발이 유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웨이브를 만들기 위해 주로 불을 이용한 고데를 했으나 머리를 감으면 웨이브가 사라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서구에서 들어온 퍼머기는 그러한 고대의 불편함을 해소시키는 혁신적인 기계였다. 당시의 퍼머는 전기를 이용한 것으로 정확한 시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며 전기롤을 이용했기 때문에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머리가 타들어 가기도 하고 웨이브가 너무 심해 모발도 크게 손상되었고 두피에 화상을 입기도 하였다.
1940~1950년대
▷ 서양에서 들어온 외래의 퇴폐적인 풍조라는 이유로 40년대 초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 퍼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았다. 머리를 이상한 모양으로 지지고 볶는 것이 문제라면서 외래의 이상스런 풍속을 흉내내지 말자는 것이다. 1938년 5월 3일자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면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이며 외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무조건 흉내내다보니 퍼머에 의해 머릿결이 망가지는 등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한 주장과 함께 사치품금지령으로 퍼머가 금지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미용10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