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미술사 - 불교미술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08.15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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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완수 교수님의 동양미술사 수업 기말레포트- 불교미술의 역사
A+ 받은 레포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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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리스에서 상업세력이 크게 성장하여 인류문명 사상 최초의 상업문명권을 형성해 갈 당시, 인도에서도 상업세력이 발전하여 기존 질서를 고수하려는 보수이념인 브라만교를 압도할 수 있는 혁신이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 요구에 따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평등과 금욕을 내세워 상업세력을 옹호하는 불교를 확립하였다. 서기 전 3세기에는 전륜성왕인 아쇼카왕이 출현하여 불교가 전인도 대륙으로 전파되었고 국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때, 불교미술의 시원을 이루는 아쇼카왕의 기념주들이 세워지다가 그 의미가 퇴색되고 사리를 모시는 스투파, 불타를 상징으로만 표현하는 불전도가 나타나 불상불표현의 시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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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전진 황제 부견이 전도승 순도와 불상 및 불경을 보내어 공식적으로 불교가 전해졌다. 그런데 고구려 영토 내에서 30cm 이상 되는 불상을 확인하지 못하였고 고분벽화 속의 승려와 주인공의 크기를 비교해볼 때 승려의 지위가 높지 않다는 것을 보면고구려가 불교를 국교로 하지 않았고 국가적인 역량을 동원하여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동수묘, 모형진묘 등을 통해서 고구려 고분 양식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에는 침류왕 원년 384년에 남조에서 전진을 이긴 기념으로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불교를 전해졌다. 백제는 고구려에 서해 북부의 재해권을 빼앗겼다가 무녕왕에 이르러 되찾게 되는데, 무녕왕이 죽고 난후 그 뒤를 이은 성왕이 무녕왕의 추복을 위해 예산사면석불을 마들었다. 이것은 주불이 무령왕의 초상이고 용문석굴 빈양중동 본존시무외불좌상과 방불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가 신라의 배신으로 국망의 위기에 몰리게 되자, 위덕왕이 등극하여 민심을 수습해가면서 성왕의 죽음을 위로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구심점이 되기 위해 태안마애삼존불을 건립하였다. 이것은 양쪽에 주불 두 분이 있고 중앙에 작은 보살이 끼어있는 역삼각형 구조로 우리 민족의 탁월한 독창성, 기발한 발상을 잘 보여준다. 또한 서산마애삼존불은 보통 삼존불 양식과는 다르게 좌협시만 반가좌상을 하고 있는 세계 유일한 구성이며, 당시 가장 널리 신앙되던 미륵보살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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