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문화예술극장, 아르코 미술관, 아르코극장
- 최초 등록일
- 2007.09.30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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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가면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들이 꽤 많이 있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르코미술관, 아르코 예술극장, 샘터 사옥, 국제협력단 건물, 서울대병원 연구동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살아있는 김수근 갤러리`다.
대학로에 세워진 작품들은 바깥벽에 대부분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정의한 벽돌예찬론자 김수근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가 벽돌을 편애(?)하는 이유는 실용과 예술이라는 건축예술을 한껏 살리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지 못한다. 때문에 한장 한장 단정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벽돌이 지닌 조소성은 무한히 인간화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벽돌 예찬론을 펼친바 있다.
선생님은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는 말씀을 하시며, 많은 작품을 남기시고 지난 1986년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했다.
김수근은 김중업과 함께 한국현대 건축의 1세대로 평가된다. 물론 해방전에 박길룡과 박동 진으로 대변되는 건축가들이 존재했으나, 완전한 근대건축가로 보기 힘들다. 해방 후에도, 일제 식민지 정책의 일환인 기술교육의 제한으로 야기된 기술자의 부족, 경제적 기반의 빈 약에 따른 상공업의 부진, 민중의 정치의식 과잉에 따른 사회적 혼란, 현대화에 대한 적응력 부족으로 새로운 건축 창조행위가 일어났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속에서 맞은 한국전쟁은 국토의 분단이라는 비극과 함께 그나마 이식된 문화가 존 재했던 도시를 폐허화시켰다. 실험을 통해 체득되지 못한 기술, 새로운 현대건축에 대한 막 연한 이해, 주체적인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건축세계관, 건축자재의 빈곤 등의 문제는 60 년대까지 한국건축계가 풀어야 할 과제로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60년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건설붐이 일어남에 따라 외국에서 서구건축을 직 접 배우고 귀국한 건축가들과 국내의 건축가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은 한국현대건축의 1세대를 형성하는데, 파괴된 건축의 정체성과 도시질서를 서구 근대 건축의 개념으로 창조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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