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을 통한 신라문화 엿보기
- 최초 등록일
- 2007.10.28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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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의 남산을 통해 신라문화를 살펴본 레포트로써 만점을 받았습니다.
목차
Ⅰ. 머 리 말
Ⅱ. 남산의 개요와 유적 / 유물현황
1. 남산에 대하여
2. 남산의 유물 수량
3. 시대로 본 문화유산
4. 남산의 답사코스
5. 유적 • 유물의 소개
Ⅲ. 맺 음 말
본문내용
경주의 산치고 신라의 유적이 없고 전설이 없는 산이 있을까마는 그 으뜸의 자리에는 남산이 있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남산은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뉘는데, 동남산 쪽은 가파르고 짧은 반면 서남산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긴 편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유적의 숫자로 보면 서남산 쪽이 동남산보다 월등히 많다.
남산에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기까지 약 300년 동안 계속하여 불상과 탑이 조성되었으므로 남산의 불상만 가지고도 신라 조각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남산에는 1백개소의 사지, 61기의 석탑, 78구의 석불상이 동서로 흐르는 35개의 모든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은 대개가 수려한 암봉으로 빼어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남산에서처럼 계곡마다 사원을 짓고 원각상 또는 마애상을 조상하여 하나의 산에 이렇게 많은 불상이 밀집된 곳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조는 남산의 역사와 불교유적을 살펴본 후 불교사적 의의와 이번 발표를 준비하며 신라인들이 가진 남산에 대한 의미에 대해 생각보고자 한다.
□ 남산에 대하여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石塔)과 석불(石佛)로서 특히 마애불(磨崖佛)이 많다. 이처럼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데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앙된 바위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아득한 옛날부터 남산 바위 속에는 하늘나라의 신들과 땅위의 선신(善神) 들이 머물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지켜준다고 믿었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산 속,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로 바뀌어 불교의 성산(聖山)으로 신앙되어 왔다. 이러한 신앙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참고 자료
□ 윤경렬『경주 남산』, 대원사, 1989, P.68~117
□ 윤경렬『겨레의 땅, 부처의 땅』, 불지사, 1996, P.175~218,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