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시기의 시대적 상황을 제시하고 조선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선조, 광해군, 인조시대의 대명관계를 통해 고찰한 자료이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청의 성장
2. 명의 멸망(명청교체)
① 명의 멸망 원인
② 명청교체 과정
3.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① 명군 임진왜란 참전 배경
② 16세기 후반 임진왜란과 대명관계
③ 명청교체기의 진전과 명의 조선인식
④ 선조대 후반 임진왜란과 대명관계
⑤ 광해군대의 대명관계
⑥ 인조대의 대명관계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오늘날 간도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북공정을 추진하며 우리나라의 고구려사 뿐만 아니라 발해와 고조선에 이르는 역사까지도 왜곡시키려는 중국의 태도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과거 고조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렇듯 한국과 중국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지, 쌍방 간 적대적이고 우호적인 관계가 반복되었으며, 각 나라에 정치·문화·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 중 특히 명나라 말∼청나라 초기 즉, 명청교체기에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 명·청 교체에 행사한 영향력과 명·청 각국의 외교활동이 조선에 준 영향력은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며, 이의 이해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하고 상호보완적인지를 단번에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조선 왕조에게 명(明)은 가장 중요한 외국이자 이웃으로 조선은 1392년 건국 이래 한족(漢族)왕조 명을 외교적으로 섬겨 왔으며 그를 통해 양국 사이에는 가장 전형적인 ‘조공 -책봉’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명은 조선에 대해 정치, 문화적으로 ‘대국’으로 군림했으며 책봉이나 반조와 같은 조선 국왕에 대한 명의 외교적 승인이나 정책은 조선 국왕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데 ‘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권위의 원천이기도 했다. 16세기 후반부터 명청교체의 조짐이 가시화되면서 14세기 후반 이래 성립된 명 중심의 중화적 세계질서는 동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조공- 책봉’관계 아래서 명과 사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조선에게는 국제질서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자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선은 명청교체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다.
명은 임진왜란을 맞아 “조선을 구한다”는 표방아래 참전했거니와 그것은 위기에 처한 조선 지배층에 의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은혜(再造之恩)’로 받아들여졌다.
참고 자료
1. 최소자, 명청시대 중·한관계사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사, 1998
- p 24∼82
2. 임계순, 청사, 신서원, 2000
- p 64
3.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
- 전권 참고
4. 기시모토미오·미야지마 히로시,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역사비평사, 2003
- 5장, 화이변태(p 197∼217)
5. 마스이 츠네오, 대청제국, 학민사, 2004
- 2장, 명청교체의 배경
6. 임진왜란 이후 국제질서와 조선의 대응, 해피캠퍼스(http://www.happycampus.com), 2005
- 3. 명·청교체와 조선의 대응
7. 조관희,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 청아 출판사, 2003
- 명나라, 청나라 시대
8. 명청 교체기의 조선, 해피캠퍼스(http://www.happycampus.com/),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