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의 관점에서 본 거장과 마르가리타
- 최초 등록일
- 2007.10.19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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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내가 생각하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산이 될 만한 소설이다.
목차
1.문제제기
2.본론
첫째, 왜 악에 대해 대항하고 처단하는 선의 구원자는 없는가?
둘째, 왜 악에 복종하는 주인공들에게만 해피엔딩을 주었나?
셋째, 예슈아의 출현, 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3.결론
본문내용
문제제기
내가 생각하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산이 될 만한 소설이다. 1940년,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된 작품이 21세기를 사는 나에게 전혀 낯설거나, 촌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구성과 뛰어난 상상력, 거기다 구석구석 숨겨놓은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풍자까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점 별 다섯 개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베스트셀러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이 소설에 대해 의아했던 점은 ‘악의 승리’ 라는 것이다. ‘악의 승리’, 좀 과장되고 추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은 동화를 읽어온 나에겐 어쩌면 이 부분이 찜찜했던 것 같다.
“작가는 무슨 의도였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악의 처단’ 이 없는 이 소설을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려 한다.
본론
첫째, 왜 악에 대해 대항하고 처단하는 선의 구원자는 없는가?
악마 볼란드에게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한 작가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하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가 이 소설에선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선과 악의 대립구도는 항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선이 악을 이길 확률, 즉 선의 승률이 월등히 뛰어나다. 하지만 이 소설엔 승자인 선의 그림자가 하나도 없다.
볼란드가 소설에 처음 등장했을 때, 난 소설 중간이나 막바지에 선의 구원자가 나타나리라 생각했다. 볼란드는 위대한 악마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가 보여준 어둠의 마술이나 그밖에 그의 수행원들이 한 이상하고 괴이한 일들이 그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