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지역감정
- 최초 등록일
- 2007.10.30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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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회에서 지역감정에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지역감정의 발생원인
(2) 지역감정의 경과
(3) 지역감정의 극복 대안
3. 결론
본문내용
(1).지역감정의 발생원인
① 집권 세력에 의한 의도적 차별과 동원
한국에서 정치·사회적인 문제로서 영호남 지역갈등이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였다. 그것은 1980년 광주학살을 거치면서 호남인들에게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으며, 전두환 정권 하에서 그 상처는 더욱 곪아갔다.
박정희 때부터 지정학적 요인에서 의도치 않게 생겨났던 지역 간의 경제력 격차가 영호남간의 문제로 좁혀져 의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집권세력이 엘리트 충원과 지역개발에서 의도적 차별을 가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지역감정의 선택적 발현을 설명하기 어렵다. 충원과 개발에서 불이익을 받은 지역은 많은데, 왜 호남에서만 유독 피해의식이 심한가를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도적 차별 외에 집권층이 지역주의를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과 자원으로 인위적으로 동원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반호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지역주의의 인위적 동원은 주로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일어났다. 이것의 조짐은 1967년 6대 대통령 선거부터 조금 나타났지만, 본격적 대두는 역시 3선 개헌 이후 치러진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부터였다. 공교롭게도 이 선거는 각각 영남과 호남에 연고를 둔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결이었다. 이미 3선 개헌이란 무리수를 둔 박정희로서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젊은 야당 후보를 맞아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의 세력은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선거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 영남 유권자의 71.3%와 호남 유권자의 62.2%가 지역투표 성향을 보인 가운데 선거는 박정희의 승리로 끝났다. 그 후 9년 동안 선거를 위해 지역주의를 인위적으로 동원하는 일은 없었다. 유신으로 대통령 직선제 자체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 중에 몇 차례 총선은 있었지만, 1987년 이후와는 달리 아직 총선에서는 지역주의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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