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저격사건
- 최초 등록일
- 2007.11.15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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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일어났던 육영수 여사의 저격사건에 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몇 가지 의문점
① 문세광의 입장(入場)
② 총알의 탄환
③ 현장보존의 법칙
④ 정부는 문세광을 알고 있었다?
소결
본문내용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이어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방송되면서 육영수 저격사건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두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육영수 여사의 저격범은 문세광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여러 관점에서 사건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만약 문세광이 진범이 아니라면 누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이 같은 일을 벌였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사건을 뉴스나 신문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세대인 나의 부모님께 이 사건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진범이 문세광이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의 의심은 있었지만 수사기관에서 발표한 대로 그냥 그렇게 믿고 계셨다.
그렇다면 문세광이 진범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게 된 그 의문점은 무엇이며, 정부에서는 왜 국민들에게 수사기록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문세광을 범인이라 결론지었을까?
또한 세간의 의심이 종전의 수사결과와는 달리 진실이라면 누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을까?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제 29회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곧이어 울린 7발의 총성과 함께 육영수 여사가 숨을 거뒀다. 범인은 23살의 재일동포 문세광으로 밝혀졌다. 그는 자술서에서 그 배후가 북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 정치부장 김호룡이라고 주장했다. 문세광은 대법원 사형선고 3일 만인 12월 2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로써 육영수 여사의 저격사건은 북한과 재일 조총련을 배후로 문세광이 저지른 일이라고 마무리되면서 수사가 종결되었다.
몇 가지 의문점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문세광은 진범이 아닐 것이라는 숱한 의혹이 일어났고 그것이 촉발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3월, 사건 당시 서울시 경찰국 감식계장을 맡고 있던 이건우 씨의 "육 여사는 문세광의 총에 죽은 것이 아니다" , "육 여사의 암살범은 따로 있다"라는 양심선언 때문이었다.
참고 자료
SBS 그것이 알고싶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