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족주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11.07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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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
목차
1. 한국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
1) 세계화 시대 이전의 민족주의
2)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
(1) 김영삼 정권 시기의 경제 민족주의
(2) 김대중 정권 시기의 경제 및 통일 민족주의
본문내용
1. 한국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
1872년에 일본이 개항을 요구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40년에 걸친 외세의 각축 끝에 조선은 일본에 합병되고 말았다. 이렇게 조선이 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은 조선인들이 세계의 변화에 너무나도 둔감했기 때문이다. 17세기 이래 서양각국들은 동양으로 진출하여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지만 특히 19세기 초반은 동양과 서양의 세력균형이 바뀐 중요한 시기이다. 서양의 몇몇 나라들이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거대한 생산력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동양의 전통적인 대국들이 모두 차례로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과거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러시아, 터키, 인도, 중국 등의 나라가 이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조그만 산업국가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중국마저도 1840년의 아편전쟁에 패하여 국가안위가 위태로워지고 이후 무력한 노대국으로 서양열강의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형편이었으니 조선의 형편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단순한 국제질서에만 익숙해 있었던 조선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큰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빨리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외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생각을 하지 않고 쇄국을 함으로써 두려운 현실을 외면하고자 했다. 대원군의 정책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양선들이 조선수역에 계속 출몰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문호를 굳게 닫고 국내적인 지배체제의 강화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은 수십년간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였다. 조선이 조금만 외국사정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도 중국의 급박한 상황, 또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던 명치유신을 둘러싼 커다란 정치, 사회적 변화의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문을 닫고 앉아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자학적 명분론에 집착하던 조선의 지배계급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인식도,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나갈 능력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는 개화파가 무력으로 정권을 잡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나 일본에 너무 의존한데다 세력기반의 약체성으로 실패했으며 결국 조선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네나라 세력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경쟁의 장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