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의 골품제 성격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7.09.05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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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시대의 골품제 성격 고찰
목차
Ⅰ. 머리말
Ⅱ. 骨品制의 變遷과정
1. 骨品制의 기원으로서 上古時代의 身分制
2. 中古時代 骨品制의 編成
3. 骨品制의 편성원리
4. 骨品制의 變動
1) 骨品身分의 流動性
2) 骨品制의 變動을 막으려는 裝置
Ⅲ. 骨品과 官等의 規制
1. 骨品制 編成原理
1) 聖骨과 眞骨
2) 六頭品五頭品四頭品과 平人
3) 地方人의 身分
2. 骨品에 따른 制約
Ⅳ. 骨品制의 限界와 解體 過程
1. 骨品制度의 矛盾
2. 骨品制의 消滅過程
3. 骨品制의 消滅 背景과 原因
1) 骨品制 운용상의 문제점
2) 骨品制 유지방법상의 문제점
3) 賞罰의 崩壞
4) 骨品制를 유지하기 위한 報酬에 대한 問題
5) 생활기회와 생활양식의 변화
4. 骨品制의 消滅과 새로운 身分制와의 관계
Ⅴ. 맺는말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韓國 古代 사회는 身分이 중시된 身分제적 사회이다. 三國은 모두 여러 단계의 진통기를 거치면서 中央集權的인 貴族國家를 형성하였다. 이 세 나라에서 각기 사회의 중심세력이 된 것은 서울에 사는 왕경(王京)인이었으며, 王京인 중에서도 身分制에 의하여 特權이 부여된 貴族들, 그 중에서도 王族과 王妃族이 주로 政治經濟文化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렇게 극히 제한된 소수의 貴族家門이 사회적인 지배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시대 貴族사회의 실태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은 신라의 골품(骨品)제였다. 骨品制는 骨의 등급 즉 血統의 고귀함과 비천함에 따라 政治적인 출세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特權과 제약이 부여되는 制度였다. 이러한 骨品制는 新羅의 사회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新羅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骨品制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骨品制는 骨의 等級, 즉 血統의 존귀함과 비천함에 따라 政治적인 출세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特權과 제약이 부여되는 制度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骨品制에는 聖骨眞骨의 골 身分과 六頭品에서 一頭品까지의 頭品 身分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왔다. 그 중 聖骨은 眞德王을 마지막으로 소멸되었고, 이후 眞骨이 王이 되었다. 그리고 후일 三頭品에서 一頭品까지는 합쳐서 平人 또는 百姓 身分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骨品制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身分制가 아니라, 新羅의 國家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身分制를 토대로 法興王이 律令을 반포하며 편성한 身分制였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골품’에 대한 기록을 주목해 보기로 한다.
그리하여(용춘공은) 13세(풍월주)가 되었고 호림공을 부제로 삼았다.
참고 자료
이종욱.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2000)
이종욱, 『新羅骨品制硏究』, 일조각, (1999)
이종욱, 『신라의 역사 1』, 김영사, (2002)
이종욱, 『신라의 역사 2』, 김영사, (2002)
이기백이기동 공저, 『韓國史講座』, 一潮閣,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